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9월 서울 명동 대신증권 본사 영업부에 설치된 국내 최초 시세 전광판. 사진=대신증권)
‘주식’하면 대신증권을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1979년 국내 최초로 명동 본사 영업부 객장에 들어선 전광시세판. 칠판에 분필로 시세를 적어내려가던 당시로선 혁신 그 자체였다. 1980년 국내 처음으로 전지점 온라인 거래를 실시했던 증권사도 대신증권이었다.
그리고 IMF로 전세계 금융시장이 위기를 맞았던 1997년. 대신증권은 ‘사이보스’를 선보이며 국내 투자시장에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투자자들에게 온라인 거래 시스템의 등장은 혁명이었다. 대신증권 HTS는 단번에 폭발적 반응을 얻으며 주식 입문자들에게 최고의 ‘수단’이자 시장과 투자자를 잇는 주요 '통로'로 자리매김했다. 온라인 누적 거래액 1000조원을 돌파한 것 역시 대신증권이 세운 기록이다.
여의도 시절 대신증권 본점 앞에 있었던 황소상 또한 증권가에서 상징하는 바가 컸다. 1994년 양재봉 대신증권 창업주가 의뢰해 제작된 국내 1호 황소상은 ‘불마켓(상승장)’을 염원하는 시장 관계자들의 바람만큼이나 증권가 대표적인 이미지로 꼽혔다. 이에 유력 대선주자들이 주식과 경제에 대한 정책을 내놓을 때면 으레 찾던 곳도 바로 대신증권이다.
이렇듯 1990년대 말까지 대우증권, LG증권, 동서증권, 쌍용증권 등과 더불어 5대 증권사로 손꼽히던 대신증권은 국내 증권사에 상징으로서 많은 역사적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 불어온 변화의 바람 앞에 대신증권은 중심을 잃기 시작했다. 온라인 시장에선 수수료 경쟁력으로 무장한 신생사들 기세에 밀렸다. 자본시장법 개정 이후에는 IB 사업의 핵심이 자본력을 기반으로 한 흐름으로 바뀌면서 또다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당장 든든한 '형님'들이 뒤에서 밀어주는 금융지주와 대기업 계열 증권사들이 자본금을 확충하며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대신증권은 고객도, 직원도 시장 곳곳에 빼앗기고 만다.
무차입 경영과 고객 중심 경영을 근간으로 '묵직한' 경영철학을 지켜온 대신증권은 발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트렌드 속에서 순식간에 대형 증권사 반열에서 밀려났다. 대부분 비즈니스에서 선두권과의 격차는 갈수록 더 벌어지는 상황이다.
■ 5대사에서 10위권으로...흐릿해진 존재감
대신증권은 현재 실적에서도, 자기자본 기준에서도 10위권에 턱걸이 중이다. 지난 2018년 처음 2조원대에 진입했지만 아직까지 종합금융투자사업자 기준인 3조원에 닿지 못한다.
온라인 거래시장에서 폭발적 성장을 일궈낸 키움증권이 지난 2018년 당시 대신증권과 같은 2조원 수준에서 2022년말 기준 4조6000억원대까지 몸집을 불렸음을 감안하면 더 아쉬운 성적표다. 영업이익 역시 키움증권이 지난해 6564억원을 벌어들이는 동안 대신증권은 2535억원을 버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대신증권은 그간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 다각화를 구축하고 부동산 투자 등으로 영역 확대에 나섰다. 대신저축은행, 대신에프앤아이, 대신자산신탁 등 2010년대의 대부분을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 작업에 집중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대신에프앤아이는 2016년 낙찰받은 한남동 부지에 ‘나인원 한남’ 개발 사업을 진행하며 2021년 6000억 규모의 수익을 안기며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사업구조에서도 자연스럽게 과거 지나치게 높았던 브로커리지에 대한 의존도를 꽤 낮추고 있다. 기업공개(IPO) 부문 등에서 꾸준한 경쟁력을 유지하며 성장세를 이룬 덕에 브로커리지 수수료 수익이 전체에 기여하는 비중은 30%선까지 떨어졌다.
문제는 대신증권 내부적인 이익구조에서의 비중 축소가 아니다. 시장내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부분이다. 지난 1분기 기준 주식시장에서 대신증권의 점유율은 1.88%에 그쳐 사실상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다. 주식투자와 관련한 새로운 서비스 출시를 선도하는 타이틀은 경쟁사들에게 내어준지 오래다.
2분기 현재 자기자본이익률(ROE)는 2.95%로 2022년 2분기(11.29%) 이후 줄곧 급하향세를 찍고 있다. 국내 7개 대형 증권사의 2분기 평균 ROE가 7.5%였음을 감안하면 대신증권의 수익성 부진 정도가 가늠된다. 당장 주가(10일 종가 기준)는 1만4600원선으로 2007년 4만원대까지 올랐던 데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 전면 나선 양홍석, 종투사 진출 ‘과제’ 풀어갈까
대신증권 양재봉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이어룡 대신파이낸셜그룹 회장의 아들인 양홍석 대신증권 부회장이 처음 입사한 것은 지난 2006년. 공채 43기로 입사한 그는 선릉역 지점을 거쳐 2007년 대신투자신탁운용의 상무에 이름을 올리고 이듬해 대표이사 부사장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지난해 부회장직에 이어 지난 4월 대신증권 이사장직을 맡음으로써 사실상 양홍석 체계의 출범을 공식화했다. 지분율 역시 10.19%로 이 회장(2.5%)을 앞선다.
대신증권이 부동산개발역량을 강화하는 전략을 주도해 온 양 부회장은 최근 종합금융투자사 진출에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선정시 기업 신용공여 한도가 자기자본의 100%에서 200%로 확대된다.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도 진행 가능하다.
양 부회장은 2024년 상반기 중 종투사 신청을 목표로 세우고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본사 사옥 ‘대신343’ 매각을 통해 ‘실탄’ 마련에 나섰다. 32년만에 명동 시대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지만 자본금 확충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과감하게 실리를 택했다.
이와 함께 최근 대신에프앤아이, 대신자산운용, 대신프라이빗에쿼티 등 100% 자회사로부터 4800억원 가량의 중간배당을 받기로 함으로써 자기자본을 2조6000억원 수준까지 불리게 될 예정이다. 목표액 3조원까지 격차는 서서히 좁혀지는 중이다.
양 부회장의 종투사 진출 목표는 사실상 선택이 아닌 과제라는 평이다. 그간 부동산 부문 특화에 집중해왔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구조를 안고 가는 것은 또 다른 리스크다. 실제 대신증권은 지난해 전년대비 71% 이상 급감한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부동산에 집중된 구조임을 확인시켰다.
대신증권은 창립 50주년이던 2012년 당시 자산관리 서비스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금융주치의 서비스를 선보였다. 하지만 대형사들과 경쟁 대열에 나란히 놓고 볼 때 자산관리 명가로의 자리매김이 만만찮은 게 현실이다.
대신증권은 최근 각종 주식 거래수수료에 대해 ‘제로’를 선언하는가 하면 신용융자 이자율도 0%로 없애면서 집 나간 고객들을 되찾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또 지난해 이후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채권 투자 흐름에 맞춰 온라인을 중심으로 다양한 상품을 선보임으로써 맞춤형 자산관리에 나섰다.
토큰증권발행(STO) 사업에도 진심이다. 지난 3월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인 카사를 인수한 대신증권은 부동산 조각투자 서비스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대부분 컨소시엄을 결성하는 수준이지만 대신증권은 인수를 통해 보다 적극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대신증권은 자체적인 우량 부동산 선별 능력과 카사의 플랫폼 경쟁력이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전략이다.
궁극적으로는 자본력과 수익성 확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종투사 진출 이후 IB부문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부동산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상품들을 공급함으로써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가 대신증권의 향후 입지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대신증권이 지난 10여년간 차별화를 이루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관건은 앞으로 증권사로서 확대된 비즈니스 영역에서 어떻게 수익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끌어올릴 것이냐”라며 “양 부회장 자체가 매우 조용조용한 성향이지만 경영에 있어선 본연의 강점을 살리는 데 집중하는 스타일이라 앞으로 전략에서 그만의 색깔이 조금씩 더 짙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어느덧 현업에 등판한지 18년째에 접어든 양 부회장. 창립 60여년간 수차례 위기를 이겨내고 또다시 변화의 길목에 선 대신증권을 새로운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을지 그의 경영 본편에 관심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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