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2 '전설의 고향' 캡처
‘납량’은 여름철 더위를 피해 서늘한 기운을 느낀다는 말이다. 폭포로 피서를 가는 것도 납량이고, 동굴 탐험을 하는 것도 납량이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납량이란 말은 피서지가 아닌 공포를 느껴 더위를 잊게 하는 것과 동일시되어 왔다.
때문에 여름만 되면 공포를 다룬 납량 특집 방송이나 드라마, 영화 등이 줄을 이었다. 이들이 있는 곳은 무더위를 날릴 수 있는 소소한 피서지가 됐고,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납량물의 전성시대는 1990년대다. 하지만 본격적인 역사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KBS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 시초다. 이 드라마는 1977년~1989년 1기, 1996년~1999년 2기, 2008년~2009년 총 3기로 나뉘어 총 668부작이 방송됐다. 전설, 민간 설화 등을 바탕으로 해 귀신이 주는 공포를 다루며 권선징악의 결말로 마무리했다. 특히 ‘전설의 고향’은 구미호 시리즈와 “내 다리 내놔”라는 명대사를 남긴 대덕골 시리즈가 그야말로 ‘전설’로 남아 있다.
1994년에는 MBC에서 납량특집 드라마 ‘엠(M)’을 선보였다. 당시 이 드라마는 획기적이었다. 남아선호사상이 만연하던 시절, 낙태 소재로 메디컬 스릴러라는 새로운 공포의 장을 열었다. 주연 배우 심은하의 눈이 초록색으로 바뀌면서 남자 목소리로 변하는 설정은 공포를 안겼다. 평균 시청률은 38.6%, 최고 시청률은 52.2%에 달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사진=MBC '엠', '거미', '이야기 속으로', SBS '토요 미스테리 극장'
MBC는 1년 뒤 독거미를 소재로 한 10부작 납량특집 미니시리즈 ‘거미’를 방영했지만, ‘엠’ 만큼의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납량 특집은 드라마를 벗어나 실제 사연이나 픽션을 드라마 형식으로 재현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납량물이 등장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방송된 MBC ‘이야기 속으로’와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방송된 SBS ‘토요미스터리 극장’이다. ‘이야기 속으로’는 귀신 분장이나 의도적으로 공포를 주는 방식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실제 제보를 바탕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실제가 주는 공포감이 상당했다. 또 '토요미스테리 극장'은 귀신을 보여주며 대놓고 공포를 표방해 공포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당시 IMF경제위기로 사회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한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이후에는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미스터리를 연예인들이 직접 뛰어들어 파헤치는 프로그램 SBS ‘미스터리 특공대’(2008)와 퇴마 다큐멘터리 여름 특집 프로그램 tvN ‘엑소시스트’(2012) 등이 방송됐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강한 탓인지 예전만큼의 관심과 인기를 끌지 못했다.
사진=영화 '여고괴담1', '장화홍련' 스틸
1920년대 무성영화 ‘장화홍련’을 시작으로 공포 영화가 제작된 영화계에서는 1998년 개봉한 ‘여고괴담’이 대표적인 공포 영화로 손꼽힌다. 한을 품고 죽은 여학생의 원혼이 10년 동안 그 학급에 머물러 떠돌고 있다는 이야기로 학교의 부조리와 성추행, 왕따 문제 등의 현실을 드러내 누적관객수 약 200만 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 기준)을 동원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어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 ‘여고괴담3-여우 계단’(2003) 등이 나왔지만 예전보다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역대 한국 공포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작품은 ‘장화홍련’(2003)이다. 전래동화 ‘장화 홍련전’에서 모티브를 얻어 관객들에게 색다른 공포감과 긴장감을 선사해 한국 공포 영화의 한 획을 그었다는 호평을 받으며 누적 관객수 약 315만 명을 기록했다.
이후 ‘폰’(2002), ‘알포인트’(2004), ‘분홍신’(2005), ‘가발(2006)’, ‘아파트’(2006) 등 매년 여름마다 공포 영화가 나왔지만, ‘폰’과 ‘알포인트’를 제외하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공포 영화 시장이 긴 침체기를 겪을 때 기존 공포 영화의 형식을 깬 작품이 등장했다. 2018년 3월 봄에 개봉한 ‘곤지암’은 요즘 떠오르는 1인 방송 형태의 콘셉트를 차용해 실감 나는 공포감을 더해 공포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며 호평 받았지만, 약 267만 명을 동원하며 ‘장화 홍련’의 기록은 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