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Viewers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핵심 사업인 게임 부문만으로 앞으로 5년 내에 매출 7조 원, 기업 가치를 2배로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을 이어가겠다.”
2025년 2월, 연간실적발표에서 김창한 대표가 밝힌 크래프톤의 중장기 목표다. 2024년 매출 2조 7098억 원, 영업이익 1조 1825억 원을 달성한 이 회사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확실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크래프톤의 히트작 ‘배틀그라운드’. (사진=크래프톤)
■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PUBG: 배틀그라운드’의 대성공
크래프톤은 한때 ‘성공보다 실패가 익숙한 회사’였다. 2007년 설립된 블루홀은 2011년 MMORPG ‘테라’로 대한민국게임대상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지만 이후 야심차게 준비했던 게임들이 유저와 시장의 외면을 받으면서 회사는 위기를 맞았다.
2015년 블루홀은 기존에 강점을 보여왔던 대규모 RPG 중심의 개발 전략에서 벗어나, 유연하고 도전적인 개발 환경을 구축하고자 다양한 개발 스튜디오를 통해 ‘연합’ 전략을 취하면서 게임 시장에 도전했다.
모두가 모바일 시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던 2015년 11월, 김창한 PD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배틀로얄 PC 게임의 개발 제안서를 경영진에게 내밀었다. 이 48쪽의 제안서가 대한민국 게임 흥행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타이틀이 되리라는 것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 (사진=크래프톤)
김창한 PD는 과거 온라인게임 3개를 만들었으나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유행에 맞춘 게임보다는, 실패하더라도 하고 싶은 장르에 도전하기로 했다. 2016년 3월, 20명 개발팀으로 시작한 ‘배틀그라운드’는 개발 1년만인 2017년 3월 스팀에 얼리억세스로 출시됐다.
개발 기간 동안 회사는 보릿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배틀그라운드’ 개발팀에는 지원자가 없어 해외 인력을 영입해 만들었고, 회사는 연간 당기순손실 200억 원을 기록할 정도로 경영 상태도 좋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세상에 나온 ‘배틀그라운드’는 그야말로 기적처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100명이 낙하산을 타고 전장에 뛰어내려 단 한 명만 살아남는 구조. 익숙하지 않지만 직관적이었고, 게임 스트리밍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글로벌 게이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배틀그라운드’는 출시 1년도 되지 않아 세계 게임 산업을 장악했고, 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스팀 역사상 가장 많은 동시 접속자를 보유한 게임이 됐다. 8주년 업데이트를 한 2025년 3월에는 동시접속자 수 140만 명 이상을 기록하며 여전히 강력한 IP의 힘을 자랑했다.
‘배틀그라운드’는 게임 자체의 성공을 넘어 크래프톤의 체질을 바꿨다. 2018년, 회사는 제작 라인간 독립성과 시너지를 강화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구축하기 위해 사명을 ‘블루홀’에서 ‘크래프톤’으로 변경했다. 2020년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 개발자인 김창한 PD을 CEO로 맞이하고, 2021년 코스피에 상장하며 다시 한 번 도약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