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새벽 서울 강남구 위메프 본사가 정산 지연 사태와 관련 상품을 환불받으려는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명 '티메프 사태'로 불리는 티몬·위메프의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위메프 대표는 환불을 책임지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대기업, 중소판매자에 이어 소비자할 것 없이 전방위 피해 확산이 예상되면서 '티메프 후폭풍' 공포가 커지고 있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유통 판매사들은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지연에 대해 본사가 손해를 보더라도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를 우선으로 대응하고 있다. 야놀자는 고객 불편 및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입실일 기준 28일까지의 예약건은 사용 가능하지만, 29일부터의 상품은 모두 사용 불가 처리키로 했다. 야놀자는 티몬과 위메프의 대금 지연과 관계없이 사용 처리된 상품 대해 책임지고 제휴점에 정상적으로 정산한다는 방침이다.
노랑풍선도 7월 출발 분까지 행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8월 이후 출발 고객의 경우 고객이 원하는 방향에 따라 취소 위약금을 전액 면제하기로 했으나 여행을 원하는 고객에게는 재결제 및 기 결제 취소를 지원하기로 했다. SPC그룹은 티몬, 위메프 등을 통해 판매된 'SPC모바일 상품권'을 즉각 중단하고, 전액 환불하도록 조치했다.
대행업체로부터 정산받지 못한 판매금 문제는 해당 업체와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을 예정이다. 11번가 역시 요기요, 배달의 민족, 신세계 등과 계약을 맺고 해당 업체 기프티콘을 자체 발행해 위메프에서 판매해왔는데, 정산 문제와 관계 없이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방침을 정했다.
■휴가철에 떨어진 날벼락, 여행업계 피해 '1000억'
사진=SPC그룹.
이번 사태로 가장 큰 불똥이 튄 곳은 여행업계다. 여름 휴가를 맞아 적지않은 규모의 여행상품 온라라인 판매를 양사에서 진행했기 때문이다. 여행업계 A 관계자는 "고객들의 확인 전화가 몰려들고 있다"며 "7~8월 휴가철에 맞춰 내놓은 상품들의 예약을 두곳에서 진행한 것이 많은데 예약상품들의 진행여부 및 환불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예약상품 정산을 받지 못할 경우다. 휴가철 예약 상품을 정산받지 못하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 있어서다. 여행업계 B 관계자는 "예약받은 상품을 진행하지 않을 경우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기 떄문에 판매한 여행상품을 자체적으로 취소할 수도 없다"며 "상품만 팔아놓고 돈을 받지 못하는 것인데 이럴 경우 여행업계 피해액은 1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여행업계는 위메프·티몬에 대한 기존 결제 취소·환불 신청 후 자사에 재결제하는 방식을 유도하고 있다. 참좋은여행은 24일 출발하는 해외여행 상품부터 재결제해야 정상 출발하도록 했고 교원투어는 오는 28일 출국하는 해외여행 예약상품까지만 정상 진행하고 이후 출발 상품은 자사에 재결제한 경우 여행 일정을 시작할 계획이다. 모두투어와 노랑풍선은 7월 출발 여행상품은 정상적으로 진행하지만, 8월 여행 상품부터는 재결제해야만 정상 출발할 수 있도록 했으며 하나투어도 임박한 날짜만 정상 출발하고 대응 방법은 추후 결정할 예정이다.
노랑풍선 관계자는 "전체 여행알선수입 가운데 해당 플랫폼 두 곳에서 발생되는 매출은 불과 3% 내외로 극히 미비한 수준"이라면서도 "여행업계에 2차적 피해를 초래할 수 있어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환불 완수' 약속에도…소비자·소상공인·금융권까지 피해 불가피
류화현 위메프 대표이사가 25일 새벽 서울 강남구 위메프 본사에서 정산 지연 사태로 상품을 환불받으려는 고객들을 응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티몬, 위메프 등 입점 업체 정산금이 무기한 지연되면서 구매 고객 취소에 대해 환불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소비자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미 위메프·티몬으로부터 환불을 받지 못한 피해자 200여명은 전날 저녁부터 위메프 본사로 찾아와 환불을 요구하기도 했다. 위메프는 피해자들에게 결제자 이름과 연락처, 예약 번호, 상품명, 환불요청 수량, 예금주 이름과 계좌번호를 종이에 적게 한 뒤 순차로 환불금을 입금하는 방식으로 현장 환불을 진행했다.
위메프는 현장 접수된 700건 환불을 진행했고, 티몬 환불 요청 68건도 티몬 측에 전달했다. 위메프는 본사로 고객이 계속 찾아오자 안전을 우려해 오전 10시30분 이후 도착자에 대해서는 현장 환불을 진행하지 않고 QR코드를 통한 온라인 접수를 안내했다.
상황이 이렇자 류화현 위메프 공동대표는 25일 오전 위메프 본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환불 완수'를 약속했지만, 수많은 중소 판매자(셀러)의 자금 경색 위험도 커지는 실정이다. 류화현 위메프 공동대표는 "소비자 구제가 1순위고, 영세 소상공인은 2순위로 소비자 피해를 최우선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후 소상공인 및 영세 소상공인 대응을 하려고 한다"며 "위메프 단독으로 자본 확충하는 건 여러 가지로 한계가 있어 큐텐·위메프·티몬 다 합쳐서 그룹사 전체가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거액의 판매대금을 물린 소상공인이 적지 않아중소 판매자들이 줄도산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티모과 위메프에 입점한 판매사들은 6만곳으로 파악되는데 이중 대다수는 중소판매사다. 이들은 대금 정상이 제때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자금난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류 대표에 따르면 정산 지연금은 400억원, 티몬 미정산 금액은 파악되지도 않고 있다. 그러나 이날 금융감독원이 브리핑을 통해 발표한 미정산 금액은 1700억원 규모. 더군다나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소비자 보호 강화에 나서도 피해 발생 시 마땅한 제재·감독 수단은 없다. 연쇄 도산이 현실화될 경우 금융권도 피해도 불가피하다.
■'승자의 저주'에 빠진 큐텐
이번 '티메프 사태'의 시작은 두달 전부터 예견된 것으로 전해진다. 티몬과 위메프의 정상시스템은 각각 두달과 석달이 지나야 통장에 현금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미 큐테글로벌에서 정산 지연 이상 기류가 감지되면서 티몬과 위메프로 이어졌다는 말들도 나온다. 이 때문에 관련업계에서는 구영배 큐텐 그룹 대표의 문어발 인수가 불러온 '저주'란 시각이 우세하다.
구 대표는 1세대 이커머스인 지마켓(G마켓) 초기 모델을 성공적으로 일군 주인공으로, 2009년 G마켓 매각 후 이듬해 싱가포르에서 큐텐을 설립했다. 동남아 시장에서 경영보폭을 넓히다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2019년. 큐텐의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 한국 법인을 설립했고, 2022년 티몬과 인터파크에 이어 이듬해 위메프를, 올해는 AK몰와 미국 이커머스 플랫폼 위시까지 잇따라 인수하며 단숨에 국내 이커머스 시장 4위에 올랐다.
그러나 충분한 자본력 없이 주식교환 형태로 다수의 플랫폼을 인수하는 방식이 독이 되어 돌아왔다. 큐텐이 인수한 회사들은 '자본잠식' 상태로 재무상태가 열악했단 점도 이번 사태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다. 2022년 기준 티몬의 유동부채는 7193억원으로, 유동자산 1309억원의 5배가 넘었고 올해는 감사보고서도 내지 못했다. 위메프 역시 지난해 영업손실이 1025억원으로 1년 사이 84% 증가했다.
이커머스업계 한 관계자는 "한 회사의 부실을 다른 회사로 메꾸는 '돌려막기'로 유동성 문제를 해결했는데 연쇄적으로 문제가 터진 것"이라며 "구 대표 사재를 터는 것 외엔 해결책이 없어 보이는데 그마저도 미정산금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어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역시) 사태의 장기화를 두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