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뷰어스 DB   동진은 명자를 사랑했다. 연상의 여인 명자에게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명자는 동경유학생 유민호와 깊은 관계다. 동진은 낙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을 잊기 위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동진. 떠나기로 결심한 곳은 일본 동경 이였다. 명자를 잊기 위해 떠난 유학길. 사랑의 실패에서 오는 공허함일까, 동진은 일본에서 일본공산당에 가입한다. “숭어 또는 농어나 도미를 저며서 조각내고 …(중략) …이런 식으로 3,4층을 쌓은 뒤 두루마기처럼 말아서 녹말가루로 옷을 입히고 끓는 물에 익힌 다음 칼로 썰어 조각내면 고기 조각과 소가 마치 태극 모양처럼 서로 둘둘 말려있게 된다. 소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재료를 오색으로 만들어 칼로 썰면 무늬가 더욱 아름답다.” 이 음식은 ‘가마보곶’ 이라고 적었다. / - 숙종의 어의였던 이시필이 지은 ‘소문사설’ 중 일부 공산당 활동을 통해 새로운 동지인 야마모토를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임무를 수행한다. 동진은 일본청 장관 암살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들른 사할린에서 명자를 다시 만나는데. 남편인 유민호를 찾아 사할린까지 온 명자는 남편 유민호를 찾지만 악독한 유민호는 이미 아편에 찌들어 정상이 아니였다. 남편인 유민호에 의해 일본 기생집에 팔려버린 명자. 그녀는 명자라는 조선의 이름을 버리고 아끼꼬라는 일본 이름을 갖게 된다. 기생으로 일하던 아끼고는 동진을 다시 만난다. 동진의 암살계획은 미수로 그치고 동지 야마모토는 체포당해 모진 고문을 받던 중 아끼꼬의 도움으로 (헌병대장 요시무라를 유혹한다.) 감옥에서 나오게 된다. 목숨을 구원받은 야마모또는 자신을 구해준 아끼꼬와 사랑에 빠지고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한 시간은 헌병대장 야마모또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아끼꼬는 남편의 복수를 한다. 야마모토에게 복수를 성공한 아끼꼬는 귀국을 하려한다. 그러나 아편쟁이였던 전 남편 유민호에게 잡힌다. 6.25 동란,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들은 “만약 피난 중간에 가족이 헤어지게 되면 부산 영도다리 아래에서 만나자”라는 약속을 한다. 영도다리 아래에는 맨발 피난길에 잃어버린 혈육의 소식을 알기위해 몰려든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별의 고통을 가슴에 안고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기억만 가지고 낯선 타향에 남은 피난민들은 이제 그 이름이 ‘실향민’으로 바뀌었다. 고향을 잃고 살아가는 이들이 억세게도 삶을 강요받던 곳, 영도 근처에 위치한 국제시장, 그리고 깡통시장으로 불리었던 부평시장이다. 전쟁이 끝나도 돌아갈 길이 끊어져버린 이들은 시장에 좌판을 깔고 팔수 있는 것들을 내다 팔고, 만들어 팔고, 날품을 팔아 삶을 이어갔다. 부둣가에서 잡힌 고기들을 받아 그중에 종류를 알 수 없고 섞어도 무방한 생선들을 수레에 싣고 내달려서 골목으로 상한다. 생선을 갈아 밀가루와 섞어 기름에 튀겨내면 찰진 오뎅이 되어 이곳저곳에 팔려갔다. 부산 깡통시장 오뎅은 삶의 의지처럼 뜨겁게 그 명맥을 이어갔다. 깡통시장 골목에서 팔리던 어묵은 KTX 역사에서 기념품으로 팔리기도 하고 고운 종이천에 싸여서 백화점 한자리에서 마치 선물인양 팔리기도 하니 이름 없이 살아온 시절을 보상받는 듯하다. 오뎅 중에 성공한 오뎅도 있다. 대부분은 좌판에 남아있지만 말이다. 한편 동진은 사할린에서 파업을 주도하고 명자의 도움으로 탈출한다. 세월이 지나 동진과 명자는 일본에서 재회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서로를 위로한다. 세 나라 국적을 가진 기구한 여인은 끝내 고향땅을 밟지 못한다.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간 명자는 아끼꼬가 되어 살아가게 된다. 가시 같은 삶에서 사할린으로 던져진 아끼꼬는 쏘냐라는 이름을 받아 돌아가지 못하는 조국. 이제는 기억도 희미한 조국을 그리워하며 추억한다. 청산하지 못해 큰 상처로 남아있던 일본 제국주의의 망령과 그로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정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진즉에 이루어졌어야 하는 과거다 . 김유정의 소설 ‘봄봄’의 마름의 속임수처럼 지주가 속이는 것도 분할 노릇인데 마름까지 설쳐대는 판국에 과거 정산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마름질에 능통한 자들은 지주의 땅이 마치 자기네 땅인 냥 “우리 일본은” 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내 뱉는다.마름부터 없애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음에 홧병만 커간다 여행전문작가 전명윤의 짧은 글을 보고 있었다. “동네에 한적한 술집이 있다. 그곳에서 지친 저녁시간 건넬 수 있는 한 잔의 맥주 , 이제 그 즐거움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이곳은 일본풍의 가게다” 전작가가 방문한 작은 선술집은 아마도 최근 몇 년간 유행하는 일본 분위기의 술집이다. 일식 식자재를 구하기도 쉽고 안주 내어주기도 편했다. 유행처럼 생긴 술집이다. 최근까지 유행했던 스몰비어집 같은 모양새다. 작은 바람에도 넘어갈 수밖에 없는 소상공인은 이제 일본풍 주점을 접고, 다시 눈치를 보러 다녀야 한다. 일본에 가본적도 없는 주인의 미숙함을 탓해야겠다. 가보지도 않은 곳을 마치 가본 것처럼 색을 내서장사를 하려 했다니. 안타깝지만 위로를 던지는 것도 쉽지 않다. 주방 쪽은 뜨거운 김이 흐르지만 휑하다. 탁자 가운데 보이는 국물통이 비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가마보코란 이름은 모양을 만드는 틀에서 나왔다. 본래 대나무에 감아서 빼낸 원통 모양 이였는데 , 그것이 마치 부들의 이삭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1528년 ‘종오대초자’, 일본 생선의 살이 이겨져서 탄성을 품게 되고 뜨거운 기름에서 윤기를 얻어온다. 어묵은 일본이 아닌 한국 땅 바닷가 어느 곳에선가 만들어지지만 어묵은 고향을 가보지 못하고 여전히 이곳에 있다. 어묵은 이름도 부여받았고 사는 곳도 허락받았다. 어묵은 이름만 여러 가지를 얻고 헤프게도 불렸다. 이곳에 있으면 이것. 저곳에 있으면 그것… 저곳에 있으면 죽음 이다. 사실, 오뎅은 어묵이 아니다. 오뎅은 어묵 이외에도 여러 가지를 넣고 끓인 음식 , 그것을 의미한다. 아무려면 어떠한가. 이름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한 천한 신분의 음식이 다시 고향에 돌아갈리 만무하다. 돌아가면 아마도 “조선에서 온 오뎅이라고 불리는 다른 것” 이라는 별칭, 아니 멸칭으로 선술집 구석에서 팔리지 않을까 . 생선으로 살았으면 바다 따라 흘러가기라도 할텐데 말이다. 참고 –식탁위의 한국사 (주영하) , 한일피시로드,흥남에서쿄토까지 (다케쿠니 도모야스)

[윤종훈의 히스토요리] 명자 아끼꼬 쏘냐 (1992년작)

윤종훈 작가 승인 2019.08.13 09:13 | 최종 수정 2139.03.25 00:00 의견 0
사진=뷰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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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은 명자를 사랑했다. 연상의 여인 명자에게 사랑의 마음을 품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명자는 동경유학생 유민호와 깊은 관계다. 동진은 낙심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을 잊기 위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동진. 떠나기로 결심한 곳은 일본 동경 이였다. 명자를 잊기 위해 떠난 유학길. 사랑의 실패에서 오는 공허함일까, 동진은 일본에서 일본공산당에 가입한다.

“숭어 또는 농어나 도미를 저며서 조각내고 …(중략) …이런 식으로 3,4층을 쌓은 뒤 두루마기처럼 말아서 녹말가루로 옷을 입히고 끓는 물에 익힌 다음 칼로 썰어 조각내면 고기 조각과 소가 마치 태극 모양처럼 서로 둘둘 말려있게 된다. 소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재료를 오색으로 만들어 칼로 썰면 무늬가 더욱 아름답다.” 이 음식은 ‘가마보곶’ 이라고 적었다. / - 숙종의 어의였던 이시필이 지은 ‘소문사설’ 중 일부

공산당 활동을 통해 새로운 동지인 야마모토를 만나게 되고 그와 함께 임무를 수행한다. 동진은 일본청 장관 암살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들른 사할린에서 명자를 다시 만나는데. 남편인 유민호를 찾아 사할린까지 온 명자는 남편 유민호를 찾지만 악독한 유민호는 이미 아편에 찌들어 정상이 아니였다. 남편인 유민호에 의해 일본 기생집에 팔려버린 명자. 그녀는 명자라는 조선의 이름을 버리고 아끼꼬라는 일본 이름을 갖게 된다. 기생으로 일하던 아끼고는 동진을 다시 만난다. 동진의 암살계획은 미수로 그치고 동지 야마모토는 체포당해 모진 고문을 받던 중 아끼꼬의 도움으로 (헌병대장 요시무라를 유혹한다.) 감옥에서 나오게 된다. 목숨을 구원받은 야마모또는 자신을 구해준 아끼꼬와 사랑에 빠지고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한 시간은 헌병대장 야마모또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아끼꼬는 남편의 복수를 한다. 야마모토에게 복수를 성공한 아끼꼬는 귀국을 하려한다. 그러나 아편쟁이였던 전 남편 유민호에게 잡힌다.

6.25 동란,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들은 “만약 피난 중간에 가족이 헤어지게 되면 부산 영도다리 아래에서 만나자”라는 약속을 한다. 영도다리 아래에는 맨발 피난길에 잃어버린 혈육의 소식을 알기위해 몰려든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별의 고통을 가슴에 안고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기억만 가지고 낯선 타향에 남은 피난민들은 이제 그 이름이 ‘실향민’으로 바뀌었다. 고향을 잃고 살아가는 이들이 억세게도 삶을 강요받던 곳, 영도 근처에 위치한 국제시장, 그리고 깡통시장으로 불리었던 부평시장이다. 전쟁이 끝나도 돌아갈 길이 끊어져버린 이들은 시장에 좌판을 깔고 팔수 있는 것들을 내다 팔고, 만들어 팔고, 날품을 팔아 삶을 이어갔다. 부둣가에서 잡힌 고기들을 받아 그중에 종류를 알 수 없고 섞어도 무방한 생선들을 수레에 싣고 내달려서 골목으로 상한다. 생선을 갈아 밀가루와 섞어 기름에 튀겨내면 찰진 오뎅이 되어 이곳저곳에 팔려갔다. 부산 깡통시장 오뎅은 삶의 의지처럼 뜨겁게 그 명맥을 이어갔다. 깡통시장 골목에서 팔리던 어묵은 KTX 역사에서 기념품으로 팔리기도 하고 고운 종이천에 싸여서 백화점 한자리에서 마치 선물인양 팔리기도 하니 이름 없이 살아온 시절을 보상받는 듯하다. 오뎅 중에 성공한 오뎅도 있다. 대부분은 좌판에 남아있지만 말이다.

한편 동진은 사할린에서 파업을 주도하고 명자의 도움으로 탈출한다. 세월이 지나 동진과 명자는 일본에서 재회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서로를 위로한다. 세 나라 국적을 가진 기구한 여인은 끝내 고향땅을 밟지 못한다. 조선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간 명자는 아끼꼬가 되어 살아가게 된다. 가시 같은 삶에서 사할린으로 던져진 아끼꼬는 쏘냐라는 이름을 받아 돌아가지 못하는 조국. 이제는 기억도 희미한 조국을 그리워하며 추억한다.

청산하지 못해 큰 상처로 남아있던 일본 제국주의의 망령과 그로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한 정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진즉에 이루어졌어야 하는 과거다 . 김유정의 소설 ‘봄봄’의 마름의 속임수처럼 지주가 속이는 것도 분할 노릇인데 마름까지 설쳐대는 판국에 과거 정산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마름질에 능통한 자들은 지주의 땅이 마치 자기네 땅인 냥 “우리 일본은” 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내 뱉는다.마름부터 없애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음에 홧병만 커간다

여행전문작가 전명윤의 짧은 글을 보고 있었다. “동네에 한적한 술집이 있다. 그곳에서 지친 저녁시간 건넬 수 있는 한 잔의 맥주 , 이제 그 즐거움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이곳은 일본풍의 가게다” 전작가가 방문한 작은 선술집은 아마도 최근 몇 년간 유행하는 일본 분위기의 술집이다. 일식 식자재를 구하기도 쉽고 안주 내어주기도 편했다. 유행처럼 생긴 술집이다. 최근까지 유행했던 스몰비어집 같은 모양새다.

작은 바람에도 넘어갈 수밖에 없는 소상공인은 이제 일본풍 주점을 접고, 다시 눈치를 보러 다녀야 한다. 일본에 가본적도 없는 주인의 미숙함을 탓해야겠다. 가보지도 않은 곳을 마치 가본 것처럼 색을 내서장사를 하려 했다니. 안타깝지만 위로를 던지는 것도 쉽지 않다. 주방 쪽은 뜨거운 김이 흐르지만 휑하다. 탁자 가운데 보이는 국물통이 비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가마보코란 이름은 모양을 만드는 틀에서 나왔다. 본래 대나무에 감아서 빼낸 원통 모양 이였는데 , 그것이 마치 부들의 이삭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1528년 ‘종오대초자’, 일본

생선의 살이 이겨져서 탄성을 품게 되고 뜨거운 기름에서 윤기를 얻어온다. 어묵은 일본이 아닌 한국 땅 바닷가 어느 곳에선가 만들어지지만 어묵은 고향을 가보지 못하고 여전히 이곳에 있다. 어묵은 이름도 부여받았고 사는 곳도 허락받았다. 어묵은 이름만 여러 가지를 얻고 헤프게도 불렸다. 이곳에 있으면 이것. 저곳에 있으면 그것… 저곳에 있으면 죽음 이다.

사실, 오뎅은 어묵이 아니다. 오뎅은 어묵 이외에도 여러 가지를 넣고 끓인 음식 , 그것을 의미한다. 아무려면 어떠한가. 이름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한 천한 신분의 음식이 다시 고향에 돌아갈리 만무하다. 돌아가면 아마도 “조선에서 온 오뎅이라고 불리는 다른 것” 이라는 별칭, 아니 멸칭으로 선술집 구석에서 팔리지 않을까 . 생선으로 살았으면 바다 따라 흘러가기라도 할텐데 말이다.

참고 –식탁위의 한국사 (주영하) , 한일피시로드,흥남에서쿄토까지 (다케쿠니 도모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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