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역대급 성장을 거두며 290조원대를 돌파했다. 연간 70%에 육박하는 증가를 보인 시장에서 각 자산운용사들은 고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들의 1년 성적표를 돌아봤다. [편집자주]
■ 1년새 두배 껑충...섹터계 족집게 신한 SOL
이 정도면 업계 최고 타율이다. 무(無)에 가까웠던 ETF 시장내 존재감을 완벽히 드러내면서 명실상부한 10조원 하우스로 올라섰다. 성과에 취할 만도 한데 걸음걸이에 흐트러짐도, 치열한 시장 분위기에 휩쓸린 조급함도 없다.
1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한자산운용 SOL ETF 순자산(12조4032억원)은 연초 대비 128% 증가하며 상위 5개사 가운데 최대 성장을 기록했다. 불과 3년 만에 무려 15배 성장이다.
비결은 정공법이다. 지난 2022년 ‘SOL 미국배당다우존스’로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던 신한운용은 올해도 ‘SOL 미국양자컴퓨팅TOP10’, ‘SOL화장품TOP3플러스’, ‘SOL 미국원자력SMR’, ‘SOL 팔란티어커버드콜OTM채권혼합’ 등을 출시하며 시장 한복판에 차별화된 포트폴리오를 펼쳤다. 놀라운 것은 이들 상품 모두 올해 순자산 증가 규모 기준 모두 상위권을 기록했다는 것. 그야말로 내놓는 족족 장타다.
라인업이 강화되면서 어느새 시장 주도주가 가는 골목마다 SOL ETF가 지키고 있다. 실제 올해 SOL ETF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순자산 증가를 기록한 것은 2년 전 상장시킨 ‘SOL 조선TOP3플러스’로 연초 이후 1조4000억원 이상이 불어났다. 타사들 역시 올해 부랴부랴 조선ETF들을 상장시켰지만 SOL의 선점 효과를 깨긴 어려웠다. ‘소재부품장비’ 시리즈 중 하나인 ‘SOL 반도체소부장’ 역시 꾸준한 인기를 모으며 최근 순자산 47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업계는 김정현 신한자산운용 ETF사업총괄본부장의 경쟁력과 리더십에 주목한다. 지난 2021년 삼성운용에서 이직한 이후 SOL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ETF 시장의 장벽을 뚫었다. 이동이 빈번한 ETF 업계이지만 신한운용은 김 본부장 체제를 구축한 이후 꾸준한 조직 확대 속에서도 탄탄한 분위기를 유지 중이다.
특히 쏟아져나오는 ETF를 알리기 위해 여는 그 흔한 신상품 기자간담회 한번 없이 흥행에 성공했다. 투자자들로부터 애칭을 받는 상품(‘솔미당 SOL 미국배당다우존스)’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건 늦깍이 후발주자에게 충분히 근거있는 자신감이 되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신한운용이 늦은 출발에도 불구하고 의미있는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투자자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는 차별화된 상품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각 섹터에 대한 접근법과 상품화 능력이 좋다보니 SOL 브랜드 존재감을 빨리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호평했다.
■ ‘구원투수’ 나선 이경준, KIWOOM 도약할까
‘첫 술에 배부르랴.’
여기 또 다른 후발주자도 있다. 올해 ETF 본격 진입을 선언한 키움자산운용에게 2025년은 녹록치 않은 해였다. 22년간 사용해온 브랜드 ‘KOSEF’와 ‘히어로즈’를 ‘KIWOOM’으로 통합하고 치열해진 경쟁 시장에 뛰어들기 위한 체제 정비에 나섰다. 여기에 투입된 ‘구원투수’는 미래에셋자산운용 핵심 멤버였던 이경준 ETF운용본부장이다.
이 본부장의 이직은 업계 큰 이목을 끈 변화였던 만큼 시장은 그가 내놓을 신상품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직 4개월 만에 ‘KIWOOM 미국테크100월간목표헤지액티브’를 선보이며 또 한번 세상에 없던 상품을 소개했다. 주식과 채권 비중을 조절해 옵션 효과를 복제하는 ‘델타헤지’ 기법을 통해 손실은 피하고 수익은 챙긴다는 취지다.
하지만 상품의 구조가 다소 어려웠던 탓일까. 이 ETF는 상장 4개월이 흐른 지금 순자산 100억원에 그치고 있다. 상장 이후 수익률은 코스피 수익률(29%)의 ⅓ 수준인 11%대에 그쳤다. 올 한해 순자산 증가율 역시 지난해 ‘모수’가 작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47%에 그쳐 경쟁사들 대비는 물론 시장 성장률(68.3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본부장은 이후로도 이전에 없던 새로운 조합의 포트폴리오로 구성된 상품들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국내 고배당주에 미국 AI테크주를 더한 ‘KIWOOM 한국고배당&미국테크’와 S&P500의 성장성에 금의 방어력을 더한 ‘KIWOOM 미국S&P&GOLD’ 등이 대표적. 국내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S&P500지수도 포트폴리오를 100개 종목으로 압축해 ‘KIWOOM 미국S&P500모멘텀’을 선보였고 생애주기에 따라 배당형으로 자동 전환되는 상품들도 잇따라 내놨다.
하지만 이 본부장의 전공인 중위험 중수익 시장에서 차별화된 상품은 아직 본격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성장과 방어를 함께 추구함으로써 투자자들이 편안하게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겠다는 그의 목표는 여전히 유효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구조의 상품들을 만들다보니 금융당국의 심사에서도 우선 순위가 밀리거나 시간이 소요되는 경향이 있고 투자자 입장에서도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면서도 “이제 1년이 안 된 만큼 시간이 지나면 이 본부장의 강점이 발휘되지 않겠냐"고 평했다.
신한운용과 키움운용의 ETF 조직을 책임지고 있는 김 본부장과 이 본부장은 모두 ‘성골’ 출신은 아니다. ETF 시장 진출에 갈급한 조직에서 이들의 ‘매직’을 기대하며 택한 용병들이다. 김정현의 ‘SOL’은 이제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경준의 ‘KIWOOM’에서도 매직이 나타날 수 있을까. 다가오는 2026년, 이들의 활약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