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Viewer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10여년전, 비메모리 반도체와 바이오 등을 신수종사업으로 선택해 대대적으로 사업 구조를 바꿨던 삼성이 최근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막대한 규모의 투자에도 여전히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고민이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최근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에 대한 경영진단에 들어갔다. 지난해 11월, 삼성 계열사와 사업부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신설한 삼성글로벌리서치 산하 경영진단실이 처음으로 실시하는 프로젝트다. 업계에서는 시스템LSI 사업 진단 이후 파운드리 사업도 들여다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은 2014~2015년 방산과 화학 부문을 매각하면서 바이오와 비메모리 등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키우기로 했다. 이후 2030년까지 171조원을 투입해 시스템반도체 1위에 올라서겠다는 '비전 2030'을 내놓으며 육성 의지를 불태웠다.

삼성전자 사업부문별 영업이익.(자료=삼성전자 홈페이지)


■ 정체된 비메모리, 뒤쳐진 AI메모리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사업은 반도체 설계를 하는 시스템LSI와 다른 회사가 설계한 반도체를 만들어주는 파운드리로 나뉜다. 시스템LSI사업부에서 설계하는 디스플레이구동칩(DDI)는 약 30%의 점유율로 세계 1위다. 이미지센서는 소니에 이어 2위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하지만 성장이 정체돼 있다. 퀄컴(스마트폰 AP), 소니(이미지센서) 등 경쟁사에 밀리며 제자리걸음 중이다.

파운드리 사업은 글로벌 1위 TSMC를 따라잡기는커녕 오히려 뒤쳐졌다. 2019년 '비전 2030'을 발표할 당시만해도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19% 정도였는데, 작년말에는 8%대로 줄었다.

메모리 반도체도 사정이 좋지 않다. 특히 AI 시대에 필수 반도체로 자리잡은 고대역폭메모리(HBM)에 대한 실기로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차세대 반도체 주도권을 내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메모리 시장 전체 점유율은 여전히 삼성전자가 41% 수준으로 1위다. 하지만 HBM만 놓고 보면 SK하이닉스가 53%, 삼성전자는 38% 수준이다.

■ 시스템LSI부터 '정밀진단'…미래 결정지을 '열쇠'

이는 실적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사업부의 영업이익은 15조원을 조금 넘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23조5000억원 수준으로 삼성전자 DS를 넘어섰다. 투자 대비 성과가 낮은 비메모리, 그리고 고부가제품인 HBM 등으로 인한 것이다.

이규복 반도체공학회장은 산업연구원에 기고한 글에서 "메모리에 국한된 현재의 한국 반도체산업 구조로는 현 산업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없을 것"이라며 "AI 반도체 등의 시스템반도체를 함께 키워가고, 이를 위해 정부와 대기업, 연구소의 꾸준한 지원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메모리 부문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10년전 새로운 사업으로 비메모리를 낙점한 선택을 잘못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기대했던 수준으로 성장시키기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이에 삼성은 선택을 성공으로 만들기 위해 경영진단 시스템을 가동했다. 진단 결과가 나오면 조직개편이나 경영시스템 구축, 해외 고객 유치를 위한 대책 등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의 이번 선택은 향후 10년을 넘어 삼성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