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신한투자증권


6차까지 진행된 보험개혁회의가 마무리 수순이다. 금융당국은 마지막 7차 회의에서 미래 대비 방안을 논의한 후 상시개혁 체제로 전환할 방침이다. 그 동안 수많은 이슈가 쏟아져 나왔지만 사실 담당기자 본인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이가 이 정도인데 생업에 바쁜 소비자나 투자자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지난해 9월 진행한 [보험개혁 Why] 시리즈에 이어 [보험개혁 How] 시리즈를 통해 그 간극을 좁혀본다. -편집자 주-

보험개혁회의가 지난해 5월 출범한 데에는 새로운 회계제도(IFRS17) 시행에 따른 혼란도 큰 영향을 끼쳤다. 2023년 시행된 IFRS17은 최적의 계리가정을 기반으로 보험부채를 원가(취득가격)가 아닌 시가(공정가치)로 평가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보험회사의 수익성을 판별하는 핵심 지표로 보험계약마진(CSM)이 새롭게 부각됐다. 이에 회사 경영진은 IFRS17 체제에서 CSM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불철주야 골몰했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보장성 보험상품 계약을 늘려야 한다’로 모아졌다. 문제는 원금 보장이 어려운 보장성 상품 가입자를 단기간에 늘리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 하지만 궁하면 통한다. 보험사들은 하이브리드형 상품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바로 ‘단기납 종신보험’이다. 사망을 종신으로 보장하니 저축성 상품이 아니라 보장성 상품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종신보험과 달리 납입기간이 훨씬 짧다. 만기 환급액도 크다. 중도 해지만 하지 않으면 원금보장에 짭짤한 이자까지 기대할 수 있다. 저축성 상품 부럽지 않은 보장성 상품을 출시해 신규 계약을 대거 유치한 것이다.

주변에 입소문이 나면서 보험사 간 경쟁이 치열해졌다. 만기환급률이 130%를 돌파하는 등 단기납종신 과당 경쟁이 벌어진다. 일시적 판매, 한정 판매 등 절판 마케팅이 기승을 부렸다. 신계약 확보 과정뿐만 아니라 확보 후에도 문제는 이어졌다. 사실상 저축성 상품이어서 해약률을 ‘무해지 상품(해지환급금이 없는 대신 보험료가 싸다)’ 수준으로 낮게 가져가야 했다. 하지만 일부 보험사는 표준형 상품보다도 더 높게 회계 처리했다. 해약률을 높게 가정하면 보험계약의 기대이익, 즉 CSM이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수익성을 돋보이기 위해 IFRS17의 신뢰 베이스인 ‘최적의 계리가정’을 편법적으로 훼손한 것이다.

■ 신회계제도 시행에 수익성 돋보이려 편법 동원

소비자와 투자자들은 보험사의 회계 처리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손해율, 해지율, 할인율 등 계리가정은 회사마다 알아서 결정하는 내부 자율 사항이다. 공개 의무가 없어서다. 보험사가 ‘CSM이 1조원이다’라고 발표하면 그저 그런가보다 믿을 수밖에 없다. 이는 ‘고무줄 회계’, ‘깜깜이 회계’ 등으로 이어졌다. 보험사의 회계 처리를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IFRS17 시행 첫 해 땜질식 처방에 급급하던 금융당국은 ‘신뢰 회복’을 위한 근본적 수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보험개혁회의의 5개 실무반에 ‘신회계제도반’이 포함된 이유다.

다만 IFRS17 신뢰성 제고 방안은 빠르게 나오지 않았다. 자칫 설익은 대책이 나올 경우 신뢰 회복은커녕 더 깊은 불신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당국은 미리 진행한 이슈스터디 내용을 바탕으로 보험회사 결산 담당자, 외부감사인, 애널리스트, 신용평가사 등 시장과 소통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열린 제4차 보험개혁회의에서 최종 방안을 내놨다.

여러 내용이 담겼지만 관심의 초점은 ‘계리가정 가이드라인’으로 모아졌다.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은 ‘로그-선형(log-linear) 모형’을 원칙으로 제시했다.(전문용어라 어려울 수 있지만 몰라도 맥락 이해에는 지장이 없으니 일단 넘어가자!) 만일 보험사가 원칙모형이 아닌 다른 모형을 회계에 적용하려면 상세 비교 공시, 금감원 정기 보고 등 까다로운 요건을 수행토록 했다. 다음으로 단기납 종신보험의 보너스 지급 시점 해지율은 ‘최소 30% 이상’으로 설정됐다. 보험사의 보너스 지급 시점에 소비자는 계약을 해지할 가능성이 큰 데 이를 의도적으로 반영하지 않는 보험사의 행태에 메스를 가한 것이다. 끝으로 보험부채 손해율을 가정할 때 기간과 담보뿐만 아니라 계약자 연령도 반영토록 했다. 발표된 가이드라인의 적용 시점은 ‘2024년 연말 결산’으로 정했다. IFRS17 시행 첫해인 2023년 결산의 경우 보험사들마다 자의적 가정을 적용해 ‘고무줄 회계’ 논란이 있었지만 2024년 결산부터는 당국의 가이드라인 적용으로 회사별 실적을 비교·분석할 수 있게 됐다.

■ 끝도 없는 신뢰 추락...'계리가정 가이드라인' 메스

시간이 흘러 지난 5일 KB금융지주를 시작으로 드디어 당국 가이드라인이 적용된 보험사들 실적이 속속 발표됐다. ‘수영장에 있던 물이 빠지면 누가 벌거벗었는지 알 수 있다’는 워렌 버핏의 말대로 2024년 실적발표를 통해 보험사의 ‘고무줄 회계’ 실태를 부분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손보업계 1위인 삼성화재의 경우 지난해 4분기 CSM 감소액이 8095억원에 달했다. 전년도와 비교하면 감소폭이 급격히 증가했다. 경상적인 해지 조정을 뺀 계리가정 변경에 따른 조정액만 약 5000억원으로, 무·저해지 가이드라인 변경액이 1700억원, 해지율 및 손해율 조정액이 3300억원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CSM 대규모 조정으로 4분기 순이익은 2000억원을 겨우 넘겼다. 이는 시장의 낮아진 컨센서스조차도 충족시키지 못한 수준이었다. 다만, 삼성화재는 1~3분기를 합한 연간 실적으로는 2조원 이상의 순익을 거둬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4분기 대규모 이익 조정에도 불구하고 큰 타격은 없었던 셈이다. 전체 매출 가운데 무·저해지 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특수 상황에 처해 있던 롯데손해보험의 경우 타격이 컸다. 지난해 순이익(272억원)이 전년 대비 91%나 감소했다. 3분기까지 844억원의 순익을 기록하다 4분기 무·저해지 계리가정 변경이 반영되면서 약 1000억원 규모의 이익조정이 발생해 직격탄을 맞았다. 문제는 이조차도 원칙모형(로그-선형)을 적용하지 않은 수치라는 것. 원칙모형을 적용할 경우 적자 전환 가능성이 있어 당국의 깐깐한 간섭을 감수하면서까지 ‘예외모형(선형-로그 또는 로그-로그)’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 수영장 물 빠지고 보니...

다른 보험사와 달리 롯데손해보험의 대주주는 사모펀드인 JKL파트너스다. 2017년 롯데그룹이 지주사로 전환하면서 금융계열사를 매물로 내놓아 2019년 인수했다.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사모펀드 특성상 구조조정 등 단기간에 매력적인 매물로 변모시켜 비싸게 되파는 것이 경영 목적이다. 바뀐 회계제도에서 매력적인 매물이 되기 위해선 CSM이 돋보여야 한다. CSM을 단기간에 올리는 데에는 단기납 종신보험 등 무·저해지 상품만한 게 없다. 롯데손해보험이 당국의 계리가정 가이드라인 때문에 큰 타격을 받은 배경이다.

JKL파트너스는 2023년 순익 3000억원 돌파 등 회계제도 변경에 맞춰 비교적 단기간에 롯데손해보험을 매력적인 매물로 변모시켰지만 불행히도 매각에는 실패했다. 지난해 상반기 진행된 입찰에서 유력 매수 후보였던 우리금융그룹이 발을 빼면서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ING생명 바이아웃 투자로 6년 만에 2조원 이상의 차익을 거둔 MBK파트너스를 롤모델로 삼았지만 실현 가능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당국의 보험개혁 추진 여파로 이익 체력에 의문이 제기됐고, 추가 자본확충 위험에 노출된 상태다. 금감원은 예외모형 적용 등으로 수시검사를 진행하는 중에 이례적으로 경영진 면담까지 진행했다. 지급여력(K-ICS) 비율 관리를 위해 추진된 1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발행도 돌연 중단된 상태다. 롯데손해보험 주가는 24일 종가 기준 1859원으로, JKL 매입가(주당 평균 3040원)의 61% 수준까지 떨어졌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많은 보험사들이 무·저해지 상품 판매에 열을 올렸지만 매각을 앞둔 롯데손보가 특히 심했다”며 “예쁜 포장지가 뜯겨나가고 내용물이 확인된 이상 가격을 크게 낮추지 않는 한 매수자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보험개혁회의 구조(자료=금융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