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수수료 부담을 이유로 여전히 카드결제를 기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은행 예금이나 주식투자도 신용카드로 하나요? 같은 금융상품인데 보험료만 신용카드로 내라는 건 부당하잖아요."
금융당국이 소비자 편의를 이유로 보험료 카드 결제를 독려하자 보험사 관계자가 이같이 항변했다. 보험업계는 장기상품인 보험 상품의 특성상 카드 결제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생명보험 상품은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보험료를 납입하므로 수수료를 부담하며 카드로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보험사의 수수료 부담은 곧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10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18개 생명보험사의 신용카드납 지수는 전년 동기(4.4%) 대비 0.1%포인트 하락한 4.3%로 집계됐다. 생보사의 카드납 지수는 지난해 4분기 4.7%로 소폭 상승했으나 올해 들어 1분기 4.6%, 2분기 4.5%로 하락세다.
신용카드납 지수는 전체 수입보험료 가운데 카드 결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수치가 높을수록 보험료를 신용카드로 납부한 고객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보험료 신용카드 납부와 관련한 논란은 매년 반복되고 있다. 보험사와 금융당국·카드사의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는 것.
금융당국은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보험료 카드 납부를 독려해왔다. 국회에서도 지난 9월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필두로 보험료 카드 납부 의무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 법안은 고객이 원하면 보험료를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로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거부 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처벌 규정도 포함됐다.
이에 대해 보험사는 소비자 입장으로 보면 큰 의미는 없다고 설명했다. 카드로 보험료를 결제하면 카드사가 수수료를 챙길 뿐, 소비자에겐 특별한 이득은 없다는 것이다.
한 생명보험 관계자는 "카드 결제가 늘어나면 보험사는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므로 오히려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고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보험에 가입한 소비자"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몇몇 보험사들은 보험료 카드 납부를 받지 않는다. 카드 결제가 가능한 다른 생보사들도 일부 보장성 보험 위주로 치우쳐 있다. 보장성보험의 카드 결제 비율은 9.1%인 반면 저축성보험과 변액보험은 각각 0.5% 수준이다.
금융감독원은 2018년 4월부터 생명·손해보험협회 공시를 통해 보험사별 카드납 지수를 공개하도록 했다. 정확한 지수를 통한 카드 결제를 독려하겠다는 의도다.
손보사는 생보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카드 결제 비율이 높은 편이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같은 기간 16개 손보사의 신용카드납 지수는 29.4%로 지난해 같은 기간(26.4%)보다 3.0%포인트 올랐다. 손보사의 카드납 지수는 올해 들어 1분기 27.6%, 2분기 29.1%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 위주로 카드결제가 편중된 모습이다. 자동차보험이 79.9%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장기보장성보험과 장기저축성보험은 각각 13.3%, 4.9% 수준에 그쳤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보험의 경우 1년 단기 보험이 많고 한 번에 카드 결제가 가능하지만 암 보험 등 종신 보험의 경우 20년치의 보험료 수수료를 낼 수 없으므로 손보사는 생보사보다 카드납 지수가 높을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역시 돈을 빌려 보험료를 내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시장 포화 등으로 인해 제로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카드 수수료까지 부담해야 하는 보험사의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올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특별한 대책 없이 카드 결제만 유도하는 것은 결국 카드사만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구조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