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주식시장(The Squid Game Stock Market)’.

최근 미국의 한 자산운용사 임원이 미국 주식 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한국 개인 투자자들을 꼬집으며 이렇게 빗댔습니다. 기업 본연의 가치와 무관하게 시가총액 작은 기업들이 주가 급등락을 보이는 배경에는 마치 주식을 ‘밈’처럼 매매하는 ‘서학개미’들이 있다는 것이죠.

인정하기는 싫지만 특정 기업 주식의 3분의 1을 한국 투자자들이 보유 중이라는 통계와 하루하루 커져가는 이들 기업에 대한 매수 규모를 보면서 딱잡아 반박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 모든 책임을 개인들이 뒤집어쓰기엔 억울한 면도 많습니다.

최근 양자컴퓨터가 화두로 떠오르자 지난 11일 삼성액티브자산운용과 KB자산운용, 신한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까지 총 4개 운용사는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를 동시 상장시켰습니다.

유엔(UN)에서 올해를 양자기술의 해로 지정한 것을 시작으로 양자기술에 대한 투자 시장 관심도가 높아진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주가가 출렁일 정도로 여전히 갑론을박이 있는 분야임에도 4개사가 줄상장하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단순히 투자자들에게 좋은 상품을 공급하는 것이 진짜 목적인 지 의문이 듭니다.

포트폴리오를 보면 더 의아합니다. 디웨이브퀀텀, 리게티컴퓨팅, 아이온큐, 리케티컴퓨팅, 퀀텀컴퓨팅 등 상품들간 비중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상 대동소이합니다. ETF 시장에서 끊임없이 지적돼온 베끼기 논란은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아무도 이런 현실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난주 한 자산운용사는 상장 일주일 수익률을 놓고 ‘양자ETF대전의 승자’라며 낯 뜨거운 홍보까지 했습니다. 과거 공모펀드가 활황기를 구가하던 시절 운용사들은 장기투자와 적립식 투자를 필두로 한 투자 문화를 선도하는 한 축이었죠. 그런데 대체 언제부터 고작 일주일 성과가 운용사들에게 자랑꺼리가 된 것일까요.

“포트폴리오를 위한 고민과 연구. 지금 운용업계 현실에선 솔직히 사치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시장을 선점하고, 1%라도 더 수익률을 높이고, 1bp라도 수수료를 더 싸게 만드는 것이 최대 과제입니다. 어쩌면 운용사들이 더 치열한 오징어게임판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죠.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한 자산운용사 ETF 임원의 말입니다.

인간의 탐욕, 그리고 그 탐욕을 이용하려는 또 다른 탐욕이 맞물렸을 때 모두가 비극으로 향한다는 오징어게임의 결말. 과연 지금 자본시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오징어게임은 다른 결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지켜보는 시선이 왠지 불안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