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광풍이었다. 모든 이슈가 ‘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에 잠식됐다. 2018년 1월 29일,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e-pros)’ 게시판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JTBC에서 성추행 사건을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국민은 분노했다. 이 분노가 기폭제가 돼 문화계, 정치계, 법조계, 연예계, 재계 등 영향력을 갖춘 인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폭로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 흐름은 현재 진행 중이다.
2018년 약 6개월여 동안 미투 운동으로 거론된 유명 인물만 약 수 십 여 명이 된다. 이중 조작과 무고 등으로 다시 활동을 준비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혐의가 법적으로 인정돼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도 있다. 혐의가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신빙성 높은 진술로 인해 두문불출 하는 유명인도 있다. 대한민국을 강타한 미투 운동이 일어난 지 약 600일이 지난 현재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근황을 살펴봤다.
여비서 성추행에 이어 가사도우미 성폭행 혐의로 피소된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 ‘목숨 걸고 아니라던’ 김준기 전DB 회장, 가사도우미 성폭행 피소
“목숨 걸고 아니다” “나를 법정에 세워달라” “합의한 관계다” 등 온갖 핑계를 일삼던 김준기 전 DB회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이다. 질병 치료를 이유로 지난 2017년 7월 미국으로 건너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경찰은 김 전 회장의 여권을 무효로 한 뒤 인터폴과 공조해 김 전 회장에게 적색수배를 내리는 한편, 김 전 회장이 미국에서 추방될 경우 수사를 재개할 방침이다.
2017년 여비서 성추행 의혹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난 김준기(75) 전 DB그룹(전 동부그룹) 회장이 올해는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한 혐의로 피소됐다. 김 전 회장의 가사도우미 A씨는 지난해 1월 김 전 회장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A씨는 2016년부터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김 전 회장의 별장에서 1년간 가사도우미로 근무하던 중 수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A씨가 직접 녹음한 당시 녹취록에 따르면 “하지 말라”고 저항하는 A씨에게 김 전 회장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나 안 늙었지”, “나이 먹었으면 부드럽게 굴 줄 알아야지.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A씨는 김 전 회장이 주로 음란물을 본 후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고소인 조사는 마쳤으나, 피고소인 조사는 진행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소 당시 김 전 회장이 이미 미국으로 떠난 뒤였기 때문이다. 김 전 회장은 2017년 7월 말 질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출국해 국내로 돌아오지 않았다.
■ 김준기 전 회장만? DB금융투자서 임직원 성추행 발생해 징계조치
DB그룹은 가사도우미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김준기 전 회장 사건에 이어 DB금융투자 임직원 성추행이 발생하자 빠른 조치를 취한 사실이 알려졌다. DB금융투자는 DB그룹의 핵심 계열사다. A센터장이 신입 여직원을 성추행 한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자 DB금융투자에서는 조사 끝에 A센터장에 대해 직위해제 조치를 했다. 피해 직원도 다른 근무지로 이동 조치 됐다.
■ MBG 임동표 회장, 출장지서 수행비서 2명 차례로 성추행 추가 재판
가짜 정보로 1천200억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임동표 MBG 회장도 여비서 성추행 혐의로 추가 재판을 받게 됐다. 임 외장은 2016년 12월부터 2017년 6월까지 해외 출장지 등에서 여성 수행비서 2명을 여러 차례에 걸쳐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미리 알고 접근해 ‘여비서 성추행 사실을 언론에 알리겠다’고 협박한 일당에게 임 회장은 22억원 가량을 뜯기기도 했다. 이들은 이후 기소돼 각각 징영 2년 6월과 3년을 선고 받았다.
여직원 성폭행 혐의로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호식이 두마리 치킨 최호식 회장 (사진=연합뉴스)
■ 호식이 두 마리 치킨 최호식 전 회장, 집행유예 선고
호식이두마리치킨 최호식 전 회장은 여직원 성폭행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최 전 회장은 2017년 6월 서울 강남의 한 호텔식당에서 여직원 A 씨를 강제로 추행한 혐의로 같은 해 10월 불구속 기소됐다.
최 전 회장은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가맹점주들은 지옥을 오가고 있다. 최 전 회장의 비행으로 인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불매 운동이 일며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6월 5일 이후 매출액이 전월 동기 대비 20~40% 가량 폭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 한샘?대구은행 임직원 성폭력에 고개 숙인 회장님
그런가 하면 임직원들의 일탈에 고개 숙인 회장님들도 있다.
박인규 전 회장 DGB금융그룹 회장은 비정규직 여직원 성추행 논란으로 고개를 숙였다. 2017년 7월 대구은행 간부급 직원 4명이 회식 등의 자리에서 비정규직 여직원을 성추행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당시 박 행장은 직원 4명에게 정직 등 중징계를 내린 후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샘 최양하 회장은 지난해 11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사내 이메일을 발송했다. 지난해 말 여직원을 대상으로 연이은 성폭력 사건이 벌어져 세간을 떠들썩했던 데 이어 또 다른 성폭력 사건이 터졌던 것으로 확인된 탓이다. 앞선 사건이 채 수습되기도 전 재발한 사내 위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한샘은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입단속을 해온 것으로 보여 비난을 면치 못했다. 더불어 최 회장은 “경영진부터 반성, 더 높은 윤리 기준을 세우겠다”고 공표 했지만 사내 성폭력이 반복되자 난감한 상황이 됐다.
여성 부하직원을 성폭행한 한샘의 전 직원은 지난 5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