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극한직업' 스틸
2012년 영화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처음으로 한 해 두 편의 천만 영화가 탄생했다. 2013년에는 관객수 첫 2억 명을 돌파했다. 이후 매년 한 편 이상의 천만 영화가 나왔다. 올해만 해도 영화 ‘극한직업’과 ‘기생충’이 천만 영화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런 영화계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내실을 따져보면 ‘위기’라는 전망이 나온다. 관객들을 많이 동원할 수 있는 기획 영화에 큰 자본이 투입되고, 자연스럽게 중간급 영화나 작은 영화들의 활약이 저조했다. 위험성을 줄이는 데 주력한 탓에 도전적인 작품들이 나오지 않아 다양성이 저하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전 정신이 돋보이는 신인 감독들의 활약도 줄어들었다. 작품의 숫자가 많아진 만큼, 신인 감독 자체의 숫자가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봉준호부터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최동훈, 장준환 등 2000년대 맹활약한 이들을 이을만한 눈에 띄는 신예들이 없었던 것이다. 나홍진 감독, 이병헌 감독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개성을 보여준 감독들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충무로의 한 영화감독은 그 이유로 “그동안 상위 계층만 돈을 버는 기형적인 구조가 이어졌었다. 단편 콘텐츠로 자신을 증명하고, 영화제에서 두각을 드러내야 할 신인 감독들은 상금이 아니면 수익을 얻기가 힘들다. 창작자에게 돈이 돌아가지 않는 잘못된 구조가 이어져 세대교체를 할 만한 인재들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신인 감독들의 숫자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지만, 하향평준화가 된 것도 그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영화 투자·배급사 관계자 또한 “한국 영화가 다양하게 쏟아지던 시기가 있었지만, 신인 감독 특히 입봉을 준비하는 감독들이 준비를 하는 일만으로 돈을 벌 수 없었던 게 큰 것 같다. 최근에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지만, 이전에는 그런 것들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사진=영화 '군함도' '기생충' 스틸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을 따라가면서 각 파트별 전문성이 강화됐고, 자연스럽게 영화가 감독 의 작품이라는 인식도 약해졌다. 감독 개개인의 활약 부족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의 변화로 인해 인식이 바뀐 것이다. 신인 감독이 아닌, ‘스타 감독’이 부재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영화 제작사 필름케이 김정민 대표는 “신인 감독이 부재하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라고 했다. 다만 1990, 2000년대와 비교해 “과거에는 감독의 이름이 영화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이 활약한 2000년대만 해도 한국 영화의 다양성이 주목을 받는 시기였고, 스포트라이트도 감독이 받던 시절”이라며 “요즘에는 감독의 이름이 아닌, 배우나 장르 등 다양한 측면에서 마케팅을 한다”고 했다.
다수의 영화들은 개봉 전 연예정보 프로그램인 ‘본격연예 한밤’ ‘섹션TV 연예통신’ 등을 통해 홍보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 현장에는 배우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짧은 시간 안에 작품을 효과적으로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스타 마케팅을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시선을 지적하기 전에 내부 관행부터 고쳐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한국 영화에서는 영화를 만든 제작사, 감독보다 돈을 댄 투자사의 이름이 크레딧에 먼저 올라간다. 이에 류승완 감독은 ‘군함도’ 오프닝 크레딧에서 제작 외유내강과 제공 배급 CJ 엔터테인먼트를 제외한 투자자 명단을 없애며 묵은 관행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최근 개봉한 ‘기생충’ 역시 크레딧에 투자사보다 제작사 대표의 이름을 먼저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