어린 시절, 가장 가기 싫은 곳은 이발소였다. 지나치게 성인남성 취향이랄까?
(사진=픽사베이)
손잡이에 판자를 걸쳐야 앉을 수 있는 거대한 의자, 역한 남성 화장품, 이발사의 무표정, 불친절함, 포마드 머리, 찌든 가운, 면도칼 가는 소리, 잘 들지 않는 바리캉, 깨진 거울, 이 모든 게 어우러진 서늘함은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리라.
그래도 '1년에 한번만 겪으면 된다!' 용기를 내며 이발 시간을 참아내곤 했는데, 마지막 과정 '세척과 건조'는 간신히 다잡은 마음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우리 누나와 동갑이라는 소문은 었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는, 융통성도 자비도 없는 머슴아가 빨래비누와 투박한 손으로 사정없이 내 머리를 긁어대고, 수건을 빳빳하게 핀 채 머리를 쳐대면 아프기도 하거니와 자존심도 심하게 상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이발소 이름은 ‘우정(友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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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는 우정, 행복, 명랑, 만남, 부부 같은 단어들이 상점 이름으로 흔하게 쓰였다. 행복이불, 명랑문구사, 만남다방, 부부상회... 당시는 지금처럼 세련된 단어를 떠올리는 게 쉽지 않기도 했겠지만, 가난했던 시절, 우정 행복 명랑 같은 감정이나 타인과 만남을 귀하게 여기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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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추억이나 펼쳐보려는 마음이 아니다. 일상에서 ‘우정’이나 ‘행복’, ‘명랑’ 같은 단어를 쓰지 않다 보니 실제 우리 삶도 그렇게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 힘들어도 명랑하게 살려는 자세는 그 시절이 훨씬 충만했던 것 같다. 동시에 세대가 몇 번 더 지나면 ‘우정’ 같은 단어는 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는 ‘고어’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되기도 한다.
눈부신 봄. 그리고 따뜻한 날씨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오후, 어린 시절 우정이 어쩌고 하는 3류 수필이나 시가 적힌 문방구 노트가 모자이크처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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