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뷰어스=손예지 기자] “너무 만족해요. 작품이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은 것도 행복했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나에겐 소중한 작품이에요. 연기자로서 지금까지 나의 문제가 무엇이었고, 앞으로 어떻게 연기해야할지 알게 해준 작품이거든요. 잊기 힘들 것 같습니다” tvN ‘왕이 된 남자’(연출 김희원, 극본 김선덕)를 마치고 만난 배우 여진구는 들뜬 모습이었다.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이런 감정은 처음 느껴봤다”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고 거듭 강조하는 그의 모습에서 일종의 희열감이 읽혔다. 아역부터 연기를 시작해 벌써 데뷔 15년 차에 접어든 여진구를 이토록 흥분케 한 ‘왕이 된 남자’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 “잘 만든 드라마”… 여진구가 ‘왕이 된 남자’로 처음 겪은 일들 “그동안 과분한 칭찬을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나는 내 연기에 만족하지 못했거든요. ‘왕이 된 남자’의 김희원 PD님은 내가 아직 흔들리고 있다는 걸 보신 것 같았어요. 그래서인지 촬영마다 내가 알아서 준비해오게끔 유도하셨죠. 역할의 전체적인 톤이나 장면의 느낌, 대사의 처리 등 전부요. 대신 부족한 부분은 직접 채워주셨고요. 덕분에 어렵고 헷갈렸던 만큼 내 연기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여태 배우로 활동하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에요” 김희원 PD의 지도 편달 아래 자기확신을 갖게 됐다는 여진구. 그는 ‘왕이 된 남자’에서 비관에 빠져 미쳐가는 폭군 이헌과 선량한 마음과 담대한 배포를 지닌 하선으로 1인 2역을 소화, 상반된 캐릭터를 능수능란하게 오가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도 확신을 줬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처음엔 무서웠다”고 한다. “1인 2역을 소화해야 하는 데다 특히 이헌은 내가 지금까지 해본 적 없던 역할이어서 막막했다”며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때 도움을 준 게 김희원 PD라고. “PD님이 연기의 톤을 비롯해 강약 조절 등에 조언을 해주셨다”던 여진구는 “하지만 이런 피드백을 들으려면 결국 내가 준비해 PD님 앞에서 보여드리는 게 선행되어야 했다”며 다소 생소했던 촬영장의 분위기를 떠올렸다. “김희원 PD님의 작업 방식은 생소하면서도 나와 잘 맞았어요. 이를 테면 리허설을 할 때, PD님이 짜 놓은 콘티가 있는데도 현장에서 배우들의 연기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 생기면 ‘알겠습니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어요. 어떻게 하라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지금까지의 나는 연기할 때의 고민을 조금 가볍게 넘겼거든요. 나 혼자 답을 찾기 전에 PD님에게 물어보는 식이었죠. ‘왕이 된 남자’를 통해 그게 잘못된 접근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배우라면 현장에서 어느 정도 내 고집이 있어야 해요. 캐릭터에 대한 확신도 가져야 하고요. 이로 인해 조금 힘들고 답답할지라도 그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사진=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여진구는 ‘왕이 된 남자’가 ‘리메이크작’이라는 데서 느낀 부담감도 김희원 PD 덕에 일찌감치 떨쳐낼 수 있었다고 했다. ‘왕이 된 남자’의 원작은 2012년 개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로, 당시 여진구 역할을 배우 이병헌이 연기해 극찬을 들었다. 이에 작품을 제안받고서 “영화를 리메이크한다고? 그러면 설마 나한테 이병헌 선배 역할이 들어온 건가?”라는 생각에 놀라웠다는 여진구는 “대본을 읽으면서 새로움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PD님이 나를 만나 처음 하신 말씀도 ‘리메이크 드라마이긴 하지만 재창조’라는 거였어요. ‘이렇게 생각지 않으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요. 이미 잘된 영화를 굳이 드라마로 다시 만드는 이유에 대해, 만드는 사람들부터 알아야 한다는 거죠. 때문에 ‘진구 씨가 말하고 싶은 이헌과 하선의 모습을 빨리 그렸으면 좋겠다’고도 하셨습니다. 덕분에 ‘리메이크작’이란 데 대한 무게감은 일찌감치 털고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이선과 하선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어요. 한편으로 배우이기에 가능한 1인 2역이 매력적으로 느껴져 출연을 결정했지만, 잘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에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이런 고민을 PD님에게 솔직히 말했더니, PD님이 나를 오롯이 혼자 설 수 있게 도와주신 게 아닌가 싶네요” 여진구가 1인 2역을 준비하며 가장 염두에 둔 건 “이헌과 하선이 아예 달랐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광기(狂氣) 어린 이헌을 연기하는 데 다소 염려스럽기도 했다고. 그간 건실한 이미지로 사랑받은 여진구의 변신이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여진구는 “상상 이상으로 훨씬 많은 시청자가 이헌을 좋아해주시고, 또 하선도 좋아해주셔서 얼떨떨했다”며 “다행이라는 마음과 칭찬만큼 더 표현해야겠다는 자신감이 동시에 들었다. 한편 초반에 PD님이나 선배들의 말을 듣고 더 자신감 있게 연기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고 털어놨다. “사실 ‘왕이 된 남자’ 1회가 방송되기 전까지 확신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이헌과 하선이 만난 모습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해지 못했기 때문이죠. 물론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또 촬영한 영상을 모니터링 하기도 했지만 두 캐릭터가 마주하는 장면은 막연히 상상만 해야했던 거예요. 그러다 1회 엔딩을 통해 두 인물을 동시에 보고 나서 ‘아, 이렇게 해야겠다’는 감이 잡혔어요. 사실 이미 PD님과 선배들은 ‘잘하고 있다’고 얘기해주셨는데 믿지 못했던 게 아쉬워요(웃음). 조금 더 시도해봤으면 또 다른 이헌과 하선이 만들어졌을 텐데 말이죠” (사진=tvN 방송화면) 결과적으로 여진구의 1인 2역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걱정했던 이헌으로의 변신도, 직접 말한대로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여진구는 낯선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전작의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대립군’(감덕 정윤철)이다. “‘대립군’에서는 분조(分朝, 임진왜란 때 임시로 세운 조정) 상황에 놓인 광해군을 연기했었습니다. 당시 ‘광해군은 산 속에서 어떻게 버텼을까.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왕이 된 남자’ 역시 팩션 사극이지만 같은 상황을 베이스로 둔 작품이잖아요. 덕분에 이헌을 이해하는 데 수월했죠. 이헌도 (광해군과) 똑같은 일을 겪었다고 가정하면 (폭군처럼) 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대립군’에서는 광해군이 느끼는 혼란을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풀어냈다면, ‘왕이 된 남자’ 이헌의 두려움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으로 표현했는데 재밌었습니다”  여진구는 서로 다른 캐릭터를 오가며 시시각각 감정의 전환을 선보여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김희원 PD에게 공을 돌렸다. “갈수록 하선이 분량이 늘어나는 터라 오랜만에 이헌을 연기할 때에 좀 쳐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때마다 PD님의 도움을 받았다”며 “혼자였다면 어려웠을 텐데 덕분에 쉽게 갈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에 대한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왕이 된 남자’를 촬영하는 동안 눈 앞에서 연기 수업을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게 연기에요’라는 걸 보는 기분? 많은 걸 배웠죠. 특히 (김)상경 선배님에게 크게 배웠던 게 뭐냐면, 연기를 굉장히 진실되게 하세요. 진심이 아니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시고요. 원하는 포인트도 정확해서 카메라 감독님과 앵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셨어요. 연기 외적으로 본인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한 요소들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시더라고요. ‘저게 맞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건 당연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스태프들과 원활히 소통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사진=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이어 여진구는 김상경과 같이 연기 외적인 요소에 대해서도 공부가 필요하겠다는 질문에 “아직까지는 계속해서 넓혀야 하는 단계”라며 배우 본인이 직접 의견을 냈을 때와 아닐 때의 차이를 “이제 막 알게 된 터라 연기 말고도 공부해야 할 게 많구나 생각하고 있다”고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실제로 ‘왕이 된 남자’를 모니터링하면서도 김희원 PD의 연출력에 크게 감명받았다고. “배우가 대사를 잘하고 몸 동작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김희원 PD님은 인물의 감정을 현실적으로 담아내는 데에도 집중하세요. 때문에 촬영 기법이나 카메라 앵글 등의 연출 요소를 다양하게 쓰시죠. 실제로는 1초 촬영한 장면을 고속 카메라로 담아 의미깊은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처럼요. 덕분에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아름답고 유려한 장면들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이건 PD님이 회차와 장면에 대한 뚜렷한 목표를 갖고 꿰둟어 보지 않았다면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PD님 덕분에 배우들은 마음 놓고 놀 수 있었어요” 그런가 하면 KBS2 ‘대왕세종’(2008) KBS1 ‘장영실’(2016)을 통해 두 번이나 세종을 연기하며 ‘사극계 베테랑’으로 거듭난 김상경을 극 중 신하로 두고 연기한 데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상경 선배님의 가슴에 칼을 툭툭 치는 장면들은 나도 좀 걱정됐다”면서도 “다행히 선배님이 워낙 잘 받아주셨다. 오히려 더 하라고 하실 정도였다. 덕분에 나는 감히 생각조차 못했던 액션들을 과감하게 할 수 있었다”고 웃음 지은 여진구다. 그렇다면 극 중 중전 유소운을 맡아 로맨스 연기를 선보인 이세영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앞서 이세영은 본지에 “여진구는 ‘짬(경력)’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달랐다”고 표현한 바 있다. 이 말을 전하니 웃는 얼굴로 “‘짬’에서 나온 바이브, 있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장이라는 공간이 우리에겐 편한 동시에 긴장감을 갖게 하는 곳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세영 선배도 나도, 운 좋게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온 덕분에 현장에 익숙해져 있어서요. 둘 다 긴장보다는 서로 호흡을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아는 상태라 편안했습니다. 선배에게 고마워요” 여진구는 이세영과의 호흡을 “이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각자 열심히 준비한 걸 현장에서 펼쳐보고, 서로 생각한 것과 다르면 편하게 이야기 나눴다”며 “누구 하나 더 노력하거나 끌어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분위기가 좋았다. 실제 방송에는 쓸 수 없는 상황극을 만들어 놀기도 했다”고 전했다. 특히 촬영장에서 이세영을 ‘누나’보다 ‘중전’이라고 불렀다며 “작품 하는 동안에는 배우들을 극 안에서 부르는 호칭을 그대로 부르는 게 내 스타일”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 내 평소 삶에서 익숙해져야 연기에도 도움이 된다”며 “작품이 끝나면 호칭 정리를 다시 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사진=tvN 방송화면) 이런 가운데 여진구에게 ‘왕이 된 남자’의 명장면을 꼽아 달라고 요청했다. 8회, 임금 하선이 도승지 이규(김상경)에게 독살당하는 장면을 먼저 언급했다. 그는 “이헌의 죽음은 원작과 비교했을 때 드라마 ‘왕이 된 남자’가 갖는 굉장히 큰 차별점”이라며 “‘임금이 충신에게 독살 당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을 (제작진이) 현실감 있게 풀어주신 덕분에 시청자들도 납득해주신 것 같다. 정말 잘 만든 드라마이다. 내가 출연한 작품이긴 하지만 스토리 등에서 놀란 지점들이 너무나 많았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선이 신치수(권해효)에게 정체를 밝는 장면과 이규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배우로 활동하면서 처음으로, 내 작품에 푹 빠져서 본 장면들이기도 해요. 원래 스스로 작품에 몰입해 보질 못하는 편이었거든요. 여러모로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한 터라 애정이 크네요” 이제는 ‘왕이 된 남자’를 보내줘야 할 시간, 여진구에게 이헌과 하선이라는 인물에게 전하고픈 말이 없는지 물었다. “우선 이헌에게는, 촬영하는 내내 약은 그만했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신 좀 차리라”며 웃었다. 이어 “하선은 죽지 않고 소운을 만나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다”면서 “한편으로 하선을 연기할 때마다 느낀 게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많이 가졌다. 임금의 일을 할 때도, 소운과 사랑을 할 때도 하선은 남자다운 동시에 자신만의 고집이 있었다. 또 진짜 왕이 되기 위해 자신만의 길을 확실히 개척하는 모습도 멋졌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글도 읽을 줄 몰랐던 광대 하선이 이규와 같은 어른의 도움을 받아 성군(聖君)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자기 만족감을 느끼게 된 배우 여진구와 닮은 것 같다고 하자 그는 “끝나고 나서 알았다. PD님이 나를 하선이와 함께 성장하게끔 만들어주셨다.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라며 눈을 빛냈다. ■ “내가 생각하는 태평성대는”… ‘명배우가 될 남자’ 여진구의 포부 ‘왕이 된 남자’로 ‘사극 장인’이란 별칭을 공고히 한 여진구다. 그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사극을 많이 한 편”이라며 “나이에 비해 큰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작품들이 대부분 사극이었다. 아마 중저음의 목소리가 사극에 캐스팅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극은 임금 역할을 통해 권력적이거나 베풀 풀 아는 이미지를 보여줄 수도 있고, 백성일 때에는 신분에서 오는 처절함 등 다양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장르”라고 분석했다.  (사진=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왕이 된 남자’를 하면서 ‘여진구가 하는 사극은 괜찮다’는 칭찬을 들을 때 새로웠어요. 동시에 ‘앞으로 다른 장르도 계속 극복해나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주위에서 벌써 사극이라는 전문 장르가 생겼다는 데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도 받았는데 나는 오히려 고맙거든요. 어린 나이에 한 장르로 인정받는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렇기에 앞으로는 보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코미디나 따뜻한 에너지를 가진 작품에서도 인정받고 싶어요” 여진구 스스로 생각하는 ‘인생 연기’ 혹은 ‘인생 작품’은 무엇일까. 그는 “SBS ‘자이언트’를 촬영했던 13~14살 시절”을 먼저 꼽았다. “연기 제일 잘했을 때”라며 “그때는 그냥 즐겼다. 순수하게 받아들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인물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빠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때 작품을 다시 보면 눈빛이 진실됐다. 거짓이 없고 말 그대로 순수하다. 당시에 선배들이 ‘이 순수함을 잃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얘기가 이거였구나’ 싶었다. 그때 눈빛은 이제 절대 다시 못 가질 것”이라고도 했다. “예전과 지금의 나는 너무나 다릅니다. 아무래도 감정이 깊어졌으니까요. 배우로서 표현하고 싶은 부분들도 생겼고요. 어릴 때는 그냥 대사만 외워서 하고 싶은대로, 느낀 그대로 연기한 반면, 시간이 지날수록 캐릭터 연구도 필요하고 어느 정도의 계산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변화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막막했는데, 이제는 하나의 ‘성장’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 몇 년 후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잖아요?” 이에 다시 한 번 ‘성장’을 꿈꾸며 비교적 빠른 시간에 차기작을 정한 여진구다. 홍자매(홍정은·홍미란 작가)의 신작으로 기대를 모으는 tvN ‘호텔 델루나’다. 연내 편성 예정인 ‘호텔 델루나’에 여진구는 ‘왕이 된 남자’가 끝나기도 전에 출연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쉬지 않고 차기작을 정할 수 있었던 데는 ‘왕이 된 남자’ 덕이 크다”고 운을 뗀 여진구.  “지금의 이 성장한 모습, 연기에 갖게 된 자신감을 가만 두고 싶지 않아서요. 감(感)을 유지한 채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호텔 델루나’는 판타지 장르에 약간의 로코 감성이 섞인 작품이거든요. 내가 극복해내고 싶은 장르이죠. 또 결단력과 추진력을 가진 호텔리어를 맡은 덕분에 다른 매력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심 기대를 갖고 열심히 준비 중이니 좋게 봐주시기를 바라요” (사진=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이처럼 도전을 멈추지 않는 여진구에게, 배우로서 그리고 있는 태평성대의 모습은 무엇인지 물었다. “장르를 다 아우르고 싶다. 그게 가장 큰 목표”라는 답이 곧장 돌아왔다. “그 목표를 이루려면 당장 5~6년은 턱 없이 부족해요. 무엇보다 ‘왕이 된 남자’처럼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하며 스스로를 한계에 부딪히게 만들고 싶습니다. 도전을 반복하다 보면 10~20년이 지난 뒤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는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꼭 주연이 아니어도요. 여러 장르와 역할을 보여드리는, 말 그대로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다양한 장르와 작품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배우로서 내가 바라는 가장 큰 태평성대입니다”

[마주보기] 배우 여진구가 이룰 태평성대

손예지 기자 승인 2019.03.15 10:33 | 최종 수정 2138.05.27 00:00 의견 0
(사진=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사진=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뷰어스=손예지 기자] “너무 만족해요. 작품이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은 것도 행복했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나에겐 소중한 작품이에요. 연기자로서 지금까지 나의 문제가 무엇이었고, 앞으로 어떻게 연기해야할지 알게 해준 작품이거든요. 잊기 힘들 것 같습니다”

tvN ‘왕이 된 남자’(연출 김희원, 극본 김선덕)를 마치고 만난 배우 여진구는 들뜬 모습이었다.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이런 감정은 처음 느껴봤다”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고 거듭 강조하는 그의 모습에서 일종의 희열감이 읽혔다. 아역부터 연기를 시작해 벌써 데뷔 15년 차에 접어든 여진구를 이토록 흥분케 한 ‘왕이 된 남자’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 “잘 만든 드라마”… 여진구가 ‘왕이 된 남자’로 처음 겪은 일들

“그동안 과분한 칭찬을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나는 내 연기에 만족하지 못했거든요. ‘왕이 된 남자’의 김희원 PD님은 내가 아직 흔들리고 있다는 걸 보신 것 같았어요. 그래서인지 촬영마다 내가 알아서 준비해오게끔 유도하셨죠. 역할의 전체적인 톤이나 장면의 느낌, 대사의 처리 등 전부요. 대신 부족한 부분은 직접 채워주셨고요. 덕분에 어렵고 헷갈렸던 만큼 내 연기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여태 배우로 활동하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에요”

김희원 PD의 지도 편달 아래 자기확신을 갖게 됐다는 여진구. 그는 ‘왕이 된 남자’에서 비관에 빠져 미쳐가는 폭군 이헌과 선량한 마음과 담대한 배포를 지닌 하선으로 1인 2역을 소화, 상반된 캐릭터를 능수능란하게 오가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도 확신을 줬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처음엔 무서웠다”고 한다. “1인 2역을 소화해야 하는 데다 특히 이헌은 내가 지금까지 해본 적 없던 역할이어서 막막했다”며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이때 도움을 준 게 김희원 PD라고. “PD님이 연기의 톤을 비롯해 강약 조절 등에 조언을 해주셨다”던 여진구는 “하지만 이런 피드백을 들으려면 결국 내가 준비해 PD님 앞에서 보여드리는 게 선행되어야 했다”며 다소 생소했던 촬영장의 분위기를 떠올렸다.

“김희원 PD님의 작업 방식은 생소하면서도 나와 잘 맞았어요. 이를 테면 리허설을 할 때, PD님이 짜 놓은 콘티가 있는데도 현장에서 배우들의 연기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 생기면 ‘알겠습니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어요. 어떻게 하라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지금까지의 나는 연기할 때의 고민을 조금 가볍게 넘겼거든요. 나 혼자 답을 찾기 전에 PD님에게 물어보는 식이었죠. ‘왕이 된 남자’를 통해 그게 잘못된 접근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배우라면 현장에서 어느 정도 내 고집이 있어야 해요. 캐릭터에 대한 확신도 가져야 하고요. 이로 인해 조금 힘들고 답답할지라도 그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사진=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사진=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여진구는 ‘왕이 된 남자’가 ‘리메이크작’이라는 데서 느낀 부담감도 김희원 PD 덕에 일찌감치 떨쳐낼 수 있었다고 했다. ‘왕이 된 남자’의 원작은 2012년 개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로, 당시 여진구 역할을 배우 이병헌이 연기해 극찬을 들었다. 이에 작품을 제안받고서 “영화를 리메이크한다고? 그러면 설마 나한테 이병헌 선배 역할이 들어온 건가?”라는 생각에 놀라웠다는 여진구는 “대본을 읽으면서 새로움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PD님이 나를 만나 처음 하신 말씀도 ‘리메이크 드라마이긴 하지만 재창조’라는 거였어요. ‘이렇게 생각지 않으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요. 이미 잘된 영화를 굳이 드라마로 다시 만드는 이유에 대해, 만드는 사람들부터 알아야 한다는 거죠. 때문에 ‘진구 씨가 말하고 싶은 이헌과 하선의 모습을 빨리 그렸으면 좋겠다’고도 하셨습니다. 덕분에 ‘리메이크작’이란 데 대한 무게감은 일찌감치 털고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이선과 하선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어요. 한편으로 배우이기에 가능한 1인 2역이 매력적으로 느껴져 출연을 결정했지만, 잘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에 의문이 들기도 했어요. 이런 고민을 PD님에게 솔직히 말했더니, PD님이 나를 오롯이 혼자 설 수 있게 도와주신 게 아닌가 싶네요”

여진구가 1인 2역을 준비하며 가장 염두에 둔 건 “이헌과 하선이 아예 달랐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광기(狂氣) 어린 이헌을 연기하는 데 다소 염려스럽기도 했다고. 그간 건실한 이미지로 사랑받은 여진구의 변신이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여진구는 “상상 이상으로 훨씬 많은 시청자가 이헌을 좋아해주시고, 또 하선도 좋아해주셔서 얼떨떨했다”며 “다행이라는 마음과 칭찬만큼 더 표현해야겠다는 자신감이 동시에 들었다. 한편 초반에 PD님이나 선배들의 말을 듣고 더 자신감 있게 연기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고 털어놨다.

“사실 ‘왕이 된 남자’ 1회가 방송되기 전까지 확신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이헌과 하선이 만난 모습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해지 못했기 때문이죠. 물론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또 촬영한 영상을 모니터링 하기도 했지만 두 캐릭터가 마주하는 장면은 막연히 상상만 해야했던 거예요. 그러다 1회 엔딩을 통해 두 인물을 동시에 보고 나서 ‘아, 이렇게 해야겠다’는 감이 잡혔어요. 사실 이미 PD님과 선배들은 ‘잘하고 있다’고 얘기해주셨는데 믿지 못했던 게 아쉬워요(웃음). 조금 더 시도해봤으면 또 다른 이헌과 하선이 만들어졌을 텐데 말이죠”

(사진=tvN 방송화면)
(사진=tvN 방송화면)

결과적으로 여진구의 1인 2역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걱정했던 이헌으로의 변신도, 직접 말한대로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여진구는 낯선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전작의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대립군’(감덕 정윤철)이다.

“‘대립군’에서는 분조(分朝, 임진왜란 때 임시로 세운 조정) 상황에 놓인 광해군을 연기했었습니다. 당시 ‘광해군은 산 속에서 어떻게 버텼을까.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왕이 된 남자’ 역시 팩션 사극이지만 같은 상황을 베이스로 둔 작품이잖아요. 덕분에 이헌을 이해하는 데 수월했죠. 이헌도 (광해군과) 똑같은 일을 겪었다고 가정하면 (폭군처럼) 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대립군’에서는 광해군이 느끼는 혼란을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풀어냈다면, ‘왕이 된 남자’ 이헌의 두려움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으로 표현했는데 재밌었습니다” 

여진구는 서로 다른 캐릭터를 오가며 시시각각 감정의 전환을 선보여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김희원 PD에게 공을 돌렸다. “갈수록 하선이 분량이 늘어나는 터라 오랜만에 이헌을 연기할 때에 좀 쳐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때마다 PD님의 도움을 받았다”며 “혼자였다면 어려웠을 텐데 덕분에 쉽게 갈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에 대한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왕이 된 남자’를 촬영하는 동안 눈 앞에서 연기 수업을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게 연기에요’라는 걸 보는 기분? 많은 걸 배웠죠. 특히 (김)상경 선배님에게 크게 배웠던 게 뭐냐면, 연기를 굉장히 진실되게 하세요. 진심이 아니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시고요. 원하는 포인트도 정확해서 카메라 감독님과 앵글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셨어요. 연기 외적으로 본인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한 요소들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시더라고요. ‘저게 맞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건 당연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스태프들과 원활히 소통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사진=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사진=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이어 여진구는 김상경과 같이 연기 외적인 요소에 대해서도 공부가 필요하겠다는 질문에 “아직까지는 계속해서 넓혀야 하는 단계”라며 배우 본인이 직접 의견을 냈을 때와 아닐 때의 차이를 “이제 막 알게 된 터라 연기 말고도 공부해야 할 게 많구나 생각하고 있다”고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실제로 ‘왕이 된 남자’를 모니터링하면서도 김희원 PD의 연출력에 크게 감명받았다고.

“배우가 대사를 잘하고 몸 동작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김희원 PD님은 인물의 감정을 현실적으로 담아내는 데에도 집중하세요. 때문에 촬영 기법이나 카메라 앵글 등의 연출 요소를 다양하게 쓰시죠. 실제로는 1초 촬영한 장면을 고속 카메라로 담아 의미깊은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처럼요. 덕분에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아름답고 유려한 장면들이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이건 PD님이 회차와 장면에 대한 뚜렷한 목표를 갖고 꿰둟어 보지 않았다면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PD님 덕분에 배우들은 마음 놓고 놀 수 있었어요”

그런가 하면 KBS2 ‘대왕세종’(2008) KBS1 ‘장영실’(2016)을 통해 두 번이나 세종을 연기하며 ‘사극계 베테랑’으로 거듭난 김상경을 극 중 신하로 두고 연기한 데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상경 선배님의 가슴에 칼을 툭툭 치는 장면들은 나도 좀 걱정됐다”면서도 “다행히 선배님이 워낙 잘 받아주셨다. 오히려 더 하라고 하실 정도였다. 덕분에 나는 감히 생각조차 못했던 액션들을 과감하게 할 수 있었다”고 웃음 지은 여진구다. 그렇다면 극 중 중전 유소운을 맡아 로맨스 연기를 선보인 이세영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앞서 이세영은 본지에 “여진구는 ‘짬(경력)’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달랐다”고 표현한 바 있다. 이 말을 전하니 웃는 얼굴로 “‘짬’에서 나온 바이브, 있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장이라는 공간이 우리에겐 편한 동시에 긴장감을 갖게 하는 곳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세영 선배도 나도, 운 좋게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온 덕분에 현장에 익숙해져 있어서요. 둘 다 긴장보다는 서로 호흡을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아는 상태라 편안했습니다. 선배에게 고마워요”

여진구는 이세영과의 호흡을 “이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각자 열심히 준비한 걸 현장에서 펼쳐보고, 서로 생각한 것과 다르면 편하게 이야기 나눴다”며 “누구 하나 더 노력하거나 끌어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분위기가 좋았다. 실제 방송에는 쓸 수 없는 상황극을 만들어 놀기도 했다”고 전했다. 특히 촬영장에서 이세영을 ‘누나’보다 ‘중전’이라고 불렀다며 “작품 하는 동안에는 배우들을 극 안에서 부르는 호칭을 그대로 부르는 게 내 스타일”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 내 평소 삶에서 익숙해져야 연기에도 도움이 된다”며 “작품이 끝나면 호칭 정리를 다시 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사진=tvN 방송화면)
(사진=tvN 방송화면)

이런 가운데 여진구에게 ‘왕이 된 남자’의 명장면을 꼽아 달라고 요청했다. 8회, 임금 하선이 도승지 이규(김상경)에게 독살당하는 장면을 먼저 언급했다. 그는 “이헌의 죽음은 원작과 비교했을 때 드라마 ‘왕이 된 남자’가 갖는 굉장히 큰 차별점”이라며 “‘임금이 충신에게 독살 당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을 (제작진이) 현실감 있게 풀어주신 덕분에 시청자들도 납득해주신 것 같다. 정말 잘 만든 드라마이다. 내가 출연한 작품이긴 하지만 스토리 등에서 놀란 지점들이 너무나 많았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선이 신치수(권해효)에게 정체를 밝는 장면과 이규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배우로 활동하면서 처음으로, 내 작품에 푹 빠져서 본 장면들이기도 해요. 원래 스스로 작품에 몰입해 보질 못하는 편이었거든요. 여러모로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한 터라 애정이 크네요”

이제는 ‘왕이 된 남자’를 보내줘야 할 시간, 여진구에게 이헌과 하선이라는 인물에게 전하고픈 말이 없는지 물었다. “우선 이헌에게는, 촬영하는 내내 약은 그만했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신 좀 차리라”며 웃었다. 이어 “하선은 죽지 않고 소운을 만나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다”면서 “한편으로 하선을 연기할 때마다 느낀 게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많이 가졌다. 임금의 일을 할 때도, 소운과 사랑을 할 때도 하선은 남자다운 동시에 자신만의 고집이 있었다. 또 진짜 왕이 되기 위해 자신만의 길을 확실히 개척하는 모습도 멋졌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글도 읽을 줄 몰랐던 광대 하선이 이규와 같은 어른의 도움을 받아 성군(聖君)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자기 만족감을 느끼게 된 배우 여진구와 닮은 것 같다고 하자 그는 “끝나고 나서 알았다. PD님이 나를 하선이와 함께 성장하게끔 만들어주셨다.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라며 눈을 빛냈다.

■ “내가 생각하는 태평성대는”… ‘명배우가 될 남자’ 여진구의 포부

‘왕이 된 남자’로 ‘사극 장인’이란 별칭을 공고히 한 여진구다. 그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사극을 많이 한 편”이라며 “나이에 비해 큰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작품들이 대부분 사극이었다. 아마 중저음의 목소리가 사극에 캐스팅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극은 임금 역할을 통해 권력적이거나 베풀 풀 아는 이미지를 보여줄 수도 있고, 백성일 때에는 신분에서 오는 처절함 등 다양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장르”라고 분석했다. 

(사진=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사진=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왕이 된 남자’를 하면서 ‘여진구가 하는 사극은 괜찮다’는 칭찬을 들을 때 새로웠어요. 동시에 ‘앞으로 다른 장르도 계속 극복해나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주위에서 벌써 사극이라는 전문 장르가 생겼다는 데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도 받았는데 나는 오히려 고맙거든요. 어린 나이에 한 장르로 인정받는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렇기에 앞으로는 보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코미디나 따뜻한 에너지를 가진 작품에서도 인정받고 싶어요”

여진구 스스로 생각하는 ‘인생 연기’ 혹은 ‘인생 작품’은 무엇일까. 그는 “SBS ‘자이언트’를 촬영했던 13~14살 시절”을 먼저 꼽았다. “연기 제일 잘했을 때”라며 “그때는 그냥 즐겼다. 순수하게 받아들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인물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빠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때 작품을 다시 보면 눈빛이 진실됐다. 거짓이 없고 말 그대로 순수하다. 당시에 선배들이 ‘이 순수함을 잃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얘기가 이거였구나’ 싶었다. 그때 눈빛은 이제 절대 다시 못 가질 것”이라고도 했다.

“예전과 지금의 나는 너무나 다릅니다. 아무래도 감정이 깊어졌으니까요. 배우로서 표현하고 싶은 부분들도 생겼고요. 어릴 때는 그냥 대사만 외워서 하고 싶은대로, 느낀 그대로 연기한 반면, 시간이 지날수록 캐릭터 연구도 필요하고 어느 정도의 계산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변화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막막했는데, 이제는 하나의 ‘성장’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 몇 년 후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거잖아요?”

이에 다시 한 번 ‘성장’을 꿈꾸며 비교적 빠른 시간에 차기작을 정한 여진구다. 홍자매(홍정은·홍미란 작가)의 신작으로 기대를 모으는 tvN ‘호텔 델루나’다. 연내 편성 예정인 ‘호텔 델루나’에 여진구는 ‘왕이 된 남자’가 끝나기도 전에 출연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쉬지 않고 차기작을 정할 수 있었던 데는 ‘왕이 된 남자’ 덕이 크다”고 운을 뗀 여진구. 

“지금의 이 성장한 모습, 연기에 갖게 된 자신감을 가만 두고 싶지 않아서요. 감(感)을 유지한 채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호텔 델루나’는 판타지 장르에 약간의 로코 감성이 섞인 작품이거든요. 내가 극복해내고 싶은 장르이죠. 또 결단력과 추진력을 가진 호텔리어를 맡은 덕분에 다른 매력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심 기대를 갖고 열심히 준비 중이니 좋게 봐주시기를 바라요”

(사진=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사진=제이너스엔터테인먼트)

이처럼 도전을 멈추지 않는 여진구에게, 배우로서 그리고 있는 태평성대의 모습은 무엇인지 물었다. “장르를 다 아우르고 싶다. 그게 가장 큰 목표”라는 답이 곧장 돌아왔다.

“그 목표를 이루려면 당장 5~6년은 턱 없이 부족해요. 무엇보다 ‘왕이 된 남자’처럼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하며 스스로를 한계에 부딪히게 만들고 싶습니다. 도전을 반복하다 보면 10~20년이 지난 뒤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는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꼭 주연이 아니어도요. 여러 장르와 역할을 보여드리는, 말 그대로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다양한 장르와 작품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배우로서 내가 바라는 가장 큰 태평성대입니다”

저작권자 ⓒ뷰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