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1987' 스틸컷)
[뷰어스=문서영 기자] 우현, 안내상,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공통점은? 또 박처원 전 치안감, 이근안 전 경감과 다른 점은? 영화 ‘1987’의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그 시대를 다르게 살아냈던 인물들이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영화 속에서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여전히 생생한 역사의 산 증인들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 14일 박종철 열사 31주기 추모 행사가 치러지고 ‘1987’ 관객수가 500만명을 넘어서면서 1987년 6월 항쟁의 더 상세한 이야기, 더 명확한 진실을 알고자 하는 이들이 많은 상황이다. 1987년 그 날의 한복판에 서 있던 이들은 책으로 당시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여전히 뜨겁게 전한다. 또 객관적 시각으로, 문학으로 그날의 일을 상세히 전하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도 눈길을 끈다.
(사진=관련 책표지)
■ 그들은 그 날, 그 역사 한가운데 있었다
영화 ‘1987’에서는 이희준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파헤치는 인물을 연기한다. 실제로는 ‘특종 1987’(중앙북스) 신성호 당시 중앙일보 기자가 최초 보도했다. 그는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박종철 사건 보도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5공 시절의 의문사 가운데 하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역사의 흐름으로 보면 민주화는 결국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박종철 사건이 한국의 민주화를 최소한 몇 년은 앞당겼다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특종 1987’은 박종철 30주기를 맞아 이 사건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전 중앙일보 기자 신성호가 당시 목격한 사건의 진실, 언론 탄압에 맞선 그의 첫 보도가 전 언론에 미친 영향, 이후 6·10항쟁을 거쳐 6·29선언을 이끌어내기까지의 전 과정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책이다. 한국 언론의 방향성을 되짚어보는 것은 물론 청년 박종철이 죽음으로써 찾고자 했던 대한민국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1987년 영등포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이부영(76) 전 의원으로부터 “고(故)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년 1월 14일)의 진범이 더 있다”는 폭로 서신을 전달받은 인물. 영화 ‘1987’에서 벙거지를 푹 눌러 쓴 설경구가 연기한 인물은 바로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김정남 씨다. 그는 ‘진실 광장에 서다’(창작과비평사)를 통해 그 시대에 서 있던 사람으로서 민주화를 향한 열망과 실상을 다뤘다.
5.16 군사쿠데타부터 6월항쟁까지의 군부독재와 민주화운동을 지근거리에서 보고 듣고 참여해온 저자는 그 시대를, 그리고 자신의 인생 역정을 빼곡이 기록하고 있다. 김정남 씨는 김자하의 양심선언 발표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진상조작 발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에서 김현장의 자수에 얽힌 뒷이야기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사들을 공개한다. 민주화운동의 대부로서 온갖 뒷바라지를 했던 그이기에 써내려갈 수 있었던 내용이기도 하다. 특히 민주화운동에 이바지한 사람, 군부독재에 앞장선 사람들을 가능한 한 꼼꼼히 기록하여 시대와 역사의 뒤편을 묵묵히 지켜온 이름없는 이들을 재조명한다.
(사진=알마)
‘큰 무당 나와야 정치 살아난다-6월 항쟁의 스님 지선과의 대화’(손석춘 | 알마)는 책표지의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한다. 지선 스님은 무장한 경찰들 앞에 담담히 서 있다. 6월 민주항쟁의 ‘얼굴’이자 6월항쟁 때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의장이기도 했다. 언론학자이자 정치 사회 작가인 저자는 지선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군사독재의 서슬에 상처 입은 청년 학생, 전쟁 같은 노동에 쓰러져간 노동자와 농민 등의 아픔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더 나아가 특히 현재 한국 정치의 과제가 무엇이고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6월 민주항쟁 25주년을 기념하는 해, 지선 스님은 정치인은 해원상생의 큰 무당이 되어 모든 사람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창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남영동’(중원문화)의 故 김근태 전 의원이다. 고인은 ‘남영동’에 고문기록 및 옥중서신을 담아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 박처원 전 치안감 등 애국자라 주장했던 이들의 실상을 폭로한다. ‘남영동’은 1987년이 되기 2년 전인 1985년 여름 서울시 용산구 남영동에 자리한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20여 일에 걸쳐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10여 번의 전기고문과 물고문 등을 고문을 당하면서 몸과 마음이 완전히 파괴된 상태에 이른 저자의 고문기록이다. 고문이 남긴 육체적ㆍ정신적 아픔을 추스르고 다시 깨어 일어난 한 인간의 회생의 과정도 밝히고 있다. 특히 옥중서신 등을 통해 고문의 진상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사진=관련 책표지)
■ 더 알아도 모자라지 않을 1987년
‘민주주의 잔혹사’(홍석률 | 창비)는 6월항쟁 30주년을 앞둔 시점에 대학생으로 현장에 있었던 역사학자 홍석률이 가시밭길 민주주의 여정을 당대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책이다.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해 희생된 이들에 대한 기록이라는 의미를 넘어 미처 꽃피우지 못했던 그들의 삶, 그리고 역사의 수많은 우연에 기꺼이 녹아든 할머니, 여성노동자, 도시빈민 등 이름없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현장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인물들이 아직까지 살아 있고, 일간지를 비롯한 관련 기록이 일 단위로 쌓여 있음에도 지금까지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던 한국현대사를 다큐멘터리처럼, 드라마처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6월항쟁’(서중석 | 돌베개)은 6월 항쟁 당시 취재기자였던 저자가 현장에서 목격했던 흥분과 감동을 또렷하게 그려낸 책이다. 저자는 6월 항쟁을 1945년 8·15해방, 1960년 4·19혁명에 이어 한국인이 맞는 세 번째 해방이라고 강조하며, 6월 항쟁을 둘러싼 논쟁들에 대해 기존의 주장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6월 항쟁의 역사적 의미와 유산을 현재적 시점에서 재평가한다. 특히 전두환 정권의 4·13호헌조치 이후 불붙기 시작한 민중시위가 명동성당농성투쟁에서 6·10항쟁, 6·23평화대행진으로 거대한 물결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현장감 있게 담아냈다. 더불어 시위대별 구성 주체와 시민들의 반응 등 당시 자료를 참고하여 빠짐없이 기록하고, 6월 항쟁에 대응하는 전두환 정권 측의 반응과 동향까지 더해 6월 항쟁이라는 큰 그림을 입체적으로 재현한다.
(사진=관련 책표지)
■ '1987' 문학이 말하는 그 해는
‘100도씨’(최규석 | 창비)는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로부터 작업을 제안받아 만든 작품이다. 이 책은 2008년부터 전국 중·고등학교에 현대사 수업 보충교재로 배포됐다. 제대로 된 진실을 알 수 있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최규석 작가는 녹록지 않은 작업을 수락했다고 한다.
‘100℃’는 고지식한 대학생 영호가 대학에 입학해 처음으로 광주민주항쟁에 대해 알게 되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겪으면서 진지하게 학생운동에 뛰어들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운동을 안 하자니 양심에 찔리고 하자니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강하다”는 85학번 새내기 영호를 중심인물로 내세워 6·10 민주항쟁이 발생하게 된 과정을 훑는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민주쟁취”를 외치며 공장으로 들어가고 거리로 나섰던 영호의 친구들, 데모는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믿었지만 ‘북괴의 지령을 받은 빨갱이’라는 말이 실은 군부 정권의 억압과 탄압의 도구였다는 것을 알고 ‘각성’하게 되는 영호 부모님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서사에 녹아들어 있다. 1987년 1월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10일 범국민대회 하루 전날의 시위에서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이한열 열사에 대한 상징적 순간들도 빠짐없이 담겨 있어 그 의미를 더한다.
‘유월, 그것은 우리 운명의 시작이었다-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 66인 시집’(고은 | 화남출판사)는 앞선 책들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6월 항재을 되짚어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6·10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시집이다. 6·10항쟁과 관련한 시인 66명의 작품들을 한 권으로 묶었고, 항쟁을 전후해 쓰인 시 20편과 민주열사들에 대한 추모시 등이 함께 수록돼 있다. 시대정신의 파수꾼으로서 한국의 시인, 작가 200여 명은 1987년 4월 29일, 전두환 정권의 군부출동이 예견된 가운데서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채광석 시인 주도로 ‘4·13호헌조치에 대한 문학인 194인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로 인해 4·13 호헌반대의 물꼬를 텄으며, 6월 민주시민항쟁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민주화를 위한 열망에 동참했던 문학인들의 진심과 시선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