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HMM 인수로 해운업 복귀를 타진하고 있습니다. 30여 년 전 스스로 손을 뗀 영역에 다시 발을 들이려는 배경에는 단순한 사업 다각화를 넘어 정치적·산업적 복합 계산이 깔려 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 거양해운의 탄생과 매각 그리고 청와대의 미움
포스코의 해운업 진출은 1990년 거양해운 설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철학원의 장학사업 자금 확보를 위해 설립한 거양해운은 철광석·제품 물류를 담당했습니다. 1994년 김만제 회장이 취임하면서 포스코는 ‘비핵심 계열사 정리’ 기조를 내세웠고, 철강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거양해운을 매각 대상에 올렸습니다. 1995년 결국 한진해운이 인수에 성공하면서 포스코의 해운업 실험은 5년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포스코 민영화를 추진하던 청와대와 불협화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포스코는 광양과 포항을 분리해서라도 매각하려던 정부의 움직임에 내심 반대 입장이었습니다. 김만제 회장이 독자적 구조조정으로 거양해운 매각을 추진하면서 청와대 경제수석실과 갈등이 불거졌고 “공기업을 사기업처럼 운영한다”는 불만이 청와대 내부에 번졌습니다. 이로 인해 포스코는 정권 핵심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고 거양해운 매각은 ‘정치적 뒷맛’을 남겼습니다.
■ 30년 만에 해운 복귀 모색…왜 지금?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포스코가 다시 해운업 복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대상은 국내 1위 컨테이너선사 HMM입니다. 포스코는 삼일회계법인, BCG, 대형 로펌 등과 자문 계약을 맺고 인수 타당성을 분석중입니다.
철강업 침체와 자동차·건설 내수 둔화로 주력 사업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안정적 기간산업을 확보하고 HMM 인수 시 자금 안정성을 기반으로 선대 확충이 가능해지며 장기적으로 물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도 따릅니다.
이번 인수를 두고 "정치적 고려가 깔린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됩니다. 과거 거양해운 매각 과정에서 청와대의 미움을 샀던 것처럼, 이번에는 반대로 현 정부와의 ‘관계 회복용 카드’라는 것입니다.
특히 최근 포스코는 현 정권으로부터 ‘홀대론’이 흘러나오는 상황입니다. 포스코이앤씨의 중대재해, 구조조정 압박 속에서 그룹은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마침 현 정부는 HMM 매각에 적극적입니다. "포스코가 정부 기류에 발맞추려는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재계 안팎에서 고개를 드는 이유입니다.
생각에 잠긴 포스코이앤씨 대표 (사진=연합뉴스)
■해운업계의 반발과 법적 장벽 넘어…청와대 환심 살 기회
포스코가 산업은행 지분(36.02%)을 인수해 최대주주가 되면 국정과제인 부산 이전 공약 실현에 얼마나 협조에 하냐에 따라 포스코의 위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HMM 본사의 부산 이전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마침 HMM 매각의 키를 잡고 있는 KDB산업은행 회장에는 이 대통령과 중앙대 법대 82학번 동기인 박상진 전 산은 준법감시인이 내정됐습니다.
그러나 길은 순탄치 않습니다. 해운업계는 이미 강력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한국해운협회는 "포스코가 HMM을 인수하면 기존 선사들이 물량을 잃고 해운 생태계가 붕괴된다"고 주장합니다. 국내 법령도 걸림돌입니다. 해운법 24조는 제철원료·액화가스 등 대량 화주사가 해운업에 진출할 경우 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과거 거양해운, 호유해운, 동양상선 등 대기업 해운 자회사들이 줄줄이 실패한 전례도 발목을 잡습니다.
인수가 성사된다면 포스코는 연간 수조 원의 물류비 절감 효과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 완화라는 확실한 이득을 챙길 수 있습니다. 또한 철강 이후의 신성장동력으로 '해운'이라는 기간산업을 확보하는 의미도 큽니다. 반면 막대한 자본 투입 부담, 해운업 불황기의 위험 노출, 해운업계와의 갈등 등은 치명적인 변수입니다. 포스코의 선택이 '새로운 기간산업 확보'라는 결실로 이어질지 아니면 '거양해운의 그림자'처럼 다시금 정치와 이해관계에 휘말릴지는 여전히 안갯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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