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하던 어느 날, 회사가 갑자기 술렁입니다. 회장님 아들이 회사에 입사했다는 소문 때문인데요. 후배 아닌 후배를 모시는 직원들의 수고를 거름 삼아 경영 수업을 밟아온 주인공은 끝내 기업을 물려받습니다. 주말 드라마에서뿐 아니라, 실제 우리나라 주요 오너 기업에서 일어나는 장면들입니다.

증권가에서도 요즘 미래에셋그룹의 경영 승계 가능성을 두고 수근거림이 있습니다. 지난 2021년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직접 “2세 경영은 없다”고 선언하며 애진작 꺼진 불씨인 줄 알았건만 박현주 회장의 장남 준범 씨가 올해 미래에셋증권 자기자본(PI)부서 선임 매니저로 이동하면서 박 회장의 ‘진의’가 의심을 받는 분위기입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박 선임매니저가 아버지의 ‘그늘’로 들어온 것은 지난 2022년. 미래에셋벤처투자에 입사해 현장에서 비상장과 벤처투자의 기본기를 익힌 그는 3년 만에 그룹의 핵심 계열사, 그 중에서도 핵심부서로 직행했습니다.

특히나 불과 1년여 전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미래에셋컨설팅의 지분을 증여받아 2대 주주로 등극할 뻔 했던 이의 인사인 만큼 시장에는 숱한 물음표가 따라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벤처투자 시절 일부 딜에 대해 주도적 역할을 할 만큼 성과를 보였다고 전해지면서 경영 승계 시나리오에 조금 더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5년 전 박 회장의 발언을 다시 살펴보면 그는 단순히 세습경영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2021년 8월 ‘매일경제’ 인터뷰 당시 박 회장은 “내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고 이사회에만 참여시켜 전문경영인과 함께 의사 결정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고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박 회장이 구상하는 자녀들의 역할은 단순히 지분만 보유한 이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의사 결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겁니다. 공교롭게도 박 선임매니저가 현재 거치고 있는 부서들을 보면 하나같이 앞으로 각 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곳들입니다. 박 회장의 장녀 하민 씨도 지난 2012년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에 근무한 바 있습니다. 자신이 피와 땀으로 일군 미래에셋 조직의 특성과 업무들을 자녀들이 익히고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박 회장은 자신이 그린 경영구도를 실현하기 위해 한 단계씩 밟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미래에셋 고위 관계자 역시 “향후 사외이사로서 투자와 전략을 담당하기 위한 과정이며 승계는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다만, 그가 말한 ‘하이브리드 방식’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 지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남습니다. 오너 2세, 그것도 현장 수업을 통해 충분한 전문성까지 쌓은 오너와 전문경영인(CEO)이 참여하는 의사 결정에서 무게는 어느 쪽에 실리게 될까. 자칫 무늬만 ‘하이브리드 방식’일 뿐 또다른 이름의 오너 경영이 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건 너무 앞선 걱정일까요.


미래에셋을 국내 시장의 한계를 넘어 글로벌 금융사로 키워가고 있는 박 회장. 그의 남다름이 앞으로 미래에셋 경영 구도에서도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그림으로 그려질 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