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혁(사진=아도르따요 제공)
[뷰어스=김희윤 기자] “관객 분들에게는 조금씩이나마 성장해나가는 배우로 서고 싶어요. 스스로 항상 부족해보이거든요(웃음)”
오종혁이 2008년 뮤지컬로 데뷔하고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를 클릭비 출신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뮤지컬배우’라는 수식어가 생소할 수밖에 없다. 어느덧 11년차인 그는 차근차근 무대 경험을 쌓으며 연기자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있다.
■ 캐릭터를 고민하는 11년차 배우
오종혁은 2015년 초연 이후 3년 만에 다시 무대로 돌아온 뮤지컬 ‘무한동력’에 더블캐스트로 출연한다.
“‘무한동력’은 원작이 있고 초연을 거쳤던 작품이라 기대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만큼 부담됐죠. 하지만 인물의 설정 면에선 앞서 표현해왔던 걸 차용하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예전 것들을 답습하는 느낌이 들 것 같았죠. 초연 색깔을 그리워하는 분들은 성에 안찼을 지도 모르겠지만, 초반부터 꾸준히 장면수정을 거듭했더니 지금은 공연이 좀 더 뚜렷해졌어요. 앞으로 남은 공연에선 관객 분들한테 좀 더 좋은 작품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하죠”
그가 연기한 장선재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취업준비생이다. 장선재는 서울의 한 허름한 하숙집에 도착해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이웃들과 만난다.
“그동안 자극적인 작품들을 많이 해왔어요. 그러다보니 인물을 진하게 만들어야겠다는 강박이 있었죠. 이번에는 장선재라는 인물을 만났는데 너무 평범한 역할이었어요. 물론 이 친구는 자기 나름의 고민을 갖고 큰 벽에 부딪히는 인물이죠. 취업을 준비 중인 모든 젊은이들이 겪는 아픔을 연기로 보여줘야 하잖아요. 근데 주변 인물들은 더 불우하기도 하고, 장선재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다 보니 ‘이게 힘든 일인가’하고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됐죠”
그는 배역을 연기하기에 앞서 한 인물의 너무나도 평범한 고민들을 어떻게 극대화시켜야 할지 고심했다.
“연출님이 ‘뭘 하려하지 말고, 장선재만 표현하라’고 얘기해줬어요. 나머지는 그냥 다른 인물들한테 맡기라는 거였죠. 장선재는 혼자서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극중 다른 역할들이 만들어주는 환경에 빌어서 완성되는 캐릭터였던 거죠. 비워냈더니 쌓인다는 좋은 의미로 다가왔어요. 이걸 공연을 하면서 계속 찾아나갔죠. 실제로 채워지는 순간들도 경험하게 됐어요”
오종혁(사진=아도르따요 제공)
■ 작품에 대한 남다른 애정
그는 따뜻하지만 꾸며지지 않은 장선재를 연기해나가며 스스로의 모습과 비교해보기도 한다. 물론 연예인과 취업준비생의 삶은 다를지언정 ‘힘겨운 삶’이란 점에서 본질은 일치한다.
“누구나 자신의 힘든 점이 있잖아요. 장선재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도 많았죠. 회사 없이 힘들게 움직이던 시절엔 모든 벽이 갈수록 높아져만 간다고 느꼈어요. 그렇게 지쳐갈 즈음 만난 게 뮤지컬이죠. 인생의 고비에서 다시 뛸 수 있는 에너지를 찾은 느낌이었어요. 계속 하다 보니까 연기도 본질적으로 재밌어졌고, 더 잘해보고 싶은 욕심이 났죠”
그는 무대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오롯이 자신의 연기가 무대를 꽉 채우는 무아지경의 순간을 꼽는다.
“연기가 집중이 안 되고 산만하면 관객이 어떻게 보는지도 보여요. 반면 내가 뱉는 대사가 공연장을 다 채우는 느낌이 들면 그때가 가장 짜릿해지죠. 이명이 들리듯 주변이 고요해지고 깊어지는 순간이 있어요. 모든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고, 그 에너지를 관객들과 함께 느끼죠. 이럴 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해져요”
그는 타인을 연기함으로써 다른 삶을 살 수 있어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러나 관객들의 평가에 있어서만큼은 스스로에 대한 피드백보단 작품 자체에 더 큰 애정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관객 분들한테 이질감 없이 보이고 제대로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장선재라는 인물 혼자서 무대에 서는 게 아니라 여러 인물들이 함께 무대를 채우고, 또 관객 분들도 없으면 인물들도 살지 않죠. 궁극적으로 ‘무한동력’이란 뮤지컬이 가진 에너지가 관객 분들에게 오롯이 잘 전달됐으면 해요”
오종혁(사진=아도르따요 제공)
■ 겸손이 밥 먹여주다
“배우로서 키가 크지도 않고 잘생기지도 않은 것 같아요. 편안해 보인다고 생각하죠. 목소리가 작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또 가수출신이지만 노래를 잘 못하는 배우라고 생각하죠. 팬들도 불안해할 정도였어요. 이렇다할만 한 게 없는데도 좋게 봐주는 것 같아요”
오종혁의 인간미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는 과하게 겸손한 배우다. 작품을 고를 때도 스스로 잘 갖춰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제작 측에 먼저 물어보고 참여한다.
“보통 작품을 제작한 사람들의 의향이나 뜻에 따라 잡아도 되겠다 싶으면 그렇게 하는 편이에요. 물론 마음에 와 닿고 나 자신을 두드리는 대본도 있죠. 그럴 땐 주체적으로 선택해요”
그는 주변을 잘 살피면서도 스스로를 잘 채워간다. 은근한 노력파다. 빠른 캐릭터 습득력을 필두로 연기자의 길을 탄탄히 밟아나간다.
“‘홀연했던 사나이’ 땐 워낙 인물 자체가 에너지가 커서 버거웠죠. 마지막까지 동료배우들의 힘을 받으며 공연했던 것 같아요. 매순간 함께 공연하며 그들을 통해 배워나갔죠. 아마 선배나 동료 배우들 없이 혼자였다면 지쳐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그는 최근 1년을 쉼 없이 달렸다. 슬럼프란 말로 표현하기보단, 스스로가 소모되는 느낌으로 정신없이 무대에 올랐다는 말이 더 옳다.
“너무 작품 욕심만 내고 달렸나하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한두 달 전부터 리프레시가 필요한 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어떤 작품을 하든 함께하는 배우들한테 부끄럽지 않을 만큼 호흡해야 하니 욕심만 부려선 안 된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럼에도 무대는 언제나 그의 1번이다. 스스로를 다시 한 번 열릴 수 있게 하고 행복한 길을 찾아가도록 만들어준다.
“부족할지언정 한 작품씩 거듭해가면서 성장하고 변해가는 과정이 즐겁죠. 항상 잘 해나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