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뷰어스=문다영 기자] 학창시절, 시골 마을에 살던 내 유일한 낙은 하교길에 동네 책방에 들르는 것이었다. 신간이 뭐가 나왔는지 한 눈에 알 수 있고, 다달이 나오는 만화 잡지를 사기에도 좋은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었다. 누구네 집 딸내미에서 단골로 주인과 안면을 튼 뒤에는 알아서 책을 권해주기도 했다. 내 의지로 처음 산 전집 ‘태백산맥’도 인터넷이 아닌 시골 아주 작은 동네 책방이 구매처였다. 두 팔 한가득 껴안고 서점 문턱을 나서며 입꼬리가 올라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시골을 떠나 도시생활을 시작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그 서점이 그리울 때가 있다. 집에서 걸어나와 족히 30분 이상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서점에 갈 수 있고, 그렇게 만난 대형 서점은 책이 넘쳐 나지만 동네 서점 특유의 온기는 느낄 수 없다.
동네 앞 놀이터 중 하나였던 서점이 사라지고 있다. 대형서점에 밀리고 온라인서점에 밀려 동네 서점들이 사라진 지 오래다. 간혹 반가워 들어가 보면 서점의 밥줄이 되는 초중고 참고서, 문제집이 대부분이다. 이미 오래 전 동네 음반 가게가 사라졌듯 동네 서점도 하나 둘 사라져가는 가운데 동네 서점 살리기에 나선 이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사진=강릉 말글터, 북피알 미디어)
북피알(북PR)미디어와 한국출판협동조합은 지난달부터 지역 대표 서점에 매월 10종의 도서 북큐레이팅 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서점을 찾아오는 독자들이 더욱 쉽게 새로운 콘텐츠를 접할 수 있도록 도모하는 동시에 온라인 서점에 익숙해진 독자들의 구매율을 높일 수 있도록 온라인서점 못지 않은 굿즈까지 갖췄다.
북피알미디어와 한국출판협동조합이 진행 중인 지역 서점 북큐레이팅 서비스는 매회 테마를 선정해 관련 도서를 추천받아 각 지역 서점에서 매대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각 도서는 저자 및 SNS 미디어와 제휴를 통해 이슈화되고, 별도의 굿즈 상품을 기획해 대형서점 및 온라인서점에서 제공하는 혜택을 오프라인 독자에게 제공하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특히 지역 서점 북큐레이팅 서비스는 매대를 구성하며 저자와의 만남, 북콘서트, 저자 친필 사인본 증정 등 출판사 참여를 통한 다양한 이벤트를 실시한다. 여기에 더해 각 지역 서점 MD나 도서업계 관계자들의 추천서 등 ‘정성어린’ 마케팅으로 지역 서점만의 온기를 더하겠다는 목표로 북큐레이팅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각 지역 고유의 정서와 향기를 품고 있는 지역 서점들이 무너져 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는 북피알미디어 나영광 대표는 “출판사들의 홍보, 마케팅이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만 집중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면서 “몇몇 동네책방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셀럽에 한해서다. 그래서 각 서점만의 특화된 큐레이팅, 독자와 소통, 모바일 시대에 걸맞는 서점으로의 변화가 시급하다는 생각에 북큐레이팅 서비스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진=광주 충장서림, 청주 휘게문고 / 북피알 미디어)
5월 한달 간 서비스된 북큐레이팅 주제는 ‘오늘 읽을 책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 ‘거인의 말’ ‘엄마의 말하기 연습’ ‘배틀트립’ 등 다양한 도서가 캘리그라피 머그컵과 함께 구성돼 지역 서점 한켠을 차지했다. 이 서비스는 5월에만 수도권의 동양서림, 일지서적, 동원서적, 열린문고, 미금문고, 부평문고, 서협문고 및 지하철 서점 등 7곳에 서비스됐다. 지방에서도 말글터(강릉), 세종문고(첨단), 수완세종문고(광주), 문우당(부산), (오창), 홍문당(용암), 휘게문고(청추) 등 22곳이 이 북큐레이팅 서비스를 실시했다.
효과는 남다르다. 시행 한 달 여, 이들 지역 서점들의 실질적 도서 판매율은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큐레이팅 서비스에 대해 한 서점 관계자는 “서점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전까지 서점 내에서 큐레이팅 서비스를 하는 때도 있고 여건상 하지 못하는 때도 있었는데 독자의 니즈(Needs)에 맞춰 세련된 북큐레이팅 서비스를 받으니 매대만으로도 서점 활로를 찾은 기분이다”면서 “실질적으로 판매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북큐레이팅 관련 서적 판매가 상승했고, 덩달아 다른 도서들의 판매율도 높아진 추세다”라고 밝혔다.
심지어 이같은 북큐레이팅 서비스를 알게 된 일부 서점에서 먼저 요청이 오고 있는 상황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다. 개별 출판사마다 큐레이팅을 하고 지역을 돌며 영업을 하기는 여건상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 이는 온라인 서점 및 대형 서점에 출판사가 몰리는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케팅과 유통을 담당하는 두 업체가 큐레이터로 나선 후 출판사는 발품을 팔지 않고서도 잘 꾸며진 매대에 자사의 상품을 홍보할 수 있게 됐다. 온라인 서점용으로 만들어낸 굿즈 상품 역시 활용할 방안을 찾아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출판사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호응에 힘입어 북피알미디어와 한국출판협동조합은 지속적인 북큐레이팅 서비스를 통해 지역 서점 활성화에 앞장서겠다는 포부다. 북피알미디어 나영광 대표는 “어려운 출판시장에 건전한 도서 유통 질서를 확립하고 새로운 홍보 방식을 찾아나가겠다. 이를 통해 판매 시장을 개척, 출판계의 활로를 마련하고 싶다”고 남다른 각오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