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배우 최재림
[뷰어스=김희윤 기자] “제 가장 큰 장점이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거요 (웃음)”
무대를 압도하는 외모와 피지컬, 시원시원한 가창력, 여기에 능청스러운 연기력까지 갖췄다. 무엇보다 한계가 없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유연함으로 매 무대 모든 공연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는 점에서 최재림은 완성형 뮤지컬배우 중에서도 존재감이 독보적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롤라를 맡아 연기 스펙트럼을 한 단계 더 넓힐 욕심을 낸다.
■ 최재림과 롤라 사이
“‘킹키부츠’ 초반 공연에 했던 ‘랜드 오브 롤라(Land of Lola)’ 영상을 최근 다시 봤는데 많이 뻣뻣하다고 느껴졌어요. 공연 초기에는 무대 위 롤라를 확실하게 보여주고자 무의식중에 힘을 주고 임했던 것 같아요. 물론 연습이나 공연 땐 다들 좋다고 해주셨죠. 그런데 실제론 3월초나 돼서야 몸이 좀 풀렸어요. 조명을 받으며 롤라를 드러내는데 문득 ‘내 클럽에 나를 보러온 손님들이 많은데 왜 이렇게 긴장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턴 맘이 편안해졌어요. 클럽의 주인으로서 관객들을 응대하는 건 당연하니까 편해질 수밖에 없었죠”
그는 국내에선 벌써 세 번째 시즌인 ‘킹키부츠’의 매력에 푹 빠졌다. ‘킹키부츠’는 대본, 음악, 구성이 전부 적재적소에 배치돼 기승전결이 뚜렷한 뮤지컬 중의 뮤지컬이다. 그는 초연 당시부터 롤라라는 배역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배우로선 도전이자 부담인 캐릭터다.
“롤라와 찰리 둘 다 끌리는 배역이었어요. 다만 찰리보단 롤라가 최재림을 더 보여줄 수 있는 요소가 많다고 생각했죠. 롤라는 기존에 했던 배역들 성격과는 달랐어요. 그렇다고 못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죠. 물론 주변에선 ‘어울린다’거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반반이었어요. 다행히도 많은 관객 분들이 새로운 롤라를 기대해줘 크게 힘이 됐죠”
그는 배우로서 본연의 선이나 색깔이 남성성이 강해 고민이었다. 이번 배역은 좀 더 부드럽고 여성적이었으면 했기에, 지난 시즌에도 참여한 정성화의 롤라를 보고 배우기도 했다.
“이미 다른 두 롤라를 예상하고 있었어요. 연습 초반에는 내게 맞는 롤라를 찾아가는 게 고민이었죠. 사실 정성화 배우의 롤라는 위트가 넘치고 유연하고 폭신폭신한 느낌이 들어요.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고 궁금해지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분위기의 롤라죠. 반면 최재림의 롤라는 큰 키의 거대함으로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좀 더 부각시키고자 했어요. 외형은 철저히 여성스러운데 남성적인 면도 어필하고 싶었죠. 대사할 때 보이스톤은 여성성이 짙지만 중간 중간 남성적인 지점이 많이 나와요. 스스로 강한 육체를 가진 사람인 걸 알기에 나오는 여유 같은 거요. (웃음) ‘알파메일(alpha male)’이라고 하죠. 이런 요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매사에 강할 것 같은 롤라에게도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롤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무리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거부감은 그의 강한 육체와는 별개로 정서적인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최재림은 이 순간을 포착한다.
“롤라가 남자 옷을 입고 부자연스러워하는 장면에서 왜 무리로부터 도망을 가는지 처음엔 이해가 안 갔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기를 싫어하는 무리에 다가갔을 땐, 아무리 강한 사람이어도 거부당하면 약자가 되죠. 경계 받고 존재를 부정당함으로써 무리 밖으로 밀려나고 회피하게 되는 모습들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뮤지컬배우 최재림
■ 좋은 호흡을 찾아가는 배우
“최재림이란 배우의 강점이 노래만은 아니란 걸 관객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변화나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죠. 그동안 해왔던 역할, 잘하는 연기에 연연하지 않아요. 불필요할 땐 과감히 버리죠. 작품에서 요구하는 걸 시도하길 주저하지 않아요. 맞지 않거나 잘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선에 맞을 때까지 노력하는 편이죠. 요점을 잘 파악하고 따라가니까 스텝 분들도 많이 놀라곤 해요. 처음부터 합의점을 잘 찾아놔야 작품이 요구하는 것과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섞어 시너지가 나죠. 무엇보다도 공연의 완성도를 생각해요. 내가 공연에 들어가는 거니까 공연이 요구하는 바를 잘 수행해내죠”
그는 일차적으로 작품이 요구하는 바를 다하지만, 스스로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도 분명하다. 우선 작품성을 본다. 이야기의 전개가 얼마나 잘 맞게 흘러가는지, 도전할 수 있는 배역인지, 배우로선 성장하고 얻을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한다.
“항상 장면에서 요구하는 바를 이루고자 해요. 기승전결이 있으면 이야기의 서두나 흘러가는 부분에서 각각 내가 맡은 역할이 뭔지를 보려고 하죠. 그 목표가 확실하게 이뤄지면 어떻게 보여줄지 디테일이 생겨요. 어떤 감정으로 대사를 전달하고 표정부터 시선, 자세, 손짓 등 만들어진 것들의 외형적인 부분을 신경 쓰죠. 물론 꾸준히 연습하며 스텝들과 함께 좋은 호흡들을 찾아가요”
그는 배우로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들을 많이 꺼내놓는다. 그중 선별된 것들이 뽑혀 무대 위의 롤라가 탄생하는 것이다.
“롤라는 화려한 인물이자 사람들한테 위로를 전해주는 역할이에요. 세상 사람 누구든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죠. 그 안에서 어떤 두려움이나 부끄러움도 가질 필요 없어요. 개개인의 삶은 모두 다르겠지만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건 무엇보다 좋은 방향에서의 삶인 건 분명하죠. 그래서 ‘킹키부츠’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게 맞나’하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새로운 영감이나 활력을 주는 작품이지 않을까 해요”
뮤지컬배우 최재림
■ 관객들이 찾길 꿈꾸다
“‘킹키부츠’의 메시지처럼 평소에도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편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을 솔직하게 긍정적으로 바라보죠. 괜히 누군가를 멀리하거나 가까이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나쁘게 말하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할까요? (웃음)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무작정 판단하거나 비난할 이유가 없는 거죠. 누군가 사회적이거나 객관적인 기준으로 비난받을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는 결코 누군가를 무작정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단지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실제로 알기 전까진 그 사람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이다.
“살면서 기호적인 부분은 존재할 수 있어요. 고기와 라면을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을 수 있죠. 개인적으로 혐오하는 식품은 없어요. 이런 부분은 다른 사회적 요소와 맞닿아 있잖아요. 누구나 모든 걸 내 기준에 맞춰 살아가죠. 그렇지만 접해보지 못한 것도 많을 텐데, 내 경험에만 빗대면 위험한 생각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실제로 알기 전엔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고 봐요. 사람이 주관적일 수밖에 없더라도 객관적으로 생각하려는 것이 중요하죠. 뭔가를 시간을 들여 바라볼 기회가 있다면 객관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봐요”
결국 그가 생각하는 삶은 ‘킹키부츠’에서 말하는 메시지임과 동시에 스스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과도 직결된다.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거기에서 오는 성취감도 좋죠. 그 과정과 결과를 포함해 받는 인정도 중요해요. 그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땐 여유를 갖는 거죠. 사적인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예를 들면 맥주 한잔 마시는 것부터, 공연 없는 날에는 잠도 실컷 자고, 맛있는 것도 먹고, 운동하고, 여유를 즐기는 거죠. 쉬는 시간 10분이나 잠들기 전 30분도 여유가 될 수 있어요. 여유는 사치가 아니잖아요. 모든 곳에서 여유를 찾고 그 시간을 충분히 즐기는 게 가장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봐요”
물론 그의 삶을 통틀어 가장 큰 행복은 뮤지컬이다. 인간 최재림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아직까진 배우로서 자신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기회가 주어지면 무대뿐만 아니라 영화나 매체 연기도 도전하고 싶다.
“뮤지컬은 내 취미이자 직업이며 좋아하고 즐기는 일이에요. 어쩌면 배우에게 직업이란 타이틀을 붙이기도 좀 그렇지만 다들 좋아서 하는 일인 건 분명하죠. 배우가 그래요. 이걸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돈을 벌고 싶은 맘보단 나를 보여주고 싶은 맘이 크다고 생각해요. 결국 본질을 들여다보면 내가 사랑하는 것과 맞닿아 있죠.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바라는 건 ‘관객들이 찾는 배우’가 됐으면 해요. 공연 포스터에 최재림이란 이름이 붙어있으면 관객 분들이 꼭 보러 와줬으면 좋겠죠. 배우로서 인정받고 싶고 잘하고 싶은 것도 중요하지만, ‘이 배우가 있어 공연을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배우가 됐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