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N '미스트리스'(극본 고정운, 김진욱)으로 처음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연출한 한지승 감독(사진=OCN)
[뷰어스=손예지 기자] “시원섭섭한 게 아니라 섭섭시원해요(웃음) 아쉬운 게 조금 남은 상태인데, 스태프들과 연기자들의 체력이 다했을 때 끝이 나서 다행이기도 합니다”
한지승 감독의 말이다. 그는 지난 3일 막을 내린 OCN 오리지널 ‘미스트리스’로 처음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를 연출했다. 한 감독은 ‘미스트리스’와 함께한 시간을 “스스로 놀랍기도 하고 즐기기도 한 작업이었다”고 떠올렸다. 장르물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유독 새로웠다고.
“시청자들과 이런 장르로 소통해본 게 처음이어서요. ‘이런 반응이 오는구나’ ‘이런 효과가 있구나’ 많이 배웠고 느꼈죠. ‘미스트리스’는 나뿐만 아니라 작가들, 연기자들, 스태프들이 워낙 잘해줘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비슷한 장르에 또 도전해 보고 싶네요”
‘미스트리스’의 주인공은 네 여자다. 남편이 죽고 거액의 보험금을 받게 된 카페 사장 장세연(한가인)과 임신이 되지 않아 고민 중인 고교 교사 한정원(최희서), 고교 은사와 불륜을 저지른 적 있는 정신과 의사 김은수(신현빈), 화려한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로펌 사무장 도화영(구재이)이다. 드라마는 세연에게 발신자 제한 표시의 전화가 걸려오는 것부터 시작해 네 친구들 앞에 의문스러운 사건들을 연달아 던져주며 긴장감을 높였다.
“원작이 말하고 있는 현대 여성의 위기, 불안감은 당연히 갖고 오되 이를 어떻게 장르화할 것이냐 고민하면서 사건들을 만들게 됐죠. 그렇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리메이크라는 생각을 안 하게 됐고요. 덕분에 부담을 덜었고, 원작의 장점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장르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벌어져 충격을 안겼던 희대의 보험 사기극 ‘엄여인 사건’ 등이 활용됐다. 한 감독은 “실제 사건을 기준으로 만들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우리 드라마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비현실적인 이야기로는 공감대를 획득하는 게 어렵다. 현실성에 대한 확신이 굉장히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료 조사 중 ‘엄여인 사건’보다 더 극악한 보험 사기 사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1~2회는 수위 높은 베드신으로 미성년자 관람 불가 등급을 받기도 했다.
“우리 드라마가 표방하는 장르가 ‘미스터리 관능 스릴러’였어요. 그렇지만 관능을 위한 관능은 소모적이라고 생각했죠. 천편일률적으로 표현되지 않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장면마다 캐릭터들을 묻어나게 하려고 노력했죠. 이를테면 화영이의 베드신은 화려하고 표현이 풍부해요. 반면 목적을 갖고 관계하는 정원이는 현실적이고 담백하죠. 은수는 비밀스럽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풍기고요. 그러나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는 한편, 스스로 복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러한 장면들이 정말 이 드라마에 필요했는지요”
한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 것은 비단 베드신뿐만이 아니었다. 장르물을 처음 연출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장면마다 스산한 연출로 공포심을 자극했다. 한 감독은 그 공을 배우들에게 돌렸다. 특히 죽은 줄로만 알았던 세연의 남편 김영대(오정세)가 살아 돌아와 악행을 벌이는 장면들에서는 배우의 아이디어가 큰 역할을 했다고 칭찬했다.
“영대가 나윤정(김호정)의 죽이는 방식이나 한상훈(이희준)을 뺀찌(플라이어)로 고문하는 것 등은 오정세 씨 아이디어였어요. 정세 씨가 이렇게 악한 인물을 연기해본 적이 없다면서, 즐겁게 촬영했어요. 하하”
촬영이 즐거웠던 것은 오정세뿐이 아니었다. 한 감독은 “촬영장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며 웃음 지었다. 특히 주연배우 네 명이 현장에 모이면 처음 얼마간은 아무도 그 근처에 못 갈 정도로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고. 한 감독은 “누구 하나 잘못하면 전체의 그림이 이상해진다는 걸 아니까, 서로 북돋고 디테일을 잡아주면서 순조롭게 촬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한가인 씨는 큰형이었어요. 현장과 후배들을 아울렀죠. 신현빈 씨는 논리정연하면서도 긍정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고요. 최희서 씨는 작업해보고 싶은 배우였는데, 한정원이란 역할에 잘 맞겠다는 내 확신을 증명해줬습니다. 겁이 많은 구재이 씨는 캐릭터 화영과 달리 굉장히 순수한 친구였죠”
'미스트리스'의 주연배우 신현빈(왼쪽부터) 한가인 구재이 최희서(사진=OCN)
특히 ‘미스트리스’는 한가인이 6년 만에 출연하는 드라마라 방송 전 화제를 모았다. 한 감독은 그에 대해 “의지가 상당하고 솔직한 배우”라고 평했다. “섭외 전 미팅 단계에서 연기에 대해 스스로 자신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이 배우의 안에 대단히 많은 것들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트리스’를 통해 연기하는 데 새삼 재미를 느꼈다고 하기에 앞으로 쉬지 말고 계속 연기해 달라고 말했다”며 애정을 보였다. 그런 한가인과 극중 묘한 로맨스 관계를 형성한 이희준(한상훈 역)도 칭찬했다.
“희준 씨는 실제로 하게 지내는 배우라 그가 멜로를 잘 할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웃음) 스스로 멜로에 욕심을 느끼는 친구예요. 대본 보면 닭살 돋는다면서도, 잘 해내거든요. 하하. 세연과 상훈의 로맨스는 이 드라마의 주된 내용이 아니었는데, 가인 씨와 희준 씨의 케미스트리가 살려준 셈이에요. 다음번에는 희준 씨와 멜로하자고 했어요”
이런 가운데 ‘미스트리스’ 최고의 발견은 배우 이상희다. 조선족 여자 정심을 연기한 이상희는 실감 나는 사투리 연기로 첫 등장부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정심이 실은 영대의 본처였다는 반전이 드러나면서 극의 키플레이어 역을 톡톡히 했다.
“이상희 씨는 당연히 잘하리라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상희 씨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요. 극 중 병원 계단에서 정심이 영대와 세연을 몰래 내려다보는 장면이 무섭다고들 하시던데, 원래 콘티에 없는 장면이었어요. 촬영 당일 상희 씨가 일찍 나왔기에 한번 찍어본 거였는데 반응이 좋았죠. 정심이 등장하는 장면은 대부분 이상희 씨의 훌륭한 연기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처럼 현장에서 한 감독은 연기자들과 스태프들의 의견을 듣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전에는 자신이 짜 놓은 콘티에 맞춰 자로 재듯 연출하는 것을 선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가 없어졌단다. 그리하여 요즘은 자신이 구성한 기본 틀에 배우와 제작진이 새롭게 그려내는 그림을 기대하는 편이라고. 이런 가운데, ‘미스트리스’를 촬영하며 스스로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는 한 감독이다.
“원래 16회로 준비했던 것을 12회로 줄이면서 뒷부분을 설명적으로 풀어낸 게 아쉽습니다. 이제 막 캐릭터들이 안정화되고 이야기가 굴러갈 때쯤이었는데… 하하. 원래는 사건 구성이 좀 더 탄탄했었거든요. 회차가 줄면서 사건을 설명으로 대신했으니, 극 후반부 답답하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고구마’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표현을 처음 들었어요(웃음) 연출자로서 죄송합니다. 동시에 시청자들이 장르물에 대해 기대하는 지점들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더 좋은 콘텐츠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지승 감독은 '미스트리스'를 통해 배우고 느낀 점이 많다고 했다(사진=OCN)
‘미스트리스’는 완성도에 비해 다소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전국가구 기준 1.6%의 시청률로 시작해 최종회도 동률을 기록했다. 방영 내내 1%대 시청률을 보였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힘든 장르물인 데다, 주말 심야 시간 편성과 12부작이라는 짧은 호흡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한 감독은 “많이 반성하고 있다”며 “극 초반 시청자들을 설득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 지점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고 점검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3일 방송한 ‘미스트리스’ 최종회는 열린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죽을 위기에 처했던 상훈이 살아나 세연과 제 2의 인생을 예고했고, 정원·은수·화영도 각자의 행복을 찾았다. 그러나 최종회 끝 무렵, 세연에게 다시 발신자 표시 제한 전화가 걸려오며 눈길을 끌었다. 이어 카메오로 출연한 배우 이하나가 모든 사고가 일어난 건물의 새로운 입주자로 등장하면서 또 다른 긴장감을 선사한 것.
“결말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을 정리하는 중인데요. 원작이 제시하는 것은 상훈이라는 남성 조력자가 결국 죽고, 여성 인물들이 주체적으로 현실을 극복하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무겁게 마무리해서 시청자들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죠. 어차피 현실은 힘든데, 드라마만큼은 조금 비현실적이더라도 안도감이나 희망을 전달하는 게 더 의미 있겠다는 게 나의 가치관이거든요. 물론 엔딩을 맞기까지 과정이 조금 더 정교했다면 좋았겠지만, 최종회를 보고 시청자들이 안도하셨다면 다행입니다. 이하나 씨가 출연한 엔딩에 대해서는, 아직 시즌2 계획은 없습니다(웃음) 이를 두고 시청자들이 즐겁게 대화 나누시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인터뷰 내내 ‘미스트리스’를 통해 배우고 느낀 점이 많다고 강조한 한 감독이다. 그는 “단순히 여자들이 주인공인 장르물을 끝낸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며 “‘미스트리스’는 각각의 캐릭터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재미와 의미를 줬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 과정을 통해 배운 점이 많다. 앞으로도 이 같은 작품들로 시청자나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겠다. 더 나아가서 ‘미스트리스’를 통해 남성 위주 이야기에 국한했던 장르물의 폭이 넓어지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