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5일 제1차 금융개혁회의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됐다. 금융개혁회의는 금융개혁방안을 심의하는 민간 기구로, 금융·경제·산업·학계 등 각계 전문가 19명으로 구성됐다. 이날 민상기 서울대 명예교수(앞줄 가운데)가 의장으로 선임됐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앞줄 왼쪽 네번째)이 그 옆에 자리했다.(자료=금융위원회)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한 가전업체가 광고에 사용했던 이 슬로건은 우리나라 광고사에 남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누구나 경험과 직관을 통해 이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 이전에 경영자와 임직원은 수 많은 고민과 검토, 논의를 거듭한다. 그렇게 결행한 신사업 투자, 인수합병(M&A) 등 경영 판단은 10년 후 기업을 바꿔놓는다. 뷰어스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기업들이 지난 10년 전 내렸던 판단이 현재 어떤 성과로 이어졌는지 추적하고 아울러 앞으로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짚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10여년 전인 2015년 3월 25일. 아침 이른 시각부터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일군의 무리가 속속 모여들었다. 박근혜 정부 첫 금융개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19명의 인사 중에는 스타트업, 벤처기업, 중소기업, 대기업 등 산업계 인사도 4명이나 있었다. 금융 관련 회의에 산업계 인사가 참여한 것은 매우 드문 사례다. 아니,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기업을 대표해 참석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은 “수많은 외부 모임이 있지만 금융위에선 전화를 처음 받았다”며 “즐거운 마음으로 회의에 참석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송재희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역시 “금융당국 협의체 중에서 우리 측에 연락이 온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앞으로 펼쳐질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금융위원회는 왜 정부 수립 이래 최초로 산업계와 함께 금융개혁을 도모했을까. 2015년 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
■ 금융개혁에 재계도 동참, 왜?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선 당시 시대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혁신 기술들이 등장하면서 세계 각국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는 ‘창조경제’ 네 글자로 요약된다. 주요 키워드는 창의, 융합, 혁신. 전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 방송통신위원회, 지식경제부, 행정안전부의 기능을 모아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고 콘트롤타워로 삼았다. 기획재정부 다음으로 서열이 높은 공룡 부처였다.
핵심 국정과제가 ‘창조경제’로 설정된 만큼 미래부를 포함한 모든 부처는 관련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블록체인, 핀테크 등과 연결된 금융위원회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신제윤 초대 금융위원장은 이를 ‘미래창조 금융’이라고 명명했다. 지식과 기술을 창조하는 활동은 높은 수준의 리스크가 수반되므로 양적·보편적 자금공급에서 탈피해 혁신 기술 분야에 선도적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코넥스 신설 등 자본시장을 통한 모험자본 공급도 활성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미래부뿐만 아니라 복지부, 국토부, 해수부, 중기청 등과의 협업도 공식화했다.
‘창조경제’라는 단어에는 기존의 틀을 깨는, 파괴적 혁신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이를 이끌어야 할 정부 부처들 역시 모범을 보여야 했다. 기존의 벽을 허물고 창의적 발상과 융합적 사고로 빅테크와 연계한 혁신적 정책을 수립하려 애썼다. 부처의 변화된 모습을 대통령에게 어필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는 새해 업무보고였다. 2015년 1월 15일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중소기업청 등 5개 부처는 과거와 달리 합동으로 업무보고에 나섰다. 5개 기관이 하나의 보고 자료를 만들기 위해 수십 차례 회의를 거치며 융합을 실천한 것이다.
2015년 1월 청와대에서 열린 5개 부처 합동 업무보고 자리. 박근혜 대통령을 기준으로 오른쪽편 둘째줄 두번째 좌석에 이승건 대표의 뒷모습이 보인다.(자료=나라경제)
혁신적 업무보고의 최대 수혜자는 토스의 이승건 대표였다. 부처 업무보고가 끝난 뒤 민관 합동의 주제 토론회가 이어졌는데 이 대표는 핀테크 스타트업 대표 자격으로 참여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3분의 발언 기회를 살리기 위해 그는 유례없이 강하고 빠른 어조로 열변을 토했다. 금융당국의 과도한 제재, 기존 금융기관들의 냉대, 알리페이에 버금가는 정부 지원 필요성 등의 내용을 듣고 난 뒤 박 대통령은 신제윤 금융위원장에게 “이번에 확 바뀌지 않으면 금융산업에 미래가 없다는 위기감, 절박감을 갖고 금융위가 노력해 달라”고 강하게 주문했다. 덕분에 토스 서비스는 금융위 인가를 받아 정식 출시됐고, 기업은행을 필두로 은행들은 속속 토스에 펌뱅킹망을 열어줬다. 이 3분의 시간이 없었다면 현재의 토스는 존재 자체가 없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그날 혁신적 업무보고 덕분에 토스가 살았다
대통령의 강력한 주문에 따라 약 보름 뒤에는 ‘2015 범금융 대토론회’가 열렸다. 금융위·금감원이 후원하고 6개 금융협회가 공동 주최한 이 행사에는 이승건 대표를 비롯한 금융계 인사 108명이 참석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자리에 당시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도 민간 금융회사 대표 자격으로 참여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동안 금융권에 회자됐던 “금융규제 완화를 절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절절포’ 발언이 이때 나왔다. 당시 친정인 금융당국에 전한 돌직구 한 구절.
“금융감독의 핵심 요체는 일관성이다. 이쪽 국에서 구두지시를 받아 이행하고 나면 저쪽 국에서 왜 그런 일을 했냐고 검사를 진행한다. 불신이 쌓일 수밖에 없다.”
임종룡 회장과 신제윤 위원장은 행정고시(24회) 동기이자 일생에 걸친 라이벌이었다. 행시 수석은 신 위원장이 차지했지만 연수원 수석은 임 회장이 가져갔다. 금융정책과장과 기획재정부 차관은 임 회장이 먼저 올랐지만 금융위원장 자리는 신 위원장이 먼저 차지했다.
임 회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장관직(국무총리실장)까지 올랐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했다. 관직을 떠나 민간에서도 선배 관료에 밀려 농협금융에 어렵사리 둥지를 틀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옥상옥’ 농협중앙회장과의 고질적인 갈등 문제로 당시에는 엘리트 관료들이 기피하던 자리다. 하지만 임 회장은 특유의 온화한 리더십으로 빠른 시간에 조직을 안정시켰고 우리투자증권 인수까지 성사시키며 민간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했다. 그리고 라이벌 동기가 개최한 대토론회에 나가 1년 7개월 간 겪었던 금융감독 현장 체험을 생생히 증언한 것이다.
당시 임 위원장의 쓴소리를 토론회 현장에서 받아적고 후속조치를 처리한 이가 권대영 금융정책과장(현 금융위 사무처장)이다. 이때만 해도 권 과장은 불과 보름 뒤 임 회장을 금융위원장으로 모시게 될 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테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흘러갔다. 박 대통령은 그해 2월 17일 4개 부처 장관급 인사를 단행하면서 신제윤 위원장의 후임으로 임종룡 회장을 지목했다.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2015년 2월 3일 서울 예금보험공사 대강당에서 '대한민국 금융의 길을 묻다' 라는 주제로 범금융 대토론회가 열렸다. 6개 금융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금융위·금감원이 후원한 행사에 각 금융협회장과 주요 금융사 대표, 금융이용자 및 전문가 등 총 108명이 참석해 세미나와 토론을 벌였다. 사진은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행사장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자료=금융위원회)
2015년 2월 3일 서울 예금보험공사 대강당에서 '대한민국 금융의 길을 묻다' 라는 주제로 범금융 대토론회가 열렸다. 6개 금융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금융위·금감원이 후원한 행사에 각 금융협회장과 주요 금융사 대표, 금융이용자 및 전문가 등 총 108명이 참석해 세미나와 토론을 벌였다. 행시 동기인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임종룡 NH농협금융 회장이 왼쪽에 함께 자리해 있다.(자료=금융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