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어스=남우정 기자] 분명 웃으라고 하는 드립인 것 같은데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영화 ‘어쩌다, 결혼’은 자유와 재산을 물려 받기 위해 결혼을 계획하는 재벌 2세 성석(김동욱)과 내 인생을 찾기 위해 결혼을 선택한 해주(고성희)가 서로의 목적 달성을 위해 3년만 결혼하는 척, 같이 사는 척 하기로 계약하며 생긴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로맨스가 빠진 로맨틱 코미디라는 설정도 독특하고 화려한 카메오가 넘친다. 영화 전체적으로 웃음을 위한 장치들이 많다. 근데 희안하게 웃음이 안 나온다.
■ 장면
프러포즈에 대차게 실패한 성석은 단골 와인바를 찾았고 절친한 채기장(김의성)과 소믈리에 신아와 함께 술을 마시며 고민을 토로한다.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신 세 사람. 성석은 기혼자인 채기장을 먼저 차에 태워 보내고 두 사람만 남는다. 그리고 성석은 익숙한 듯 신아에게 “나 자고 가도 돼?”라고 묻는다. 성석은 더 마실 술을 안곤 언덕 위에 있는 신아의 집을 향해 걸어간다. 만만치 않은 경사에 성석은 “니네집 주차장 병신같아”라고 말하고 신아는 “집값이 병신같잖아”라고 답한다. 이어 성석은 “도가니가 병신될 것 같아”라며 불만을 터트린다.
■ 불편한 시선
현재도 온라인에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표현이 있다. ‘발암주의’ ‘암 걸릴 것 같아’라는 말이다. 두 용어 모두 답답한 상황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별 생각이 없었던 말이었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부터 절대 쓸 수 없는 말이 됐다. “난 저 말이 진짜 싫어”라고 말했던 친구, 알고 보니 그의 어머니가 암투병 중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사용되는 말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
‘어쩌다, 결혼’에 등장한 ‘병신’이라는 단어는 사전 상으로 신체의 어느 부분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나 모자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정의된다. 일상 대화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 말은 말하는 이가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고 장애인 혐오 표현이다. 한국영화에 ‘병신’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게 오늘 내일의 일은 아니다. 과거에서부터 조폭 영화에 빠지면 서운한 대사가 아닐까 싶다. 아마 ‘어쩌다, 결혼’에서도 일상적인 대화를 보여주기 위해 이 같은 표현을 한 게 아닐까 싶다. 영화를 현실감 있게 그리려고 한 노력으로 보이기도 한다.
현재 ‘어쩌다, 결혼’과 나란히 극장에 걸려있는 영화 ‘증인’에도 병신이라는 단어가 대사에 나온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지우(김향기)를 도와주던 친구가 뒤에선 지우에게 “병신아”라고 부르며 괴롭히는 모습이 나온다. 이 친구는 지우를 돕는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학생들에게 괴롭힘과 놀림을 당했고 이 상처를 지우에게 풀었다. 같은 단어지만 ‘증인’에선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는 차별이자 그 친구를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사회(학교)의 현실을 꼬집어줬다. 반면 ‘어쩌다, 결혼’ 속 성석의 드립은 마치 라임을 맞추는 것처럼 연달아 나온다. 뒤에 등장하는 채기장의 아내인 수정(김선영)이 성석에게 술주정하는 모습에서도 욕설이 드립처럼 사용된다. ‘어쩌다, 결혼’ 특유의 유머코드로 보여진다.
혐오 표현이 드립으로 유머로서 소비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는 표현이 웃음을 만들어낸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어쩌다, 결혼’만 보더라도 조우진이 연기한 서과장 캐릭터 같이 그런 드립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웃음을 주는 요소가 많았다. 혐오 표현으로 짜낸 웃음이 진짜 건강한 웃음일까. 좀 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