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이소희 기자] 처음에는 이진아의 목소리만 들렸다. 그 다음에는 이진아의 개성과 재즈의 유려함이 만난 신선함을 느꼈다. 그리고 천천히 쌓아온 디스코그래피를 짚으니 이진아의 ‘음악’이 보였다. 거듭해서 놀라게 만드는, 이진아의 재발견이다.
이진아는 최근 정규 2집 앨범 ‘진아식당 풀 코스(Fll Course)’를 발매했다. 2013년 10월 낸 ‘보이지 않는 것’ 이후 약 5년 만의 정규앨범이다. 그 사이 이진아는 몰라보게 성장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 시즌4’에 출연해 본격적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또 온유, 박진영과 협업부터 드라마 OST, 광고 음악, 예능 삽입곡까지 여러 영역을 종횡무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도드라지는 점은 싱글-미니-정규를 차례로 내놓으며 보여준 ‘진아식당’ 3부작의 거듭된 반전이다.
사실 이진아가 ‘K팝스타 시즌4’에 출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인지도는 한참 낮은 상태였다. 그러니 방송에서는 이진아의 독특한 목소리가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이진아는 여러 회차를 통해 그 안에 담아내는 감성은 제한적이지 않다는 것을 부단히 보여줬다. 하지만 당시 대중의 뇌리에는 독보적인 음색만이 기억에 남았다. 목소리가 독이 됐다기보다, 그 무기가 워낙 강력해 주변의 것들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던 셈이다.
게다가 프로그램 출연 전 낸 정규 1집 앨범 ‘보이지 않는 것’은 노래 자체의 특별함보다 목소리의 개성이 더 강조된 앨범이다. 여기에서 이진아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 어떤 스타일이 자신의 목소리를 도드라지게 할지 파악해 그것들을 열심히 수행한 인상을 준다. 그래서 앨범을 들으면 분명 장르도 다양하고 좋은데 어딘가 2% 부족했다. 그 빈자리는 바로 ‘신선한 시도’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만약 이진아가 이 정도에 그쳤다면 그의 재발견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진아는 변했다. ‘진아식당’ 시리즈는 이진아가 자신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 ‘진아식당’ 3부작, 이진아의 '음악'이 들린다
‘진아식당’은 자신의 음악을 식당의 코스요리로 비유한 것부터 재미있다. 점층적으로 색깔이 쌓여갈 것도 예상이 가능하다. 실제로도 그랬다. 첫 싱글 ‘애피타이저’는 말 그대로 ‘맛보기’였다. 앨범은 기존의 아기자기한 이미지에 편하게 다가올 수 있는 정도의 음악적 진지함을 담아낸다.
이후 미니앨범 ‘랜덤(RANDOM)’에서는 이진아의 주특기인 재즈의 유려함이 한껏 부각됐다. 마음 이끌리는 대로 건반을 쳐 만들었다는 타이틀곡 ‘랜덤’은 그의 자유로움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그 외 트랙들도 예측할 수 없는 멜로디와 리듬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이진아가 튀는 목소리의 중심을 잡기 위해 대중적인 모습을 강조했다면, 이 앨범에서는 목소리의 힘을 줄이되 다른 요소의 독특함으로 그 개성을 살리는 영리한 방법을 택했다. 그러자 이것들이 어우러지며 목소리가 아닌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요리인 정규 2집 앨범 ‘진아 식당 풀코스’. 마침내 이진아가 자신의 잠재력을 터뜨린 순간이다. 타이틀곡 ‘런’은 이진아의 재즈와 피처링 가수 그레이의 힙합이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다. 게다가 처음부터 청량한 사운드와 그레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이진아의 곡임을 예상할 수도 없다.
노래의 도입부가 지나고, 본격적으로 그레이의 목소리에 이진아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여기서의 이진아는 앳되고 귀엽게 느껴지던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재즈나 건반소리와 가장 잘 어울리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힙한 이진아’로 바뀌었다. 파격적인 시도를 기존의 것과 연결해주는 건 형형색색의 꽃가루처럼 리드미컬한 음들 뿐. 하지만 이 리듬은 다른 트랙에도 모두 녹아 있다. 단 하나이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색채인 셈이다.(그 외 트랙은 ‘진아식당’으로 낸 곡들이 대부분이다)
‘진아식당’ 시리즈가 마무리 되는 지점을 보면, 다시 돌아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왜 그런 형태를 취했는지 이해가 간다. ‘보이지 않는 것’은 데뷔 앨범이기에 새로움을 주기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해내려는 시도를 하는 게 맞는 선택일 수도 있다. 안 그래도 목소리에 대한 인상이 강렬한데 여기에 이것저것 더 보여주려고 했다면 오히려 어설퍼 보였을 터다.
이진아의 변화는 강박에 의한 게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것 듯한 느낌을 준다. 조급하게 자신을 보여주려 하지 않고 각 단계마다 밟아야 할 코스를 차근차근 해내는 그런 계산. 좋은 재료로 평범한 음식을 만들던 식당은 이제 좋은 재료의 본질을 살릴 수 있는 실험정신까지 갖췄다. 이진아가 차려낸 만찬을 먹으러 그의 공간에 자꾸만 방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