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뷰어스 DB
장범준은 정형성을 탈피한 가수다. 뛰어난 발성에 속이 뻥 뚫리는 고음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주제와 가벼우면서도 이미지가 그려지는 일상을 표현한 가사, 그 안에 그윽하게 묻어있는 그리움이나 애잔함이 장범준만의 매력이다. 장범준의 음악이 취향인 팬들은 언제나 그의 신곡을 기다리고, 이어폰을 귀에서 떼지 않는다.
10대부터 40대까지를 아우르는 장범준의 힘이 또 한 번 발휘됐다.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OST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이하 ‘흔꽃샴푸’)를 통해서다.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이 연출하고 감각적인 연기력을 가진 배우 천우희와 안재홍이 출연하는 ‘멜로가 체질’은 당초 기대보다는 낮은 성과를 기록 중이다. 시청률은 1%대에 머물러 있으며, 화제성도 높지 않다. 작품적으로도 멜로의 긴장감이 높지 않으며, 방송국을 소재로 하고 있어 공감대 측면에서도 시청자들을 사로잡지 못한다는 평가가 있다. 천우희, 안재홍, 전여빈 등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연기자들의 연기력이나 이 감독 특유의 대사, 처낼 건 처내는 센스 있는 전개 등 장점이 없진 않으나 기대만큼은 아닌 결과다.
그런 가운데 장범준의 ‘흔꽃샴푸’가 멜론을 비롯한 각종 음원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신예 임재현의 등장으로 1위 자리를 내줬기는 하나, 여전히 상위권에 랭크 중이다. 8월 23일 오후 6시에 발매된 이 곡은 60위로 출발했지만, 25일에는 83위까지 떨어졌다. 이후 차근차근 순위를 올려가더니 발매 한 달이 지난 9월 23일 오후 11시에 1위에 올라섰다.
최근 tvN ‘호텔 델루나’ 속 태연의 ‘그대라는 시’를 비롯해 다양한 음악들이 차트를 휩쓴 바 있지만 ‘멜로가 체질’과는 경우가 다르다. ‘호텔 델루나’는 마지막회가 12% 시청률(닐슨 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을 넘어섰으며, 방영 기간 내내 10% 가까운 시청률과 화제성 1위를 기록한 작품이다. 특히 tvN ‘나의 아저씨’ 이후 팬덤의 폭이 넓어진 아이유와 이를 받쳐준 안정적인 여진구 외 신정근, 배해선, 강미나, 피오 등 인기 있는 스타들의 힘과 홍자매(홍정은·홍미란) 작가의 필력도 OST 1위에 순기능으로 작용했다.
사진제공=JTBC
장범준의 ‘흔꽃샴푸’ 역주행은 드라마 드라마의 영향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룬 결과물이며, 오롯이 장범준의 힘으로만 탄생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우연히 길을 걷다 맡은 꽃향기에서 과거 사랑했던 연인의 샴푸향이 비슷하다는 내용으로 전개되는 이 곡은 과거의 사랑했던 연인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묻어있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 스쳐 지나간건가 뒤돌아보지만 그냥 사람들만 보이는거야” “다와 가는 집근처에서 괜히 핸드폰만 만지는 거야” 등의 도입부 가사와 “걷다가 보면 항상 이렇게 너를 아쉬워하다 너를 기다린다고 말할까. 지금 집 앞에 계속 이렇게 너를 아쉬워 하다 너를 연락했다 할까”까지 이어지는 후렴구의 가사는 듣기만 해도 이미지가 그려지는 문장으로 쉽게 구성돼 장범준만의 매력이 진하게 전달된다. 버스커버스커 시절 ‘벚꽃엔딩’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장범준의 음악을 청취했던 많은 팬들의 감성을 충분히 자극할만한 노래다.
강태규 음악평론가는 “장범준은 일상적인 내용에 감성을 담아 그만의 언어로 표현하는데 탁월한 가수다. 전형적이지 않고 여유 있는 자유로움이 매력이며, 자기 색깔이 분명하다. 또 각박한 20대에게 희망을 전달하는 가사도 많은 팬들을 사로잡는다”며 “‘멜로가 체질’이 높지 않은데도 이러한 결과를 만들었다는 건 장범준의 능력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다. OST 제작자가 ‘멜로가 체질’의 가장 큰 수혜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