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이소연 기자] 드라마 속 주인공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는 사회의 뿌리박힌 인식을 무의식중에 드러낸다. 시청자들이 남자 주인공의 도움 없이 주체적으로 나아가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을 유의 깊게 보는 이유도 고정된 성역할을 깨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드라마에서는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관계가 있다. ‘부모님’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은 모두가 마음이 동하는 부분이 있기에 대부분의 드라마가 비슷한 방식을 취한다. 물론 모든 가족관계마다 셀 수 없는 환경과 그로 인해 달라지는 심리적인 요소 등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표현방식’을 설명한다. 최근의 드라마들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친근한 존재, 말다툼을 하더라도 결국 가장 가까운 존재로 묘사된다. 반면 아빠는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이거나 이혼, 죽음 등으로 인해 먼 거리감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극중 엄마는 유독 딸과 유난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도 또 다른 포인트다.   ■ 이상적인 드라마 속 엄마들 SBS 드라마 ‘사랑의 온도’에서 나오는 이현수(서현진)의 부모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엄마 정애리(박미나)와 아빠 이민재(선우재덕)는 결혼한 지 30년이 넘어도 깨가 쏟아진다. 본인들이 사랑이 넘치니 당연히 딸들에게도 애정 어린 제스처가 나온다. 이현수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부모님은 한 걸음에 달려온다. 그렇지만 어쭙잖은 위안이나 호통은 건네지 않는다. 한 발짝 떨어져 주체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도와주면서 맘껏 울 수 있게 만든다. 이토록 이상적인 가정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드라마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희귀한 관계다. 다만 정애리와 이민재는 똑같이 이현수를 위로하는 듯 하지만 취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보통 딸과 정서적 교감이 깊은 엄마인 정애리는 이현수가 난관에 처할 때마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다. “얘 우는 모습 보기 싫었는데”라는 대사가 이를 나타낸다. 반면 이민재는 “얘가 어디 가서 울겠어. 우리 앞에서 울어야지”라면서 가정을 아우르는 아버지를 그린다. MBC 드라마 ‘20세기 소년소녀’에 나오는 김미경(김미경)과 사창완(김창완) 부부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김미경은 밥 한 술 제대로 먹지 않는 딸의 눈치를 보고 예민한 딸의 짜증에도 그저 걱정한다. 딸이 불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면 그 날 반찬은 어김없이 불고기다. 사창완은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무뚝뚝한 아빠이지만, 누구보다 사랑은 넘치는 전형적인 아버지상이다. 딸 사진진(한예슬)이 어린 시절, 아빠가 일하러 멀리 떠날 때 선물했던 기린 인형을 여전히 추억하는 것, 사창완이 가게에 딸의 캘린더를 걸어놓으면서도 노출 있는 옷 부분은 가려놓은 것 등이 이를 나타낸다. ■ 엄마가 친구이고, 친구가 엄마이고 SBS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 윤문선(황영희)과 남홍주(배수지)는 친구 같은 모녀사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둘이 생계를 꾸려온 두 사람은 그 누구보다 서로 의지하는 관계다. 드라마는 이를 극진한 사랑으로 포장하는 대신 친구처럼 수다도 떨고 장난도 치는 모습으로 표현한다. 남홍주는 윤문선에게 “면도기 어디있냐”고 소리치고, 윤문선은 털털한 딸을 끊임없이 ‘디스’하며 놀린다. 딸과 엄마가 오랜 시간을 단 둘이 보내는 과정에는 더 애틋한 감정의 교류가 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고 풀이되는 지점이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미묘한 벽이 허물어져 동등하기도 하고 서로를 보듬기도 하는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아울러 극중에서는 남홍주와 정재찬(이종석)이 모두 엄마가 아닌 아빠를 잃는 설정으로 나온다. 왜 엄마가 아닌 아빠였을까 궁금해진다. 또 왜 딸인 남홍주는 엄마와 단 둘이, 아들인 정재찬은 동생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까. 엄마와 딸, 아버지와 아들 두 관계에 대해 형성된 사회적인 인식이 은연중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   ■ 앙숙 같아도 결국 끈끈한 ‘사랑의 온도’에는 또 다른 가족관계가 나온다. 온정선(양세종)의 엄마 유영미(이미숙)와 그의 남편(안내상)이다. 유영미는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이를 지켜본 온정선은 두 사람 모두에게 진저리를 친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자신이 오너셰프가 되는 날까지도 이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점차 아빠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자관계다. 아빠와 온정선은 남 같아 보일 정도로 먼 사이를 그린다. 반면 엄마는 계속 온정선의 곁에 머물며 좋든 싫든 함께한다. 이혼 후 많은 남자들을 만나며 그들에게 의존하는 생활을 해온 유영미는 아들에게 역시 이 책임을 부여한다. 아들의 친형 같은 이에게 몰래 돈을 빌리고, “사고를 쳐도 어떻게든 해결해주겠지”라는 말을 한다. 나쁜 엄마의 전형일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부분은 다른 해석의 모성애와 아무리 미워도 뿌리칠 수 없는 모자의 연결고리인 듯싶다. 유영미는 “언제나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모성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자신의 생활에 대한 소신을 떳떳하게 밝힌다. 시청자들에게 유영미의 태도가 불편하고 이상하게 다가오는 것도 ‘절절한 모성애’의 패턴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바탕에는 사랑이 깔려있다. 유영미를 못마땅해 하던 온정선이 결국 엄마를 내치지 못한 것, 그리고 자신에 대한 사랑은 여전함을 깨닫고 서서히 웃음을 내비치기 시작한 것은 끈끈한 유대관계를 증명한다.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주인공 윤지호(정소민)의 ‘20세기 소년소녀’의 장영심(이상희)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가정은 일명 ‘원톱체제’다. 가부장적인 인식이 팽배한 형태로, 아버지는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왕인 듯 군림한다. 그 와중 엄마와 딸은 눈빛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은밀히 감정을 교류한다. 아무리 싸우고 말다툼을 해도 두 사람만이 통하는 애증관계가 있다.  가정에서 소외된 가부장적인 아빠, 그리고 남다른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딸과 엄마. 아직 벗어나지 못한 고질적인 굴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 드라마들은 단순히 고착된 선입견으로서가 아니라, 캐릭터의 성격과 상황의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처럼 설정한다는 점이다.

드라마가 '엄마'의 모습을 그리는 법

이소연 기자 승인 2017.10.31 09:09 | 최종 수정 2135.08.31 00:00 의견 0

[뷰어스=이소연 기자] 드라마 속 주인공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는 사회의 뿌리박힌 인식을 무의식중에 드러낸다. 시청자들이 남자 주인공의 도움 없이 주체적으로 나아가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을 유의 깊게 보는 이유도 고정된 성역할을 깨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드라마에서는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관계가 있다. ‘부모님’이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은 모두가 마음이 동하는 부분이 있기에 대부분의 드라마가 비슷한 방식을 취한다. 물론 모든 가족관계마다 셀 수 없는 환경과 그로 인해 달라지는 심리적인 요소 등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표현방식’을 설명한다.

최근의 드라마들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친근한 존재, 말다툼을 하더라도 결국 가장 가까운 존재로 묘사된다. 반면 아빠는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이거나 이혼, 죽음 등으로 인해 먼 거리감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극중 엄마는 유독 딸과 유난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도 또 다른 포인트다.

 

■ 이상적인 드라마 속 엄마들

SBS 드라마 ‘사랑의 온도’에서 나오는 이현수(서현진)의 부모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엄마 정애리(박미나)와 아빠 이민재(선우재덕)는 결혼한 지 30년이 넘어도 깨가 쏟아진다. 본인들이 사랑이 넘치니 당연히 딸들에게도 애정 어린 제스처가 나온다. 이현수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부모님은 한 걸음에 달려온다. 그렇지만 어쭙잖은 위안이나 호통은 건네지 않는다. 한 발짝 떨어져 주체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도와주면서 맘껏 울 수 있게 만든다. 이토록 이상적인 가정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드라마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희귀한 관계다.

다만 정애리와 이민재는 똑같이 이현수를 위로하는 듯 하지만 취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보통 딸과 정서적 교감이 깊은 엄마인 정애리는 이현수가 난관에 처할 때마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다. “얘 우는 모습 보기 싫었는데”라는 대사가 이를 나타낸다. 반면 이민재는 “얘가 어디 가서 울겠어. 우리 앞에서 울어야지”라면서 가정을 아우르는 아버지를 그린다.

MBC 드라마 ‘20세기 소년소녀’에 나오는 김미경(김미경)과 사창완(김창완) 부부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김미경은 밥 한 술 제대로 먹지 않는 딸의 눈치를 보고 예민한 딸의 짜증에도 그저 걱정한다. 딸이 불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면 그 날 반찬은 어김없이 불고기다. 사창완은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무뚝뚝한 아빠이지만, 누구보다 사랑은 넘치는 전형적인 아버지상이다. 딸 사진진(한예슬)이 어린 시절, 아빠가 일하러 멀리 떠날 때 선물했던 기린 인형을 여전히 추억하는 것, 사창완이 가게에 딸의 캘린더를 걸어놓으면서도 노출 있는 옷 부분은 가려놓은 것 등이 이를 나타낸다.

■ 엄마가 친구이고, 친구가 엄마이고

SBS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 윤문선(황영희)과 남홍주(배수지)는 친구 같은 모녀사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둘이 생계를 꾸려온 두 사람은 그 누구보다 서로 의지하는 관계다. 드라마는 이를 극진한 사랑으로 포장하는 대신 친구처럼 수다도 떨고 장난도 치는 모습으로 표현한다. 남홍주는 윤문선에게 “면도기 어디있냐”고 소리치고, 윤문선은 털털한 딸을 끊임없이 ‘디스’하며 놀린다. 딸과 엄마가 오랜 시간을 단 둘이 보내는 과정에는 더 애틋한 감정의 교류가 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고 풀이되는 지점이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미묘한 벽이 허물어져 동등하기도 하고 서로를 보듬기도 하는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아울러 극중에서는 남홍주와 정재찬(이종석)이 모두 엄마가 아닌 아빠를 잃는 설정으로 나온다. 왜 엄마가 아닌 아빠였을까 궁금해진다. 또 왜 딸인 남홍주는 엄마와 단 둘이, 아들인 정재찬은 동생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까. 엄마와 딸, 아버지와 아들 두 관계에 대해 형성된 사회적인 인식이 은연중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

 

■ 앙숙 같아도 결국 끈끈한

‘사랑의 온도’에는 또 다른 가족관계가 나온다. 온정선(양세종)의 엄마 유영미(이미숙)와 그의 남편(안내상)이다. 유영미는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이를 지켜본 온정선은 두 사람 모두에게 진저리를 친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자신이 오너셰프가 되는 날까지도 이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점차 아빠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자관계다. 아빠와 온정선은 남 같아 보일 정도로 먼 사이를 그린다. 반면 엄마는 계속 온정선의 곁에 머물며 좋든 싫든 함께한다. 이혼 후 많은 남자들을 만나며 그들에게 의존하는 생활을 해온 유영미는 아들에게 역시 이 책임을 부여한다. 아들의 친형 같은 이에게 몰래 돈을 빌리고, “사고를 쳐도 어떻게든 해결해주겠지”라는 말을 한다. 나쁜 엄마의 전형일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부분은 다른 해석의 모성애와 아무리 미워도 뿌리칠 수 없는 모자의 연결고리인 듯싶다. 유영미는 “언제나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모성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자신의 생활에 대한 소신을 떳떳하게 밝힌다. 시청자들에게 유영미의 태도가 불편하고 이상하게 다가오는 것도 ‘절절한 모성애’의 패턴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바탕에는 사랑이 깔려있다. 유영미를 못마땅해 하던 온정선이 결국 엄마를 내치지 못한 것, 그리고 자신에 대한 사랑은 여전함을 깨닫고 서서히 웃음을 내비치기 시작한 것은 끈끈한 유대관계를 증명한다.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주인공 윤지호(정소민)의 ‘20세기 소년소녀’의 장영심(이상희)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가정은 일명 ‘원톱체제’다. 가부장적인 인식이 팽배한 형태로, 아버지는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왕인 듯 군림한다. 그 와중 엄마와 딸은 눈빛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은밀히 감정을 교류한다. 아무리 싸우고 말다툼을 해도 두 사람만이 통하는 애증관계가 있다. 

가정에서 소외된 가부장적인 아빠, 그리고 남다른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딸과 엄마. 아직 벗어나지 못한 고질적인 굴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 드라마들은 단순히 고착된 선입견으로서가 아니라, 캐릭터의 성격과 상황의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처럼 설정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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