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권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사진=경희권 부연구위원)
반도체 한파가 매섭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은 암울하다. 코로나19 직후 비대면 추세로 스마트폰·PC 등의 수요가 늘면서 반도체 시장도 호황이었다. 하지만 세계 경제 성장이 제동이 걸리면서 ICT 기기 수요가 크게 줄었고, 반도체 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경희권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23년 반도체 시장은 ‘상저하고’로, 하반기부터 회복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의 분석을 들어봤다.
- 삼성·SK하이닉스의 올 4분기 실적 하락이 예고됐는데, 반도체 한파 배경은?
▲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추세가 급진전하면서 스마트폰, PC, 웨어러블 기기 등 ICT 디바이스 수요가 급증했다. 플랫폼·클라우드 서비스 공급자의 데이터센터 서버 용량 증설 수요도 늘었다. 2021년 전 세계 반도체 시장 성장률은 전년대비 26.2%를 기록했다. 국내 기업들의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도 전년비 30.9%의 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2022년엔 상황이 달라졌다. 코로나19로 인한 중국 봉쇄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공급망 교란으로 인플레이션이 가속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인플레이션 대응 목적으로 연방기금금리를 인상했다. 이로 인해 ICT 기기 시장 수요는 크게 줄었다. 연쇄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줄었다. 단가도 하락해 수익성이 악화됐다.
2021~2023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와 성장률 현황 및 전망 (자료=WSTS, 제공=경희권 부연구위원)
- 반도체 한파로 감산 추세에도 삼성은 인위적 감산은 없다고 한 이유는?
▲ 삼성전자는 과거 경험에 기초해 다음 메모리 반도체 호황기에 대비해 점유율 확대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 1차 치킨게임 당시 대만 D램 기업이 생산량을 공격적으로 늘려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모두 매출액과 비슷한 규모의 적자를 냈다. 2010년엔 2차 치킨게임으로 일본 엘피다가 파산하며 마이크론에 인수된 역사가 있다.
- 반도체 한파는 언제 풀리나?
▲ 2023년 3분기나 4분기에 상황이 점차 나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 반도체 업계에 큰 경제적 위기 등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다만 2020~2021년 기간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다시 돌파하는 데까지는 3~4년 후인 2026년 전후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 메모리 반도체 주력 시장인 스마트폰과 PC, 서버 시장의 영향을 받아서다. 스마트폰은 2021년 출하량 약 14억대에서, 2023년 12억5000만대를 상회할 전망. PC는 2021년 출하량이 약 3억1000만대이지만, 2023년 2억6000만대로 회복될 것. 서버도 플랫폼 기업을 중심으로 인공지능 활용 사물인터넷 기기가 확산되고, 클라우드 기반 비즈니스가 확대되면서 서버용 D램 시장이 점차 회복될 전망이다.
2022~2026년 스마트폰·PC 출하량과 연간 성장률 전망 (자료=가트너, 제공=경희권 부연구위원)
- 향후 반도체 성장을 이끌 주요 수요처는?
▲ 스마트폰, 태블릿, PC, 서버 등이 현재 우리 메모리 반도체의 주력 수요 산업이다. 반도체 시장 회복과 성장은 ICT 기기와 클라우드 서비스 수요가 증가 국면으로 들어서면 주력 수요 시장이 견인할 것. 반도체 사업은 대중의 소비 심리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인 D램·낸드플래시 전 세계 시장 규모는 2022년 약 1590억 달러에서 2023년 1330억 달러로 약 16%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오는 2026년엔 약 2370억 달러로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D램·낸드는 데이터센터와 차량·산업용에서도 고성장이 예상된다. 가트너는 2020~2026년 연평균 반도체 성장률이 차량용 15.5%, 산업용 8.8%로 전망했다.
- 삼성과 SK의 DDR5 고도화 등 메모리 반도체 전략은?
▲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선도자의 이익’이 절대적이다. 매 세대 최선단 공정 양산과 시장 장악에 성공하면 해당 세대 전체 수익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이는 차세대 시설 투자 원동력이 된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차세대 DDR5 D램을 미국 주요 수요사들과 협력해 개발에 성공했다. 우리 기업들뿐 아니라 최고 사양 제품을 시장에 먼저 출하해 ICT 제품 수명 주기에서 가장 고수익 구간을 향유하려는 이해관계가 합치된 것으로 해석된다.
앞으로는 AI와 이미지 처리 등 분야가 컴퓨팅 영역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기존 폰 노이만 아키텍처나 현재 D램의 구조와 성격의 본질적 변화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D램과 낸드의 특성을 결합한 형태의 메모리 기술이 등장할 전망. 실제로 인텔은 Fe램, 삼성은 M램 등 새로운 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주요 학회에서 발표했다.
21일 삼성전자는 업계 최선단인 12나노급 공정으로 16Gb(기가비트) DDR5 D램(사진)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사진=삼성전자)
- 삼성과 SK의 시스템 반도체 현황과 전망은?
▲ 삼성전자는 글로벌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에서 1위인 대만 TSMC와 격차가 크다. 삼성은 세계 최초 3nm(나노미터, 10억분의 1m) GAA 1세대 공정 개발에도, TSMC의 팬펫(FinFET) 구조 공정 대비 성능과 수율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스마트폰 연간 출하량 2억8000만대에서 3억대 수준으로 세계 1위이지만, 평균 판매가는 애플 대비 절반 수준이다. 자체 AP인 엑시노스 등의 기술적 역량 부족으로 모바일 AP 점유율은 스마트폰 점유율 30%가량 대비 매우 낮은 5% 내외다.
낙관적인 전망은 있다. 삼성은 GAA 2세대 공정 안정화와 수율 제고 이후에는 TSMC와 대등한 구도에서 경쟁이 가능할 전망이다. TSMC의 FinFet을 대체하는 삼성의 GAA 공정은 큰 공정의 변화를 초래하지 않고 다양한 수요 산업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 이에 삼성전자에서 본격 양산을 발표한 2024년 이후가 기대된다.
SK하이닉스는 최근 키 파운드리 인수와 전력반도체 분야 자원 투입, 인수한 서버용 AI 반도체 설계회사 사피온 등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5년 전후 큰 존재감을 갖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 우리 기업이 파운드리 1위 차지할 수 없나?
▲ 대만은 서방 주요 기업들과 개발과 생산을 동시 진행하면서 쌓인 지식과 네트워크가 기반이 돼 TSMC 기업이 파운드리(위탁생산) 1위를 차지했다고 생각한다. 이에 우리도 해외 플랫폼, 가전 기업 등과 연결 거점을 미주와 유럽 각 주요 입지에 설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신흥 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보고 ICT 제품 판매에 적극 임할 필요도 있다. 대만은 한국보다 지정학적으로 불안하다. 이에 대만에서 싱글 소싱은 모든 기업들에게 위험 요인일 수 있다. 이 점을 활용해 해외 시장을 공략해보면 좋을 것.
파운드리 정상 차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성공해야 할 국가전략산업이라는 인식을 기업, 정부 모두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병철 삼성 초대 회장이 반도체로 흑자를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했다. 이처럼 길게 봐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