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티몬·위메프 정산 및 환불 지연 사태' 관련 긴급 현안질의에서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티메프 사태' 발생 이후 구영배 큐텐 대표가 공식 석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1조원에 가까운 대규모 피해액에도 뚜렷한 수습책은 없었다. 더욱이 티메프 정산 지연 사태가 터진 배경이 기형적 '경영방식'에서 비롯된 것이 드러났음에도, 구 대표는 제대로된 인식조차 못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키우고 있다.
30일 구영배 규텐그룹 대표는 국회 정무위원회의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 현안 질의에 출석했다. '티메프 사태' 이후 첫 공식석상에 나서는 것으로, 류광진 티몬·류화현 위메프 대표 등도 참석했다. 이날 정무위의 현안질의는 피해액 발생 원인을 짚는데 집중됐다. 의원들은 판매자들의 판매대금을 활용한 인수합병을 원인으로 지목, '횡령'이라 비난했지만 구 대표는 잘못된 방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구 대표는 "실제 현금으로는 400억원을 지불했는데 일시적으로 티몬, 위메프를 동원했으나 한달내 상환했다"며 "한달내 상환했기에 이번 사태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판매 대금으로 인수한 '위시', 대표 3인 모두 몰랐던 재무구조
문제는 구 대표가 부실한 기업을 인수하면서 들인 돈이 '0원'이었다는 점이었다. 실제 큐텐그룹은 지난 4월 미국의 이커머스 위시를 약 2300억원에 사들였다. 당시 당시 큐텐이 현금으로 지불한 금액은 단 400억원. 이마저도 티몬과 위메프를 동원했다. 이번 질의에서 구 대표는 위시 인수 후 위시 유보금으로 400억원을 상환했다고 실토했다. 즉, 자본잠식 상태인 부실한 이커머스업체들을 사들이는데 ▲인수 전에는 판매자들의 미정산 대금을 일시 사용한 뒤 ▲인수 후 회사 유보금을 사용해 돈을 갚았던 것이다.
티몬과 위메프 인수 당시 양사 모두 자본잠식에 손실만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구 대표는 같은 방식을 취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방식이 가능했던 것은 큐텐그룹은 기업 인수 후 재무 관리 팀을 그룹에 모두 흡수, 산하 계열사인 '큐텐테크'에서 통합 운영했기 때문이다.
류광진 티몬 대표는 "티몬은 재무조직이 없다. 마케팅과 판매조직만 있어 재무상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며 "(자본 흐름 역시) 공유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의원들은 "영업손실이 컸는데도 새로운 회사를 샀다. 판매대금을 가지고 돌려막기 했다"며 "사재출현 지분 매각 수습하겠단 몇시간 만에 기업회생 신청했다. 시간끌기 아니냐는 의혹이 든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이번 정무위 현안질의를 통해 드러난 사업가 '구영배'의 비정상적 경영철학이다. 구 대표는 '티메프 사태'가 전국민적 공분을 사는 사건으로 번지고 있음에도, '책임 경영'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왜곡되어 있음을 여실이 드러냈다. 구 대표는 "새로운 비지니스를 하는 와중에 신규 사업자가 사기 내기 이상한 의도를 가지고 행동한 것이란 생각을 거둬달라"며 도리어 억울함을 호소했다.
구 대표는 "국내 이커머스는 격화되고 있어 한정된 시장구조상 한국이커머스는 확장될 수 없다. 글로벌로 나아가는 것이 판매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며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한 구조조정과 합병,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내고, 관심있는 자들은 주주로 전환하는 등 수습을 위해 노력하겠다.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한 오픈마켓 선구자 구영배
이번 사태 원인에 대해서도 '이커머스업계의 과도한 출혈경쟁' 때문이란 태도를 유지했다. 정무위 의원들이 '티메프 사태'가 판매대금 '돌려막기'에 따른 무리한 인수 때문이라고 지적하자, 구 대표는 "공격적인 마케팅이 문제다. (판매지연금) 대부분은 치열한 가격경쟁으로 인해 프로모션으로 사용이 많이 됐다"며 강조했다.
티몬이 지난 7월 진행한 할인 프로모션 역시 '고객 돈 미리 끌어다 쓰기'란 비판을 면치 못했다. 티몬은 지난 6월과 7월9일 각각 '티몬케시' 10% 할인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의원들은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자 이벤트를 통해 급하게 현금을 동원하기 위한 '꼼수'였다고 봤다. 실제 정무위에 따르면 티몬은 당시 고객당 200만원의 티몬캐시를 180만원에 판매, 현금을 일시적으로 늘렸다.
이에 대해 의원들은 "자본 잠식 된 상황에서 자본 확충 방법이 없으니 할인률을 확대한 상품권 판매로 돈을 메우려고 했던 것"이었다고 비난하자, 구 대표는 "상품권에 대해선 구체적인 상황을 잘 몰랐다. 재무 현황도 몰라 재정상황에 대해선 인식하지 못했다"고 했다.
금융당국 조차 티몬과 위메프의 관리감독이 쉽지 않았음을 토로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구영배 대표가) 양치기 소년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며 "미상환 및 미정산 금액과 신규 유입 자금 일부를 별도 관리해달라고 건건이 요청했으나 그때마다 '알겠다'고 하고 이뤄지지 않아 관리감독을 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 대표는) 자금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미 추적 과정에서 불법의 행위가 발견,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며 "20여명 가까운 인력 동원해 검찰에 수사인력도 파견해뒀으며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이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구영배 "돈이 없다"…신기루된 이커머스, 법적 조치 강화되나?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원들은 구 대표가 '양치기 소년'이라고 질타했다. 금융당국이 파악한 5월 기준 '티메프' 미정산 금액은 약 2133억원. 여기에 할인 행사 등으로 매출이 대폭 늘었던 6~7월 미정산 추정액까지 합치면 피해액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구 대표는 29일 오전 큐텐 지분 매각 및 담보를 통해 사태를 수습하겠다 했으나 같은 날 오후 돌연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이에 따라 미정산액이 사실상 지급 정지됐다.
더군다나 구 대표는 큐텐 계열사인 인터파크커머스와 AK몰에서도 정산 지연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구 대표에게 "AK몰 내부 직원들의 전원에 의하면 AK몰도 정산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인터파크커머스, AK몰은 이런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느냐"고 질문하자 구 대표는 "그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구 대표는 정무위 질의 내내 '기업 정상화'를 자신했지만, 업계는 구 대표의 큐텐 지분가치가 '허상'인 것으로 보고 있다. 2023년 주당 5만원대 중반에 거래된 큐텐 이력을 바탕으로 구 대표 지분 가치는 2조원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날 의원들은 시장 신뢰를 읽어 큐텐 지분 가치는 가치가 '휴짓조각'에 그칠 뿐 아니라 재평가할 자산도 없다고 판단했다.
실제 현재 큐텐은 누적 손실이 4000억원을 초과해 원매자가 나설지 알수 없는데다 구 대표의 사재는 500억원 안팎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 대표는 "큐텐그룹에 최대 여력이 800억원 있다. 바로 정산자금으로 사용할 수 없지만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이커머스의 법적 조치가 강화될 것인지도 주목된다. 의원들은 '티메프 사태'의 본질은 대금결제 기한이 긴 이커머스업계 구조적 생리에서 발생한 것으로 판단, 15일까지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티몬과 위메프에서는 입점 판매자에 대한 가맹점 대금 정산에 약 2개월이 소요된다. 결과적으로 결제 대금이 가맹점으로 이동하는 정산 주기와 가맹점이 판매자에게 판매 대금을 정산해주는 기간의 차이가 이번 이슈의 주 원인이 됐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판매대금이 무리한 인수 확장 및 물류회사의 나스닥 상장과 내부 경영자금으로 유용된만큼 원천적으로 차단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정산 주기와 관련해서는 당사자 간의 계약을 통해 정하도록 명시하는 자율 규제 내용을 추진했다"면서도 "정산대금 유용 문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제도적 미비에 대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