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TF 당정협의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화하고 있다.(사진=연합)
기획재정부는 지난 7월말 ‘2025년 세제개편안’을 내놨다. 일단 미사여구가 화려하다. ‘기술 주도 성장을 위한 효과적인 세제’, ‘모두의 성장을 위한 포용적 세제’, ‘공정한 성장을 위한 세입 기반 확충’ 등 세 가지를 주요 변화로 소개했다. 이를 아우르는 특징으로는 ‘진짜 성장을 위한 공평하고 효율적인 세제’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이재명 정부의 첫 세제개편안은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자본시장 관련 내용이 그랬다. 배당소득 분리과세 신설안은 시장의 기대에 한참 못 미쳤고, 증권거래세와 주식양도세는 없애도 시원찮을 판에 더 높이고 강화했다. 투자자 등 자본시장 참가자들은 ‘코스피 5000 시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건 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맞는 것인지 놀란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게다가 금융·보험업에 부과 중인 교육세를 0.5%에서 1.0%로 두 배 올린 것은 참으로 뜬금없는 조치였다. 교육세의 탄생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라면 가장 먼저 없애야 할 세금이 교육세라는 의견에 반박하기 힘들 것이다. 그만큼 교육세는 명분도, 실리도 부족한 세금이다. 그럼에도 기재부는 ‘부족한 세수 확보’라는 근시안적 목표에 매몰돼 ‘돈 잘 벌고 만만한 금융업’에 징벌적 과세를 부과하는 꼼수를 부렸다.
교육세의 기원은 1980년 신군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 세력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겠다며 ‘과외 전면 금지’를 발표했다.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과외를 금지하면 국민 다수의 환심을 살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조치였다. 선언까지는 좋았으나 문제는 당시 공교육 수준이다. 전국 팔도의 자녀들이 과외 없이 공정하게 입시를 치르려면 공교육 수준이 혁신적으로 향상돼야 했다. 이는 막대한 재정이 필요한 일이었고, 전두환의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이를 교육세 신설로 충당했다.
문제는 교육세가 ‘목적세’라는 점이다. 세금은 크게 직접세, 간접세, 목적세 세 가지로 분류된다. 소득세, 법인세, 상속세 등이 직접세이고, 간접세는 부가가치세가 대표적이다. 목적세는 정부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운용하는 세금을 일컫는다. 현재는 교육세와 함께 농어촌특별세, 교통에너지환경세 등이 있다. 목적세는 직접세, 간접세와 달리 세금을 걷은 뒤 반드시 해당 목적에만 사용할 수 있다. 교육세로 걷힌 세금을 교육 목적 외 다른 목적으로 쓸 수 없다.
신군부는 교육세 도입 당시 1986년까지 5년간 한시적으로 징수하기로 했다. 목적세는 한시적으로 운영되므로 대개 다른 세금에 추가적으로 얹는 형태로 징수한다. 만만한 게 술과 사치품이다. 술 사는 사람(주세), 사치품 사는 사람(특소세)에게 교육세를 걷어도 목표한 금액에는 한참 모자랐다. 그래서 재산세에도 교육세를 붙이기로 했다. 하지만 지방세인 재산세는 온 국민이 내는 세금이다. 조세 저항이 만만치 않아 정치적 부담이 크다. 결국 부가세 도입으로 폐지됐던 보험영업세를 부활시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금융업·보험업을 경영하는 자(금융·보험업자)가 40년 넘게 교육세를 부담하게 된 배경이다.
공교육 강화가 5년 만에 성사될 리 만무하다. 5년 한시 운용 약속은 어그러졌고, 운용 기한이 연장되다 급기야 1991년 영구세로 전환됐다. 목적세를 영구세로 전환하는 것은 몰상식한 일이었지만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방위세 폐지로 부족해진 세수를 교육세 영구세 전환으로 벌충하고자 했다. 조세 전문가들은 목적세 취지 무색, 세금 운용 경직성 등의 문제를 들어 반대했지만 먹히질 않았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 목적세 정비를 추진하며 잘못을 바로잡아보려 했지만 교육단체들의 반발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 후로 교육세는 영구적 목적세로 자리 잡아 금융권에선 매년 조 단위 세금을 납부한다. 지난해 기준 1조7500억원 수준인데, 개편안이 적용되면 약 3조원으로 1조3000억원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어차피 낼 세금, 잘 쓰이기만 한다면 그나마 속이 덜 쓰릴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이 과외 금지 시대인가. 사교육비가 무서워 아이를 못 낳겠다는 말이 상식처럼 들리는 시대다. 그렇다면 공교육 수준이 형편없는 시대인가.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EBS만 활용해도 웬만한 목표는 이룰 수 있는 시대다. 대학입시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사교육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 것은 교육개혁 실패의 산물이지 교육예산 부족의 산물이 아니다.
틈틈이 나오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면 초·중·고 학교 현장의 방만한 예산 집행 실태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2018년부터 5년간 현금·복지성 지원사업에 사용한 교육교부금만 총 3조5000억원에 달한다. 소방공무원들은 단돈 몇 억원이 부족해 노후장비를 참고 견디는 판에, 교육공무원들은 불요불급한 사업에 매년 수천억을 낭비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사교육비가 무서워 아이를 못 낳겠다고 아우성이고, 다른 쪽에서는 남아도는 예산을 쓸 데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현실이 이러한데 기재부는 교육세를 두 배로 올렸다. 금융·보험업의 국내 총부가가치가 1981년 1.8조원에서 2023년 138.5조원으로 75배나 증가했는데 세율은 그대로여서 인상한다고 개정 취지를 밝혔다. 수익 1조원 이상의 초대형 금융사(약 60개)에만 적용하는 것이어서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상식을 가진 이라면 기재부의 이런 설명이 납득이 되겠는가. 걷어서 긴요 긴급한 사업에 쓰겠다면 또 모른다. 교육세는 목적세여서 교육 목적 외에 쓸 수가 없다. 목적을 달성한 목적세는 없애는 것이 맞다. 세수가 부족하면 일반회계에 포함되는 직·간접세를 건드리는 게 올바른 방법이다. 그래야 긴요 긴급한 곳에 재정을 투입할 수 있다. 교육세를 올리면 세수 총액은 늘어날지 몰라도 재정 집행의 효율성과 탄력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앞으로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다. 이는 지금 당장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정해진 미래다. 교육세를 당장 손볼 도리가 없다면 초중등 교육에 넘쳐나는 예산을 고등교육으로라도 넘기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지다. 금융권에선 이왕지사 교육세를 내야 한다면 금융교육을 강화하는 쪽으로라도 쓰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현 정치권과 기재부의 리더십이다.
40년의 세월이 흘러 교육세는 이제 너무 많이 걷혀 문제인 세금이 됐다. 구윤철 부총리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도 시원찮을 판에 정권에 잘 보이려 교육세 인상이라는 꼼수를 썼다. 윤석열 정부를 포함해 기재부가 정권의 불합리한 외압을 버티기보다 필요 이상으로 알아서 야합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 결과가 기재부 해체인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자업자득이라 한들, 사필귀정이라 한들 마음속 씁쓸함이 가시겠는가.
모 금융계 인사가 ‘PBR도 모르는 무능한 부총리’라며 입에 거품을 물 때만 해도 섣부른 평가다 싶었다. 지금은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경제부총리를 잘못 뽑았다.
지난 7월말 발표된 이재명 정부의 첫 세제개편안. 법인세율 인상, 증권거래세율 인상, 주식 양도소득세 기준 강화, 금융보험업 교육세 인상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자료=기획재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