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서늘하다. 한 겨울이 배경이기도 하지만 연출 역시 절제의 미를 살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서늘함을 안고 간다. 그럼에도 극장을 나설 때 깊은 여운에 가슴 속 뜨거움이 느껴질 것이다.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한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70만부 이상 판매된 김훈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 한 ‘남한산성’은 원작과 역사의 무게를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겼다.
‘남한산성’은 치욕의 역사를 재조명했다. 청의 굴욕적인 제안을 화친과 척화로 나뉘어 첨예하게 맞선 두 신하 최명길(이병헌), 김상헌(김윤석)과 그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조(박해일)의 모습은 배경만 바뀌었을 뿐 380여년이 지난 현재와 다르지 않다.
150억원이 투입된 대작인만큼 ‘남한산성’은 고증을 토대로 병자호란 당시 배경을 철저하게 살려냈다. 올 로케이션으로 진행된 만큼 병자호란의 추위와 고통이 보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화려한 전투신도 볼거리를 선사한다.
그렇지만 ‘남한산성’의 가장 큰 백미는 말과 말의 전쟁인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이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김상헌과 최명길의 논쟁은 답이 없는 시험지와 같다. 인조 앞에서 치열하게 대립하지만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만은 같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 핑퐁처럼 이러지는 두 사람의 논쟁 속에 관객들도 인조와 함께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그 긴장감을 끌고 가는 것은 이병헌, 김윤석이다. 물과 불의 대결로 보이기도 하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연기톤은 최명길과 김상헌의 캐릭터를 극대화 시킨다. 굴욕의 인물인 인조를 연기한 박해일부터 민초의 상징인 서날쇠 고수, 이시백 박희순, 수많은 조연들까지 제역할을 확실히 해줬다.
고증을 통해 굴욕의 역사를 되살린 ‘남한산성’은 근래 보기 드문 정통사극이다. 재미를 위한 과장된 캐릭터도 없고 특유의 국뽕 감성도 없다. 유난히 길었던 당시의 겨울을 재현하며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무채색의 톤을 유지해간다. 마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노란 민들레가 주는 여운이 더 크게 다가온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도 ‘남한산성’ 특유의 분위기에 한 몫을 한다. 오는 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