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스틸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도 허진호 감독이 다루니 달랐다. ‘천문’은 세종과 장영실의 애틋한 관계에 방점을 찍어 새로운 결의 역사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가끔 감정이 지나치게 담기면서 역효과를 초래한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는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한석규 분)과 장영실(최민식 분)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세종 24년 ‘안여 사건’(임금이 타는 가마 안여가 부서진 사건)이 일어난 이후 장영실은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춘다. 영화는 장영실이 역사에서 사라진 배경을 두고 영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새로운 팩션 영화를 탄생시켰다.
■ Strength(강점)
여느 역사 영화와 달리, ‘천문’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세종과 장영실이 쌓은 업적이 아닌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세종과 장영실의 첫 만남부터 시작하는 ‘천문’은 그들이 같은 꿈을 꾸며 의기투합 하는 과정을 차근차근 다뤄낸다. 그들의 감정과 관계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업적이나 결과물들은 자연스럽게 습득된다.
손재주고 좋고, 능력을 발휘해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내는 장영실은 순수하게 일에만 몰두하는 아이 같은 성격을 가졌다. 세종 또한 대신들과 골치 아픈 권력 다툼을 할 때는 매섭지만, 자신이 꿈꾸던 일을 실천할 때만큼은 천진난만하다.
특히 지나치게 순수해 엉뚱한 행동을 일삼는 장영실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다가도, 그가 완성한 발명품들을 재현하는 과정에서는 감탄이 나온다. ‘천문’은 이 과정에서 자격루나 간의 등 장영실의 발명품을 작동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담아내며 그들의 업적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그 어떤 작품보다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세종과 장영실을 마주하는 재미가 생생하다.
■ Weakness(약점)
그러나 그들의 애틋함이 지나치게 강조된 탓에 ‘천문’이 마치 멜로 영화처럼 느껴져 가끔 몰입을 방해한다. 그들이 후반부 갈등하고, 서로를 외면하는 반전적인 내용을 담기 위한 포석이겠지만, 그 과정을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묘사해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또한 극적인 사건 없이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너무 많은 공을 들여 흐름이 늘어지기도 한다.
조선만의 독자적인 시간을 만들려는 계획을 방해하는 명나라나 원리원칙만 강조하는 영의정(신구 분), 문무대신 정남손(김태우 분) 등 일부 대신들과의 갈등 등 서사를 풍부하게 만들기 위한 여러 요소들도 분명히 담겨 있었다.
그러나 분량 조절에 실패했다. 중반 이후에 접어들고 나서야 이 이야기들을 풀려고 하니 효과적이지가 않다. 한꺼번에 모든 갈등들을 담으려 하면서 소화 불량에 걸린 것 같은 느낌까지 준다.
사진=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스틸
초반부 잘 쌓은 감정마저 옅어진다. 세종과 그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를 뒤늦게 풀어내면서 세종과 장영실의 연결 고리가 점차 약해지고, 그들이 멀어지게 된 과정이 다소 압축된 것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서 갑작스러운 구멍이 생긴다.
감정의 연결을 놓치지 않은 한석규, 최민식의 열연 때문에 영화가 산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주인공들의 긴 서사를 효과적으로 담아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결국 완급 조절에 실패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이다. 두 천재의 내면에 집중한 새로운 시각은 빛났지만, 선택과 집중이 아쉬운 ‘천문’이다.
■ Opportunity(기회)
‘쉬리’ 이후 20년 만에 재회한 한석규, 최민식의 연기 호흡에 대한 기대가 뜨겁다.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들이 어떤 열연을 보여줄지 예비 관객들의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또한 한석규는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통해 한 차례 세종을 그려낸 바 있다. 세종을 깊이 있게 그려내 그해 SBS 연기대상까지 수상했었다. 그에 대한 신뢰감은 ‘천문’에게 장점이 되고 있다.
■ Threat(위협)
‘백두산’이 극장가를 장악 중이다. 역대급 스케일과 이병헌, 하정우, 배수지 등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백두산’이 극장가를 선점 중인 상황에서 ‘천문’의 개봉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