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와 탄식. 누군가의 희열은 다른 이에겐 좌절이었다. 단숨에 자기자본 6조원대 압도적 1위 증권사 탄생 앞에 박현주 승리, 김남구 패배라는 평가는 너무나 명확했다. 그로부터 10년, 벌어질 것 같던 두 회사의 격차는 짜릿하리만큼 좁혀졌다. 연결기준이냐, 별도기준이냐에 따라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자기자본 1위 타이틀은 뺏고 빼앗긴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패자의 역전극인 셈. 불가능해보였던 추격전, 10년간 두 오너는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뛰어온걸까.


#1. 반토막난 부동산, 고개 숙인 미래에셋

2022년. 코로나19 이후 급변한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금리 상승이 미친 충격은 금융시장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앞서 부동산 호황기를 틈타 너도나도 뛰어들었던 만큼 국내 증권사들의 우발 채무는 20조원대를 넘어서며 빨간불이 켜졌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충격을 피해가지 못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해외 대체투자의 선구자로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온 만큼 그 범위와 규모는 상당했다. 미래에셋증권의 자본 대비 해외투자 비중은 업권 평균(20%)을 두 배 이상 웃돈다. 시장 곳곳에서 부동산발 리스크가 향후 수년간 미래에셋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23년 한해동안 미래에셋자산운용을 통해 운용된 해외부동산 투자자산에서 발생한 순손실만 5300억원대.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GFGC)와 프랑스 마중가타워는 사실상 전액 상각과 1000억원대 자산가치 하락을 맛봤다. 보유 중이던 투자자산의 평가손실 여파로 전체 순이익은 반토막났다. 2023년말 미래에셋증권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96%까지 떨어지며 국내 대형사 가운데에도 꼴찌라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지속되는 리스크에 2024년 국제신용평가사 S&P글로벌은 미래에셋증권에 대한 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결국 그해 3월 주주총회에서 김미섭 미래에셋증권 부회장은 “주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경영 실적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숨을 곳은 없었다. 다만 퇴직연금 시장으로 유입되는 뭉칫돈은 위안이었다. 미래에셋은 국내 퇴직연금 시장이 태동기에 불과했던 2000년대부터 네트워크 확대와 경쟁력 제고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당장 ‘돈이 안 되는 부서’였지만 박 회장은 고령화 사회 연금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상품 개발과 시스템 마련에 전폭적 지원을 쏟았다. 2010년 업계 최초로 글로벌 자산배분 퇴직연금랩을 출시했던 미래에셋증권의 연금자산은 현재 30조원을 넘어서며 전체 사업자 중 5위권에 첫 진입했다. 실물이전제도 시행 후 자금 유입세는 더욱 빨라지며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 등 경쟁사들의 치열한 추격에도 미래에셋은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또한 미래에셋은 2017년말 글로벌브로커리지(GBK) 추진본부를 신설하면서 다양한 자산으로 분산 투자를 유도했던 덕에 2020년대를 전후로 빨라진 해외주식 시장 성장의 수혜도 만끽 중이다.

#2. '무기'가 된 개인고객자산...'역대급 실적' 반전

금리인상 후폭풍에 따른 충격은 한국투자증권도 상당했다. 특히 PF 담당 임원에게 전권이 주어지다시피했을 정도로 한투증권의 공격적 PF 투자는 업계서도 유명했다. 시장에 먹구름이 끼면서 어제까지 실적이었던 숫자는 고스란히 우발채무로 뒤바뀐다. 후순위 부동산PF 익스포저가 높았던 만큼 채워가야 할 구멍도 많았다. 2023년 PF·인수합병(M&A) 관련 순영업손실이 1728억원에 달하며 실적에 직격탄을 안겼다.

반전의 기회는 해외에 있었다. 2015년 자산관리 패러다임 전환 이후 차곡차곡 쌓아온 개인고객 금융상품 잔고는 어느새 50조원을 넘어서며 매달 1조원 이상의 신규 자금이 유입되는 구조로 다져져 있었다. 한국투자증권은 풍부한 자산을 무기 삼아 해외로 나갔다.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로 자금줄이 마른 것은 해외 역시 동일하다는 역발상으로 기회를 찾은 것이다. 리테일 시장 확대 전략을 구축하기 시작했던 칼라일 등 글로벌 사모펀드(PE) 운용사들과 상품 경쟁력 확대가 필요한 한국투자증권의 니즈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이들에게 새로운 파트너로 떠오른 한투증권은 지난해 글로벌 투자 월지급식 펀드로 판매한 규모만 1조6000억원 가량에 달한다. 최근에는 분배금을 외화로 지급하는 월지급식 공모펀드를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방향은 명확합니다. 미국의 억만장자들, 일론 머스크가 투자하는 상품을 한투 고객도 투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죠.”

현재 개인고객 금융상품 잔고는 현재 70조원을 넘기며 경쟁사들과 격차를 더 벌리는 중이다. WM부문이 버팀목 역할을 하는 사이 IB부문도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한국투자증권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조1189억원. 여지없는 1위다.

조만간 종합투자계좌(IMA) 사업 진출이 현실화되면 한국투자증권은 가장 먼저 진출해 현재 소진된 발행어음 잔고를 늘리고 PF와 인수금융에 적극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3. 아시아 최고 IB 향한 '마라톤'

박현주와 김남구. 두 오너는 성장 배경부터 경영 스타일, 자본활용법 등 모든 것이 다르다. 공통점이 있다면 ‘아시아 최고의 IB’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긴 호흡으로 뛰고 있다는 것. 국내 비슷한 체격의 증권사들의 수익구조와 경영전략을 상기해본다면 이들이 이끄는 조직의 추진력과 장기 전략의 방향성은 독보적이고 명확하다.

미래에셋증권은 그간 이어온 해외 시장에서의 성과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해외 법인에서 1661억원의 세전이익을 거둔 미래에셋증권은 오는 2027년 5000억원 이상 이익 창출을 목표로 한다.

창업 1세대가 물러난 뒤 시작된 김미섭, 허선호, 이정호 부회장의 트라이앵글 체제는 2년차를 맞아 한층 견고해졌다. 특히 미래에셋증권의 자본 중 37%가 해외법인에 실려 있는 만큼 이 부회장이 글로벌 사업 확장의 수장으로서 어떤 성과를 내놓을지에 대한 관심도 높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또 한번의 글로벌 비즈니스 확장을 준비 중이다. 한국금융지주와 한국투자증권을 연계한 글로벌 사업그룹 조직을 촘촘히 짜고 비즈니스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김 회장은 2030년 4조원 순이익 달성을 목표로 제시하며 이중 30%를 해외 부문에서 거둔다는 계획이다.

역시 취임 2년차를 맞은 김성환 사장은 업계 최고 직원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하겠다던 약속을 취임 1년 만에 현실화했다. 균형잡힌 수익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1위 증권사로서 경쟁력을 강화해 매년 퀀텀점프를 이뤄내겠다는 김 사장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과연 이 두 회사 중 아시아 넘버원 타이틀을 먼저 거머쥐는 곳은 어느 곳일까. 분명한 것은 두 오너가 그려갈 앞으로의 10년이 지금까지 국내 금융투자시장에서 한번도 일어난 적 없는 또 다른 역사일 것이란 점이다. 무엇보다도 어느 한쪽으로 과하게 기울지 않는 두 회사 간의 무게 중심은 또다른 견제 효과를 내며 남다른 기대감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