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야구소녀' 스틸
영화는 한 소녀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해 결국 이뤄낸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꿈’이 심상치 않다. 영화 ‘야구소녀’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이 ‘꿈’부터 시작한다.
스토리는 이렇다. 한때 천재 야구소녀로 불렸고, 남자 야구선수만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해 발군의 실력을 보일 정도였던 수인(이주영 분)은 막상 프로구단 입단을 앞두고 좌절한다. 역사상 여자 프로야구선수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리틀야구팀 때부터 호흡을 맞췄던 남자인 친구는 프로구단 입단이 결정됐지만, 수인에게는 기회조차 없다. 주위에서는 수인에게 포기하라고 한다. 새로 학교에 야구 코치로 부임한 진태(이준혁 분)는 처음에는 수인에게 포기를 강요했지만, 곧 수인의 진정성과 노력을 보고 조력자로 나선다. 그리고 결국 프로구단 트라이아웃에 도전한다.
영화는 수인의 성장기이자 도전기다. 여성이 현재 한국 프로야구 구단에서 활약한 사례는 없다. 때문에 수인의 ‘꿈’은 비현실적이다. 영화를 보지 않고 스토리만 읽는다면 단순한 ‘명랑소녀 성공기’ 수준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그러나 수인은 진지했고, 이는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도 변화시킨다. 코치가 변했고, 엄마가 변했으며, 프로야구 구단 관계자들이 변했다. 한 여고생의 꿈이 이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흥미롭다.
특히 비현실적 꿈에 매달리는 딸의 모습을 보다 못한 엄마(염혜란 분)가 결국 딸은 공장에 취직시키면서 보여주는 모습은 콧등을 짠하게 만든다. 처음으로 작업복을 입어보는 딸 앞에서, 딸의 노력이 묻어있는 낡은 신발을 바라보다가 결국 외면하는 엄마의 모습은 현재의 수많은 엄마들을 떠올리게 한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넌 나처럼 살지 마라” “나도 꿈이 있었지만, 가족을 위해 살다보니 꿈을 버렸다” “내가 나를 버리면서 너희를 키웠다”는 말은 지금도 수많은 부모와 자식들이 입 안에서 삼키고 또 삼키다가 더 이상 누르지 못할 때 나오는 말이다.
딸의 뛰어난 실력을 본 엄마가 현실적인 고민을 털어놓을 때 코치인 진태의 말은 10대들의 꿈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잘못된 시선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진태는 “수인이는 한번도 자기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저희가 못한다고 정해버리는 것은 아닌 것 같다”라고 엄마에게 조언한다. 진태의 말처럼 영화에서는 수인을 둘러싼 어른들은 모두가 수인에게 ‘여자 프로야구 선수는 힘들다’고 말한다.
이는 영화 속 어른들 뿐 아니라, 현실 속 어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화와 관객의 입장을 줄곧 유지하던 상황에서, 딱 한번 관객이 아닌 ‘현실적 어른’으로 변하는 순간이 나온다. 프로구단에서 수인에게 선수가 아닌 프론트를 제안했을 때다. ‘현실’적으로 좋은 제안이었다. 그러나 수인은 거절한다. 수인에게는 그 거절이 당연한 것이지만, 보는 ‘현실적 어른’ 입장에서는 안타까웠다.
‘야구소녀’는 이준혁, 곽동연, 염혜란, 유재명, 송영규, 김종수, 이채은 등 뛰어난 연기력의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역시 수인 역의 이주영의 힘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