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웰푸드 빼빼로 글로벌 광고 캠페인이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거리에서 상영 중인 모습. (사진=롯데웰푸드)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거리 한복판의 대형 전광판에 ‘빼빼로’ 글씨가 선명합니다. 빼빼로 제조사인 롯데웰푸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빼빼로 브랜드와 빼빼로데이를 알리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데요. ‘나눔’을 빼빼로 브랜드 핵심 가치로 삼고, 이를 글로벌 소비자에게도 전파한다는 전략입니다. 이 같은 ‘빼빼로데이 수출’ 덕분에 빼빼로를 선물로 주고받는 광경을 해외에서도 볼 수 있게 됐죠.
한국도 이맘때쯤이면 어딜 가더라도 빼빼로 매대가 하나씩은 자리 잡은 모습이 일상 풍경이 됐는데요. 유통가에서 ‘빼빼로데이 특수’를 노리고 저마다 고객 발길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형마트와 달리 편의점은 빼빼로데이가 연중 최대 대목으로 꼽히는 만큼 마케팅 경쟁도 한층 치열하게 펼쳐지곤 하죠. 올해도 편의점들은 각종 기획 상품을 쏟아내며 빼빼로데이 마케팅에 돌입했습니다.
CU는 인기 캐릭터 ‘리락쿠마’, 카카오톡 이모티콘 캐릭터 ‘곽철이’ 등과 협업한 소장용 굿즈 30여종을, GS25는 자체 캐릭터 ‘무무씨’를 활용한 차량용목쿠션 등 빼빼로 기획 상품을 선보였습니다. 세븐일레븐도 뷰티브랜드 ‘어뮤즈’와 손잡고 파우치키링세트와 스티커세트 등 한정판 빼빼로 기획상품 4종을 내놨죠. 귀엽고 유용한 각양각색 굿즈들을 보면 없던 구매 의욕도 샘솟곤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묘한 위화감도 드는데요. 빼빼로데이에 정작 빼빼로의 존재감이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잠시 10여 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볼까요. 빼빼로데이가 본격적으로 대중적인 기념일로 자리잡던 2000년대 초중반 당시, 주로 오가던 선물은 빼빼로 자체였습니다. 누구나 부담 없이, 누구에게나 가볍게 선물할 수 있다는 점이 빼빼로데이가 가진 매력이었죠. 간혹 빼빼로를 이어 붙인 커다란 하트 모양 등을 만들며 눈길을 끌던 이도 있었지만, 결국 내용물 자체는 빼빼로였습니다. 거대한 빼빼로 조형물을 선물 받은 사람은 의기양양하게 빼빼로를 하나씩 꺼내 돌리곤 했죠.
덕분에 빼빼로 제조사인 롯데웰푸드, 당시 롯데제과는 큰 수혜를 받았습니다. 매년 빼빼로 데이 시즌에만 연간 빼빼로 매출의 절반가량이 집중될 정도로 ‘특수’를 누렸었죠. 하지만 빼빼로데이에 힘입어 빼빼로가 대중적인 과자로 자리 잡으면서 제품 판매량은 연중 고르게 성장했습니다. 빼빼로데이 기간에 집중된 매출 비중도 점차 낮아졌죠. 빼빼로 판매량은 매년 늘어났지만, 오히려 빼빼로 데이 시즌이 전체 빼빼로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30% 초반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CU가 올해 곰 캐릭터 ‘리락쿠마’와 협업해 선보인 빼빼로데이 기획 상품. (사진=BGF리테일)
이렇게 빼빼로에서 줄어든 ‘빼빼로데이 특수’는 앞서 보신 것과 같은 다양한 굿즈들이 차지했습니다. 테이프로 얼기설기 이어 붙였던 빼빼로 자리는 다양한 캐릭터가 그려진 상자들이 대신했고, 그 옆에는 볼펜과 수첩 등에서부터 쿠션, 우산, 키링, 파우치, 가방 등 각양각색 상품들이 함께 놓였습니다. 지난해 갑작스런 한파 등으로 빼빼로데이 기간 편의점 매출이 전년보다 줄어들었지만, 빼빼로데이 관련 굿즈 매출만큼은 증가했을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죠.
이처럼 빼빼로데이에서 굿즈가 차지하는 지분이 커지는 것은 갈수록 치열해진 마케팅 경쟁 때문입니다. 편의점의 경우 빼빼로를 사러 온 고객이 다른 상품도 함께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 빼빼로데이가 연중 최대 대목으로 자리 잡았고, 그만큼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차별화 상품의 중요성도 커졌습니다. 처음에는 포장지에 캐릭터를 입힌 정도였지만, 이마저도 결국 같은 ‘빼빼로’인만큼 제품만으론 한계가 있었죠. 자연스럽게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굿즈는 해마다 다양해졌습니다.
빼빼로데이에서 빼빼로가 차지하는 존재감은 흐려졌지만, 관련 마케팅은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편의점업계는 빼빼로데이 의미를 ‘빼빼로를 주고 받는 기념일’에서 ‘선물을 주고 받는 기념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편의점의 높은 접근성과 넓은 관계를 아우르는 빼빼로 데이를 접목해 매출 확대를 노린다는 전략이죠. 이제는 빼빼로보다도 빼빼로데이에 맞춰 출시되는 굿즈가 주인공이 된 모습입니다.
빼빼로를 벗어나 주고받을 선물이 늘어난다는 것 자체는 소비자 선택권에 있어서 분명 좋은 일입니다. 굿즈 종류가 다양해진 만큼 가격 폭도 넓어져서, 여전히 가벼운 선물 정도는 쉽게 찾아볼 수 있죠. 다만 빼빼로데이가 학생도 부담 없이 선물을 전할 수 있다는 점 덕분에 대중적인 기념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물' 자체가 강조되는 모습은 애매한 상실감이 들게 합니다. 모쪼록 커다란 빼빼로 상자 덩어리를 하나하나 뜯어서 나눠 먹던 ‘나눔’ 문화가 오래 이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