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사업지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9일 오후 붕괴됐다. 건물이 휘어져있는 등 붕괴 조짐이 드러났다. 사고 당일 오전 촬영 모습(사진=광주경찰청)
인재(人災)다. 지난 9일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건물 붕괴 사고를 두고 후진국형 인재라는 지적이 곳곳서 나온다. ESG경영을 내세운 대형건설사가 시행을 맡은 공사장에서 터져나온 참극이라는 점에서 더욱 뼈 아프다.
특히나 원가 절감과 공가 단축을 위해 날림 공사가 자행됐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고 이에 대한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원청은 현장을 제대로 파악조차 못한 모습을 보였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그동안 안전을 강조하면서 여타 건설사 대비 사망사고가 분명 적었다. 지난해에는 현장 사망재해 0건을 기록했다. 대규모 조직 개편 속에 안전경영실까지 신설하며 ESG경영에서 사회(S) 영역도 강조했던 터다.
그러나 이 같은 현산의 공든 탑은 한순간에 사고로 무너졌다. 현산이 철거 현장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직접 시청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원인 규명과 관계없이 피해자들에게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하는 등 현산은 해당 사안을 중대히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ESG경영을 강조한 현산의 노력은 한번의 사고로 "'ESG워싱'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위장 ESG경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현장 곳곳에서 일어나는 잡음을 봤을 때 일리가 있는 부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환경파괴 주범인 건설업계가 ESG경영을 하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맞물려있다.
현산을 포함해 건설업계가 'ESG워싱'이라는 오명을 벗고자 한다면 작은 것부터 세세히 챙겨나가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더 들고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고에도 철거 시간을 무리하게 단축시키려다가 도로 통제도 이뤄지지 않으면서 벌어진 참변이다.
결국 기업의 ESG경영 진정성은 비용과 시간에서 나온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꿈꾼다면 '최대한 싸고 빠르게'라는 마인드가 우선되서는 안 된다.
우리는 빛의 속도로 갈 수 없기에 천천히 가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천천히 간다면 주변을 놓치는 일도 덜하다. 건설업계의 ESG경영을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 핵심은 공존에 있다. 공존은 비용과 시간의 절감 문제가 아니다. 언제나 타인과 주변을 살피는 일이다.
박범계 법무부장관은 사고 현장을 찾아 "공공 형사정책의 핵심은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중심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설업계의 ESG경영 핵심 역시 사람의 생명과 안전이 우선시돼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