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HB엔터테인먼트, ‘이리와 안아줘’ 포스터)
[뷰어스=노윤정 기자] 불과 3~4년 전만 해도 스타급 배우가 케이블 드라마에 출연하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상파와 비지상파의 경계가 확실하고 시청률과 화제성 면에서 지상파 드라마가 절대 우위에 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케이블채널(케이블)은 1995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조금씩 지상파를 위협해왔다. 2011년 개국한 종합편성채널(종편) 프로그램 역시 날로 시청률과 화제성을 높여가고 있다. 그 결과 최근 몇 년새 지상파와 비지상파의 위계를 구분하는 건 큰 의미가 없어졌다. 시청률만 봐도 그렇다. 지상파 평일 드라마는 시청률 10%만 넘어도 ‘평타’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목표가 하향 평준화돼 있다. 반면 케이블은 점점 더 시청 층을 넓히며 시청률과 화제성 모든 면에서 지상파와 비등한 상태를 이루고 있다.
■ 지상파VS비지상파, 격차가 허물어지다
현재 방영하고 있는 지상파 월화드라마 중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은 MBC ‘검법남녀’다. 하지만 ‘검법남녀’ 최고 시청률은 7월 9일 방송분이 기록한 9.0%(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 이하 동일 기준)다. 한 자릿수 시청률이다. KBS2 ‘너도 인간이니?’와 SBS ‘기름진 멜로’가 2018 러시아 월드컵 경기 중계 관계로 경쟁작들이 전부 결방할 때 각각 9.9%(6월 12일), 9.3%(6월 26일, 7월 2일)로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으나 역시 두 자릿수를 넘진 못했다.
월화극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현재 MBC ‘이리와 안아줘’가 지상파 수목드라마 중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이나, 최고 시청률은 5.9%(5월 31일)에 그친다. 경쟁작인 KBS2 ‘당신의 하우스헬퍼’는 시청자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4%대에 머무르고 있고, SBS ‘훈남정음’은 시청률이 2%대까지 추락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해 방영한 지상파 평일 드라마 중 10%를 한 번이라도 넘긴 작품은 KBS2 ‘흑기사’ ‘우리가 만난 기적’ ‘슈츠’, SBS ‘리턴’ ‘키스 먼저 할까요?’뿐이다. 2018년이 절반 이상 지났지만 아직까지 시청률 20%를 넘긴 작품이 없다. 주말드라마의 경우 평균 시청률이 높기는 하지만, 그나마도 시청률 20~30%대를 기록하고 있는 건 KBS 주말드라마뿐이다.
케이블 드라마와 비교하면 현재 방영 중인 지상파 평일 미니시리즈의 시청률이 얼마나 참담한지 더 와 닿는다. 수목극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건 사실 ‘이리와 안아줘’가 아니라 tvN에서 방영 중인 ‘김비서가 왜 그럴까’다. 닐슨코리아 집계 결과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지난 5일 방송된 10회에서 8.4%로(유료플랫폼 기준/이하 동일 기준) 다시 한 번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지상파 드라마 시청률을 앞서는 수치다. 지난 7일 첫 선을 보인 tvN ‘미스터 션샤인’ 역시 초회 방송에서 이미 8.9%로 tvN 드라마 1회 시청률 역대 최고 기록을 다시 썼으며, 2회에서는 9.7%를 기록해 단시간 내 10% 돌파도 가능할 전망이다.
(사진=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 포스터, 화앤담픽처스)
■ 지상파, 시청자 기호 반영한 신선한 콘텐츠 만들어야
시청률 파이가 작아지는 현 상황에 가장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지상파다. 채널과 플랫폼이 다변화되면서 평균 시청률이 낮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채널 시대가 되며 방영하는 드라마의 편수도 증가하고, 시청자들은 굳이 TV를 틀지 않더라도 온라인 실시간 스트리밍과 VOD 서비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됐다. 자연히 지상파 3사 드라마가 독점하던 시청률과 화제성이 분산된다.
또한, 선택할 수 있는 콘텐츠의 양이 많아진 상황에서 질적인 우위가 지상파에서 비상파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케이블과 종편은 소재의 선정과 편성이 비교적 자유롭다. 이런 케이블과 종편의 무기는 콘텐츠의 신선함이다. 또한 꾸준한 투자로 능력 있는 연출자와 작가를 섭외하고 있다. ‘미스터 션샤인’의 이응복 PD와 김은숙 작가는 2016년 KBS2에서 '태양의 후예'로 호흡을 맞춘 뒤 tvN으로 옮겨와 '도깨비'라는 흥행작을 탄생시켰다. 지난 1일 종영한 tvN ‘무법 변호사’의 김진민 PD 역시 MBC 드라마국 프로듀서로서 ‘신돈’ ‘개와 늑대의 시간’ ‘로드 넘버원’ ‘오만과 편견’ ‘결혼계약’ 등의 수작을 남긴 뒤 2016년 tvN으로 이적했다. TV조선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 ‘대군-사랑을 그리다’(최고 시청률 5.6%)의 김정민 PD 역시 KBS에서 ‘공주의 남자’ ‘조선총잡이’ 등의 작품을 만들어 백상예술대상, 서울드라마어워즈, 아시안TV어워즈, 뉴욕텔레비전페스티벌 등의 시상식에서 다수 상을 휩쓴 프로듀서다.
이처럼 능력 있는 인재들의 유입은 생산하는 콘텐츠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진다. 유능한 제작진이 새로운 소재에 목말라 하는 시청자들의 갈증을 채워줄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생산하는 콘텐츠의 질이 높아지니 자연히 스타 배우들 역시 작품을 고를 때 지상파와 비지상파를 구분하지 않게 됐다. 이는 다시 콘텐츠의 퀄리티 향상으로 이어진다. 케이블과 종편이 제작하는 양질의 콘텐츠가 지상파를 압도하는 형국이다.
현재 지상파 드라마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신선하고 탄탄한 스토리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시청자들의 기호에 맞춰 변화를 꾀해야 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다채널 경쟁 시대가 되면 필연적으로 지금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었다. 지상파의 위상이 워낙 확고하니까 처음부터 이런 현상이 나타나진 않았지만 케이블과 종편이 약진하면서 서서히 지상파의 위상이 흔들리다가 이제는 거의 무너진 상황까지 오게 된 거다”며 “지상파는 역사가 오래 되었다 보니 기존 관행대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새로운 흐름을 따라가는 변화가 늦어지고, 젊은 시청자들은 케이블이나 종편 드라마를 신선하게 생각해서 그쪽으로 이탈하게 된다”며 현 상황을 진단했다.
이어 “젊은 시청자들은 새로운 것을 원한다. 지상파가 그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과거 관행대로 제작하다보니까 ‘지상파는 중년층이 선호하는 채널’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젊은 사람들은 케이블이나 종편을 친숙하게 여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채널 이미지가 이미 그렇게 잡혀버렸기 때문에 하루 이틀 안에 바뀔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지상파에서 분위기를 일신하고 투자를 많이 해서 신선한 작품을 많이 만들어낸다면, 천천히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