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랑하는 사이(사진=JTBC 제공)
[뷰어스=이소연 기자] “다리 다쳤을 때보다 치료받을 때 아팠던 게 더 끔찍했어요. 이렇게 아플 바에야 차라리 잘라내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라도 없었어 봐요. 큰일 날 뻔했지. 그때 의사가 그랬어요. 망가진 데를 고치려면 망가뜨릴 때보다 더 큰 고통이 따른다고. 그래야 상처가 아문다고”
JTBC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이강두(이준호)는 이렇게 말한다. 서주원(이기우)이 “하문수(원진아)가 추모비 재건립을 마무리하게 해달라”는 자신의 말에 의아해 하자 건넨 말이다. 이는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인물들의 상처를 대하는 태도를 잘 보여준다.
여기에 나오는 세 사람은 모두 붕괴사고의 악몽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다. 다만 이강두와 하문수는 당시 그 현장에 있었다는 점이 다르다. 두 사람은 극적으로 살아남았고 가족을 잃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도 상실했다.
우리는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재정의하는 ‘피해자’의 범위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어떠한 재난이나 사고로 인해 누군가는 세상을 떠났고 누군가는 목숨을 부지했다면, 피해자는 과연 누구인가. 세상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과연 목숨을 잃은 당사자뿐일까. 이강두는 왜 추모비를 보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망치로 부쉈을까.
그냥 사랑하는 사이(사진=JTBC 제공)
이강두 다리에 남은 상처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트라우마의 늪이다. 그는 수술자국을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어한다. 다리가 욱신댈 때마다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에 아파한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에게 시비를 걸어 일부러 두들겨 맞는다. 그러면서도 또 사람을 잃을까 약장수 할머니(나문희)의 건강은 끔찍이 챙긴다.
한편으로는 사고 당시 다른 사람의 손을 뿌리치고 저 혼자 살고자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조금이라도 기분 좋은 감정을 느낄라 치면 죽은 이의 환영으로 인한 공포를 느낀다. 공사 현장에서 신발 하나만 발견돼도 정신이 반은 나간다. 이쯤 되면 이강두가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자기 자신을 막 다루는지 충분한 배경이 된다.
하문수는 겉으로는 강인해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자신과 또 다른 고통을 겪는 엄마를 위해 스스로를 억누르며 살아갈 뿐이다. 동생이 목숨을 잃었을 당시 “왜 너만 남았냐. 동생이랑 꼭 붙어 있으라 하지 않았냐”는 말에 충격을 받아 스스로 기억을 삭제할 정도니 말이다.
가끔 참지 못할 울분에 폭발하기도 하지만 그도 잠시, 다시 엄마에게 조심스레 다가가는 사람도 하문수다. 엄마가 술을 마신 채 목욕탕에서 잠수를 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곤 미친 듯이 불안해하며 화를 낸다. 또 폐쇄공포증으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해 16층 회의실을 계단으로 간다. 좋은 남자를 만나라는 친구의 말에는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사람을 만나지”라며 자조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사진=JTBC 제공)
이강두와 하문수는 마음 깊이 꽁꽁 숨겨둔 상처로 연결되어 있다. 이들의 언행은 죄책감, 공포, 불안 등 트라우마로 점철되어 있다. 그 끝에는 자기 자신을 버리는 일에 다다른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채고 보듬으며 위로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생존해서’다.
살아남은 자의 고통은 살아남은 자가 고스란히 책임지고 있는 현실이다. 생을 이어가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루하루 연명하는 날들의 연속이다. 하문수의 엄마가 등장할 때마다 늘 무기력하게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강두와 하문수가 “동생이 살아있었더라면 나도 축구선수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배우랑 사귈 수 있던 건데 아깝다”와 같은 농담이 어떤 심정으로부터 나왔을까. 상만(김강현)이 환영에 시달리는 이강두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해. 용서할 때까지 계속 해”라고 외치던 말은 주체가 누구인지, 누구에게 닿아야 맞는 건지 의문이 든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이를 간파했다. 진짜 힘들 때 차마 ‘힘들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작품은 ‘사건’에 집중하기보다 그로 인해 드러난 연한 속살을 단련하는데 힘을 쏟는다. 이강두와 하문수가 굳이 본인들 입으로 나약한 대사를 내뱉지 않아도 이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아려오는 이유다. 그렇게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이를 느끼고 공감하는 모든 이들을 부드러운 손길로, 그러나 깍듯하게 보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