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습니다!’ 위메프에서 온라인 구매를 위해 회원가입을 하면 받게 되는 이메일 제목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회원가입은 개인정보를 탈탈 털리는 일입니다. 유출 경로는 모르겠지만 생판 모르는 곳에서 날아오는 스팸성 광고 메시지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회원가입을 한 이유는 물건값이 너무 쌌기 때문입니다. 1만원짜리 물건을 1000원 더 싸게 사는 정도가 사실 회원가입의 동인이 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물건값이 100만원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10만원 더 싸게 살 수 있다면 기꺼이 회원가입을 하게 됩니다. 노트북, 청소기 등 고가의 가전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가격비교를 해 보면 유독 티몬과 위메프에서 싸게 파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뭔가 하자가 있는 제품인가’, ‘리퍼비시 제품 아닌가’ 찜찜한 마음이 들다가도 ‘설마…’ 하며 결제 버튼을 누른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받아 본 제품은 멀쩡한 새 제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라는 의문은 최저가 구매의 기쁨에 사그라듭니다. 최근 ‘티메프’ 사태를 겪으며 ‘위 메이크 프라이스(We make price)’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티메프가 유독 물건을 싸게 판 이유는 유통 혁신의 산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손해를 보면서 판 것입니다. 사이트 활성화를 위해, 매출 증대를 위해 출혈을 감수한 것이죠. 결국 손해가 쌓여 감당 불가의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미정산금 규모는 티몬 6700억원, 위메프 2600억원 등 총 9300억원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긴급 현안질의를 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약 1조원으로 추정되는 미정산금을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어딘가로 빼돌렸다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에게 ‘반드시 찾아내라’고 노발대발했습니다. 평생 세금으로 월급만 받아 본 일부 의원들은 온라인 마켓의 사업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호통치기에만 몰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구 대표가 자금을 어딘가로 빼돌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티메프가 비정상적으로 물건을 싸게 판 것을 감안하면 자금유용보다는 이미 회사 운영자금으로, 판매·소비자 혜택 등으로 다 사라졌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립니다. 국회의원들이 ‘1조원 어디에 숨겼냐’며 윽박지를 때마다 구 대표는 ‘업계 경쟁이 너무 치열해져서…’라는, 어찌 보면 동문서답 같은 답을 반복했습니다. ‘이미 다 썼다’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 내놓은 답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나를 절대 사기꾼으로 보지는 말아 달라’라는 답변은 ‘나만 혜택 본 것 아니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들렸습니다. 구 대표가 지난 1일 모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내놓은 정상화 방안의 핵심은 티몬과 위메프를 합병해 미정산 판매자를 대주주로 만드는 것입니다.(언론에서 제목을 줄이려 만들어낸 ‘티메프’가 진짜 대책일 줄이야!) 기존 입점 판매자들이 합병 플랫폼을 통해 영업을 계속 해서 직접 손실을 만회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 방안은 실현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소비자들이 티메프를 선택한 이유는 터무니없이 가격이 쌌기 때문입니다. 판매자가 티메프에서 물건을 팔려면 계속 터무니없이 가격이 싸야 합니다. 보유한 여유자금이나 마케팅 비용이 넉넉할 경우 사업 유지가 가능하겠지만 적자기업 두 곳을 합쳐봐야 적자 규모만 더 커질 뿐입니다. 싸게 팔기 위한 여유자금이 생길 리 만무합니다. 합병하면 인건비가 현 수준의 60%로 절감돼 관리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들기도 했는데요. 글쎄요…, 그 정도 수준으로 과연 지속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위기 발생 전이라면 가능한 시나리오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많은 온라인 플랫폼의 롤모델은 미국 아마존입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적자를 감수하면서 오로지 ‘이용자 증가’ 하나에만 몰두했습니다.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쿠팡이 아마존 모델을 따라갔지요. 매년 쌓이는 엄청난 적자 규모에 ‘버티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많았지만 쿠팡은 보란 듯이 흑자전환을 이뤄냈습니다. G마켓 성공에 도취된 구영배 대표는 아마존처럼, 쿠팡처럼 회사를 키울 수 있다고 자기최면을 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마존 모델이 성공하려면 흑자 전환 전까지 대출이든, 기업공개든 끊임없이 외부 자금이 수혈돼야 합니다. 구 대표는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사달이 나고 말았습니다. 정산 기간을 최대한 늘려 자금을 다른 목적으로 유용했고, 정확한 내역은 재무본부장이 알고 있다며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구 대표는 국회에서 ‘내가 범죄자라면, 우리 모두 공범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티메프의 손실이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모두 이익으로 돌아갔으니까요. 판매자는 티메프의 마케팅 비용을 등에 업고 경쟁사보다 싸게 팔아 매출(수익) 증가의 혜택을 입었습니다. 구매자 역시 매우 싼 값에 물건을 살 수 있었죠. 티메프는 이용자가 늘어나는 혜택을 누렸습니다. 모두 혜택을 누렸습니다. 물론 돌려막기가 끝나기 전까지의 얘기겠지만 말이죠. 티메프 사태가 우리에게 또 한 번 알려준 진실은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입니다. 싼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혜택을 볼 때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돼 있습니다. 아마존도, 쿠팡도, 마켓컬리도 회원들에게 감동의 대가를 ‘연회비’로 요구한 뒤에야 흑자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터무니없이 가격이 쌀 때는 의심을 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의심을 하기엔 최저가의 유혹이 너무나도 강렬합니다. 조만간 또 고가의 전자제품을 사야하는데 과연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습니다.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한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자료=국회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화면 캡처)

[데스크칼럼] 구영배 대표가 차마 할 수 없었던 말

최중혁 기자 승인 2024.08.02 09:49 의견 0


‘반값습니다!’

위메프에서 온라인 구매를 위해 회원가입을 하면 받게 되는 이메일 제목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회원가입은 개인정보를 탈탈 털리는 일입니다. 유출 경로는 모르겠지만 생판 모르는 곳에서 날아오는 스팸성 광고 메시지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회원가입을 한 이유는 물건값이 너무 쌌기 때문입니다. 1만원짜리 물건을 1000원 더 싸게 사는 정도가 사실 회원가입의 동인이 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물건값이 100만원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10만원 더 싸게 살 수 있다면 기꺼이 회원가입을 하게 됩니다.

노트북, 청소기 등 고가의 가전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가격비교를 해 보면 유독 티몬과 위메프에서 싸게 파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뭔가 하자가 있는 제품인가’, ‘리퍼비시 제품 아닌가’ 찜찜한 마음이 들다가도 ‘설마…’ 하며 결제 버튼을 누른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받아 본 제품은 멀쩡한 새 제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라는 의문은 최저가 구매의 기쁨에 사그라듭니다.

최근 ‘티메프’ 사태를 겪으며 ‘위 메이크 프라이스(We make price)’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티메프가 유독 물건을 싸게 판 이유는 유통 혁신의 산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손해를 보면서 판 것입니다. 사이트 활성화를 위해, 매출 증대를 위해 출혈을 감수한 것이죠. 결국 손해가 쌓여 감당 불가의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미정산금 규모는 티몬 6700억원, 위메프 2600억원 등 총 9300억원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긴급 현안질의를 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약 1조원으로 추정되는 미정산금을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어딘가로 빼돌렸다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에게 ‘반드시 찾아내라’고 노발대발했습니다. 평생 세금으로 월급만 받아 본 일부 의원들은 온라인 마켓의 사업구조에 대한 이해 없이 호통치기에만 몰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구 대표가 자금을 어딘가로 빼돌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티메프가 비정상적으로 물건을 싸게 판 것을 감안하면 자금유용보다는 이미 회사 운영자금으로, 판매·소비자 혜택 등으로 다 사라졌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립니다.

국회의원들이 ‘1조원 어디에 숨겼냐’며 윽박지를 때마다 구 대표는 ‘업계 경쟁이 너무 치열해져서…’라는, 어찌 보면 동문서답 같은 답을 반복했습니다. ‘이미 다 썼다’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 내놓은 답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나를 절대 사기꾼으로 보지는 말아 달라’라는 답변은 ‘나만 혜택 본 것 아니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들렸습니다.

구 대표가 지난 1일 모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내놓은 정상화 방안의 핵심은 티몬과 위메프를 합병해 미정산 판매자를 대주주로 만드는 것입니다.(언론에서 제목을 줄이려 만들어낸 ‘티메프’가 진짜 대책일 줄이야!) 기존 입점 판매자들이 합병 플랫폼을 통해 영업을 계속 해서 직접 손실을 만회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 방안은 실현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소비자들이 티메프를 선택한 이유는 터무니없이 가격이 쌌기 때문입니다. 판매자가 티메프에서 물건을 팔려면 계속 터무니없이 가격이 싸야 합니다. 보유한 여유자금이나 마케팅 비용이 넉넉할 경우 사업 유지가 가능하겠지만 적자기업 두 곳을 합쳐봐야 적자 규모만 더 커질 뿐입니다. 싸게 팔기 위한 여유자금이 생길 리 만무합니다. 합병하면 인건비가 현 수준의 60%로 절감돼 관리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들기도 했는데요. 글쎄요…, 그 정도 수준으로 과연 지속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위기 발생 전이라면 가능한 시나리오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많은 온라인 플랫폼의 롤모델은 미국 아마존입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적자를 감수하면서 오로지 ‘이용자 증가’ 하나에만 몰두했습니다.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쿠팡이 아마존 모델을 따라갔지요. 매년 쌓이는 엄청난 적자 규모에 ‘버티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많았지만 쿠팡은 보란 듯이 흑자전환을 이뤄냈습니다. G마켓 성공에 도취된 구영배 대표는 아마존처럼, 쿠팡처럼 회사를 키울 수 있다고 자기최면을 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마존 모델이 성공하려면 흑자 전환 전까지 대출이든, 기업공개든 끊임없이 외부 자금이 수혈돼야 합니다. 구 대표는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사달이 나고 말았습니다. 정산 기간을 최대한 늘려 자금을 다른 목적으로 유용했고, 정확한 내역은 재무본부장이 알고 있다며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구 대표는 국회에서 ‘내가 범죄자라면, 우리 모두 공범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티메프의 손실이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모두 이익으로 돌아갔으니까요. 판매자는 티메프의 마케팅 비용을 등에 업고 경쟁사보다 싸게 팔아 매출(수익) 증가의 혜택을 입었습니다. 구매자 역시 매우 싼 값에 물건을 살 수 있었죠. 티메프는 이용자가 늘어나는 혜택을 누렸습니다. 모두 혜택을 누렸습니다. 물론 돌려막기가 끝나기 전까지의 얘기겠지만 말이죠.

티메프 사태가 우리에게 또 한 번 알려준 진실은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입니다. 싼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혜택을 볼 때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돼 있습니다. 아마존도, 쿠팡도, 마켓컬리도 회원들에게 감동의 대가를 ‘연회비’로 요구한 뒤에야 흑자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터무니없이 가격이 쌀 때는 의심을 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의심을 하기엔 최저가의 유혹이 너무나도 강렬합니다. 조만간 또 고가의 전자제품을 사야하는데 과연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습니다.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한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자료=국회인터넷의사중계시스템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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