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最古)증권사’이자 ‘최고(最高)증권사’가 되길 기원합니다.” 지난 2009년 11월.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열린 교보증권 창립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교보증권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최고 증권사’로 거듭나길 당부했다. 이듬해 김해준 당시 교보증권 사장도 신년사를 통해 “우리는 最古의 증권사는 되지만 最高로 좋은 증권사는 아직 아니다”라며 각성을 주문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교보증권은 여전히 10위권 밖을 맴돈다. 창립 이후 순이익 기준 1000억원을 넘긴 건 한 손가락으로도 충분하다. 국내 최고 증권사인 교보증권은 75년이라는 긴 세월 쌓아온 내공에도 왜 최고가 되지 못했을까. (사진=제1호 증권사인 대한증권 허가증) ■ 증권업 모태가 된 1호, 성장에서 밀리다 서울 명동의 친목단체 증권구락부를 주축으로 1949년 대한증권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교보증권은 2호 증권사인 고려증권보다도 3년 먼저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 증권사다. 국내에 증권에 대한 인식조차 없던 1950년대 대한증권은 증권거래소 설립의 모태 역할을 하는 등 국내 증권업계가 태동하고 발전하는 씨앗을 뿌렸다. 그런 대한증권이 약정 부문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대한증권은 이후 수차례 대주주가 바뀌며 뜻하지 않은 부침을 겪어야 했지만 1994년 교보생명이라는 새 주인을 만나면서 안정기에 접어드는 듯했다. 초기에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코스닥 상장 당시 이목을 집중시키며 상장 당일 가격제한폭까지 오른 기록은 시장의 기대감도 적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실제 교보증권은 인수 5년여만에 종합영업력 기준 9위에 오르며 10대 증권사 안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 허나 그 이상은 없었다. 되레 업계 순위는 더 밀려났다. 국내 주식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브로커리지 시장이 확대되던 1990년대말 키움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새로운 주자들이 빠르게 시장을 잠식해갔고 2009년 자본시장통합법을 기점으로 기업금융(IB) 시장도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했다. 동기간 경쟁사들이 거둔 성장과 비교하면 아쉬움은 더 컸다. 2010년 교보증권은 9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며 14위에 올랐다. 같은해 메리츠증권은 81억원의 순이익을 올려 16위에 그쳤다. 10년 뒤인 2020년, 교보증권은 마침내 사상 첫 순이익 1000억원을 달성하며 팡파레를 울렸다. 하지만 그동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중심으로 탄탄한 사업구도를 구축한 메리츠증권은 그해 5651억원을 벌어들며 7배가 넘는 성장을 일궈냈다. 당시 순이익 기준 메리츠증권은 4위까지 퀀텀점프했고 교보증권은 또다시 13위에 만족해야 했다. 최근 증권업계는 IB 경쟁력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며 기업공개(IPO) 시장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 교보증권도 시장 침투를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수년간 IPO 주관 순위는 20위권을 맴돈다. 브로커리지 수수료 이익은 9% 이상 줄며 지난해 13위로 내려앉았다. 외국계 증권사인 모건스탠리보다도 뒤쳐지는 수준이다. 교보증권의 현실을 반영하듯 주가 역시 속절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1999년 코스닥 상장 당시 1만2600원까지 오르며 기대주로 등장했던 교보증권의 주가는 지난 2일 종가 기준 5010원. 25년 투자 수익률이 반토막도 안 된다. (사진=신창재 교보생명 이사회 의장) ■ 확신없던 오너와 발목잡은 악재들 교보증권의 더딘 성장은 대주주인 교보생명의 증권업에 대한 미온적 태도와 교보증권을 훑고간 각종 악재들이 원인으로 꼽힌다. 교보생명은 교보증권 인수 이후인 2000년 신창재 교보생명 이사회 의장 체제로 전환했다. 교보증권 안팎의 관계자들은 신 회장이 증권업의 성장성에 대해 처음부터 확신을 갖지 못했다고 전한다. 실제 교보증권은 2000년대 들어 꾸준히 매각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곤 했다. “오너 일가가 증권업의 성장성에 대해 확신을 갖기 시작한 게 오래지 않습니다. 주식 시장이 워낙 시황에 따른 변동성이 크다보니 오너로서는 안정적으로 성장하던 교보생명 대비 성장성이 없다고 봤던 거죠. 자본시장 성장과 함께 고객자산이 늘어나면서 자산관리(WM) 부문의 성과가 생기고 기업금융(IB)에서 가능성이 확인되고 나서야 증권업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어요.” 2008년 유진그룹으로의 매각 협상이 한차례 무산된 이후 회사는 다시 산만했던 조직 분위기를 다잡고 정상화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2009년 시행된 자본시장통합법을 계기로 증권업계 양극화가 벌어지며 한발 느렸던 교보증권은 경쟁사들 사이에서 입지를 키우기에 버거웠다. 더딘 성장의 늪에 빠졌던 교보증권은 2018년 다시 우리은행을 상대로 한 매각 작업에 오르는 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2020년 발생한 1000억원 규모의 ‘로얄클래스M 사모펀드’ 사태는 교보증권 내부에서 발생한 악재였다. 당시 기관 등을 대상으로 교보생명과 신한은행 등이 팔았던 펀드는 손실률 99%라는 사상 최악의 사태로 이어졌다. 박봉권-이석기 체제로 돌입한 이후 두 CEO는 이 뒷수습을 위해 상당기간 에너지를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 전언이다. 이밖에 부동산 시장 침체 여파에 따른 리스크 확대도 발목을 잡았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6월말 우발채무 중 PF 익스포저 비중이 90%를 상회하는데 이중 브릿지론 등의 비중을 감안할 때 질적 위험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례로 경남 거제시 고현항 항만 3단계 재개발 사업을 위해 조성된 25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건이 엎어지는 등 난제가 잇따르면서 교보증권은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을 위해 에너지를 모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졌다. (사진=교보증권) ■ 종투사 도전? 갈 길은 멀고 주주는 '불만' 올해 3연임에 성공한 박봉권 대표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 진입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다. 이를 위해 교보증권은 지난 2020년 6월과 2023년 8월 두차례 교보생명을 대상으로 한 제3자 배정방식의 유상증자를 통해 총 4500억원의 자본을 확대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자본금은 1조8773억원. 별도 재무제표 기준 자기자본 3조원을 기준으로 하는 종투사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오히려 주주들은 유상증자를 통해 희석되는 주주 가치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다. 두번의 유상증자를 통해 교보생명의 지분은 51.63%에서 84.74%까지 대폭 늘어났지만 유통가능 주식이 늘면서 주가는 하락했다. 자본 확대가 수익구조 확대를 통한 것이 아닌 유상증자 방식이다보니 주주 가치만 떨어뜨린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특히 비슷한 규모의 경쟁사들이 2010년대를 기점으로 자기자본을 늘리면서 사업 구조 다각화 및 수익성 확보를 이뤄낸 데 비하면 시의성 측면에서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사 중심으로 형성된 업권 경쟁에서 중소형사들이 생존하려면 자사만의 특화된 경쟁력과 자본력 확대가 필수다. 교보생명의 안정적 DNA가 아닌 보다 빠른 의사결정 구조와 전문영역 강화를 통해 변화를 꾀하지 않는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교보생명이 교보증권을 인수한 지 올해로 30년째. 더욱 치열해지는 자본시장에서 과연 교보증권은 ‘최고(最高)증권사’라는 꿈을 언제쯤 이뤄낼 수 있을까. [뷰파인더] 코너는 국내 금융회사의 이슈와 전략을 조금 더 실감나게 보여주는 콘텐츠입니다. 현재의 기업 전략을 이해하려면 기업의 발자취, 그간의 경영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기업 CEO와 대주주에 대한 평가도 있어야겠죠. 이를 통해 기업의 성장성과 미래를 입체적으로 살피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누가 교보증권 발목을 잡았나 [뷰파인더]

49년 최초의 증권사, 시장 성장에서 소외된 만년 10위권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주가, 25년 수익률 반토막?
확신없는 오너에 성장엔진 상실까지...뒤늦은 유상증자 답답한 주주들

박민선 기자 승인 2024.04.02 16:31 | 최종 수정 2024.04.02 16:40 의견 0

“‘최고(最古)증권사’이자 ‘최고(最高)증권사’가 되길 기원합니다.”

지난 2009년 11월.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열린 교보증권 창립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교보증권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최고 증권사’로 거듭나길 당부했다. 이듬해 김해준 당시 교보증권 사장도 신년사를 통해 “우리는 最古의 증권사는 되지만 最高로 좋은 증권사는 아직 아니다”라며 각성을 주문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교보증권은 여전히 10위권 밖을 맴돈다. 창립 이후 순이익 기준 1000억원을 넘긴 건 한 손가락으로도 충분하다. 국내 최고 증권사인 교보증권은 75년이라는 긴 세월 쌓아온 내공에도 왜 최고가 되지 못했을까.

(사진=제1호 증권사인 대한증권 허가증)


■ 증권업 모태가 된 1호, 성장에서 밀리다

서울 명동의 친목단체 증권구락부를 주축으로 1949년 대한증권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교보증권은 2호 증권사인 고려증권보다도 3년 먼저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 증권사다. 국내에 증권에 대한 인식조차 없던 1950년대 대한증권은 증권거래소 설립의 모태 역할을 하는 등 국내 증권업계가 태동하고 발전하는 씨앗을 뿌렸다.

그런 대한증권이 약정 부문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대한증권은 이후 수차례 대주주가 바뀌며 뜻하지 않은 부침을 겪어야 했지만 1994년 교보생명이라는 새 주인을 만나면서 안정기에 접어드는 듯했다.

초기에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코스닥 상장 당시 이목을 집중시키며 상장 당일 가격제한폭까지 오른 기록은 시장의 기대감도 적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실제 교보증권은 인수 5년여만에 종합영업력 기준 9위에 오르며 10대 증권사 안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

허나 그 이상은 없었다. 되레 업계 순위는 더 밀려났다. 국내 주식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브로커리지 시장이 확대되던 1990년대말 키움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새로운 주자들이 빠르게 시장을 잠식해갔고 2009년 자본시장통합법을 기점으로 기업금융(IB) 시장도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했다.

동기간 경쟁사들이 거둔 성장과 비교하면 아쉬움은 더 컸다. 2010년 교보증권은 9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며 14위에 올랐다. 같은해 메리츠증권은 81억원의 순이익을 올려 16위에 그쳤다.

10년 뒤인 2020년, 교보증권은 마침내 사상 첫 순이익 1000억원을 달성하며 팡파레를 울렸다. 하지만 그동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중심으로 탄탄한 사업구도를 구축한 메리츠증권은 그해 5651억원을 벌어들며 7배가 넘는 성장을 일궈냈다. 당시 순이익 기준 메리츠증권은 4위까지 퀀텀점프했고 교보증권은 또다시 13위에 만족해야 했다.

최근 증권업계는 IB 경쟁력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며 기업공개(IPO) 시장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 교보증권도 시장 침투를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수년간 IPO 주관 순위는 20위권을 맴돈다. 브로커리지 수수료 이익은 9% 이상 줄며 지난해 13위로 내려앉았다. 외국계 증권사인 모건스탠리보다도 뒤쳐지는 수준이다.

교보증권의 현실을 반영하듯 주가 역시 속절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1999년 코스닥 상장 당시 1만2600원까지 오르며 기대주로 등장했던 교보증권의 주가는 지난 2일 종가 기준 5010원. 25년 투자 수익률이 반토막도 안 된다.

(사진=신창재 교보생명 이사회 의장)


■ 확신없던 오너와 발목잡은 악재들

교보증권의 더딘 성장은 대주주인 교보생명의 증권업에 대한 미온적 태도와 교보증권을 훑고간 각종 악재들이 원인으로 꼽힌다.

교보생명은 교보증권 인수 이후인 2000년 신창재 교보생명 이사회 의장 체제로 전환했다. 교보증권 안팎의 관계자들은 신 회장이 증권업의 성장성에 대해 처음부터 확신을 갖지 못했다고 전한다. 실제 교보증권은 2000년대 들어 꾸준히 매각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곤 했다.

“오너 일가가 증권업의 성장성에 대해 확신을 갖기 시작한 게 오래지 않습니다. 주식 시장이 워낙 시황에 따른 변동성이 크다보니 오너로서는 안정적으로 성장하던 교보생명 대비 성장성이 없다고 봤던 거죠. 자본시장 성장과 함께 고객자산이 늘어나면서 자산관리(WM) 부문의 성과가 생기고 기업금융(IB)에서 가능성이 확인되고 나서야 증권업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어요.”

2008년 유진그룹으로의 매각 협상이 한차례 무산된 이후 회사는 다시 산만했던 조직 분위기를 다잡고 정상화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2009년 시행된 자본시장통합법을 계기로 증권업계 양극화가 벌어지며 한발 느렸던 교보증권은 경쟁사들 사이에서 입지를 키우기에 버거웠다. 더딘 성장의 늪에 빠졌던 교보증권은 2018년 다시 우리은행을 상대로 한 매각 작업에 오르는 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2020년 발생한 1000억원 규모의 ‘로얄클래스M 사모펀드’ 사태는 교보증권 내부에서 발생한 악재였다. 당시 기관 등을 대상으로 교보생명과 신한은행 등이 팔았던 펀드는 손실률 99%라는 사상 최악의 사태로 이어졌다. 박봉권-이석기 체제로 돌입한 이후 두 CEO는 이 뒷수습을 위해 상당기간 에너지를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 전언이다.

이밖에 부동산 시장 침체 여파에 따른 리스크 확대도 발목을 잡았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6월말 우발채무 중 PF 익스포저 비중이 90%를 상회하는데 이중 브릿지론 등의 비중을 감안할 때 질적 위험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례로 경남 거제시 고현항 항만 3단계 재개발 사업을 위해 조성된 25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건이 엎어지는 등 난제가 잇따르면서 교보증권은 사업 포트폴리오 확장을 위해 에너지를 모으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졌다.

(사진=교보증권)


■ 종투사 도전? 갈 길은 멀고 주주는 '불만'

올해 3연임에 성공한 박봉권 대표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 진입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다. 이를 위해 교보증권은 지난 2020년 6월과 2023년 8월 두차례 교보생명을 대상으로 한 제3자 배정방식의 유상증자를 통해 총 4500억원의 자본을 확대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자본금은 1조8773억원. 별도 재무제표 기준 자기자본 3조원을 기준으로 하는 종투사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오히려 주주들은 유상증자를 통해 희석되는 주주 가치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다. 두번의 유상증자를 통해 교보생명의 지분은 51.63%에서 84.74%까지 대폭 늘어났지만 유통가능 주식이 늘면서 주가는 하락했다. 자본 확대가 수익구조 확대를 통한 것이 아닌 유상증자 방식이다보니 주주 가치만 떨어뜨린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특히 비슷한 규모의 경쟁사들이 2010년대를 기점으로 자기자본을 늘리면서 사업 구조 다각화 및 수익성 확보를 이뤄낸 데 비하면 시의성 측면에서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사 중심으로 형성된 업권 경쟁에서 중소형사들이 생존하려면 자사만의 특화된 경쟁력과 자본력 확대가 필수다. 교보생명의 안정적 DNA가 아닌 보다 빠른 의사결정 구조와 전문영역 강화를 통해 변화를 꾀하지 않는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교보생명이 교보증권을 인수한 지 올해로 30년째. 더욱 치열해지는 자본시장에서 과연 교보증권은 ‘최고(最高)증권사’라는 꿈을 언제쯤 이뤄낼 수 있을까.

[뷰파인더] 코너는 국내 금융회사의 이슈와 전략을 조금 더 실감나게 보여주는 콘텐츠입니다. 현재의 기업 전략을 이해하려면 기업의 발자취, 그간의 경영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기업 CEO와 대주주에 대한 평가도 있어야겠죠. 이를 통해 기업의 성장성과 미래를 입체적으로 살피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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