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2, tvN, SBS 방송화면)
[뷰어스=노윤정 기자] “정문성이 누구지?” 이름만 듣고는 이렇게 묻는 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얼굴을 본 후에는 어느 작품에선가 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고객을 끄덕일 것이다. 정문성은 그렇게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듯 익숙하다. 신선한 마스크와 무대 경험을 통해 쌓은 탄탄한 연기력. 정문성은 새로운 얼굴에 갈증을 느끼는 시청자에게 더없이 반가운 배우다.
TV 드라마에서 연극·뮤지컬 배우를 만나는 일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정문성 역시 공연계에서 먼저 두터운 팬층을 쌓았다. 지난 2007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해 ‘빨래’, ‘나쁜자석’, ‘두근두근 내 인생’, ‘사의찬미’, ‘거미여인의 키스’, ‘구텐버그’, ‘어쩌면 해피엔딩’, ‘SLEUTH’ 등 다양한 연극·뮤지컬 작품에 출연했다. 지난 2016년에는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뮤지컬 중 하나인 ‘헤드윅’의 타이틀롤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물론 공연계에서의 인기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는 낮았다. 정문성이 처음 드라마에 출연한 것은 지난 2012년. 정문성은 ‘유령’을 통해 악역으로 먼저 대중을 만난다. 당시 정문성이 연기한 캐릭터는 조현민(엄기준)의 충실한 수족 염재희로, 살인을 저지른 후 결국 그 자신도 조현민에게 죽임을 당하는 인물이다. 드라마 데뷔가 강렬했다. 이후 정문성은 JTBC ‘무정도시’, SBS ‘수상한 가정부’, ‘비밀의 문’, ‘육룡이 나르샤’, KBS2 ‘뷰티풀 마인드’ 등의 작품에 참여한다. 쉼 없이 공연 무대에 오르는 중에도 시청자들과 꾸준히 만나며 자신의 얼굴을 알렸다.
정문성이라는 배우의 존재를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각인시킨 작품은 지난해 방영한 KBS2 ‘김과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문성은 ‘김과장’에서 검사 한동훈 역을 맡아 개성 강한 캐릭터들 사이에서 절대 묻히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시청자들에게는 정문성의 ‘발견’이었다. 정의 실현에 대한 열정은 가득하지만 치밀함이 부족한 검사 한동훈은 정문성에 맞춤옷처럼 보였다. 극 중 정문성은 검사로서 날카로운 면을 보이다가도 조금만 방심하면 허당기 가득하고 귀여운 면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특히 남궁민(김성룡), 정혜성(홍가은)과 호흡을 맞추며 보여준 능청스러운 대사 처리가 일품이었다. 자신이 지시를 내리는 위치면서도 홍가은의 기세에 눌리는 한동훈의 모습은 극에 재미를 더하는 요소였다. 또한 한동훈이 피자 배달원으로 위장해 경리부 사무실로 김성룡을 찾아간 장면은 캐릭터의 어리바리한 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큰 웃음을 선사했다.
(사진=굿맨스토리)
정문성은 최근 tvN ‘멈추고 싶은 순간: 어바웃 타임’(이하 어바웃 타임)과 SBS ‘훈남정음’, 두 편의 드라마를 통해 다시 한 번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정문성이 ‘어바웃 타임’에서 보여준 연기는 ‘김과장’ 속 한동훈을 표현할 때와는 결이 다르다. 극 중 정문성은 윤도산 역을 맡았다. 윤도산은 늘 가족의 사랑을 바라고 동생 이도하(이상윤)와 둘도 없는 형제애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유약해 보이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차분하고 다정하다. 그렇기에 얼마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자신보다는 주변을 더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 연기하는 정문성의 살짝 처진 눈매, 조곤조곤한 목소리 모두 윤도산 그 자체였다. 특히 태연해 보였던 윤도산이 죽음을 앞두고 어머니의 납골당을 찾아가 “무서워, 엄마. 나 너무 무서워”라며 손까지 떨며 오열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까지 함께 눈물 흘리게 했다. 정문성은 캐릭터의 죽음으로 극에서 하차했다. 정문성이 연기한 윤도산의 마지막은 시청자들에게 쉽게 지울 수 없는 여운을 남겼다.
하지만 ‘훈남정음’ 속 정문성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저 배우가 ‘어바웃 타임’의 그 배우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비슷한 시기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에서 정반대라고 볼 수 있는 성격의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그 어느 역할에서도 위화감을 주지 않는다. 볼수록 놀라운 캐릭터 소화력이다.
정문성은 ‘훈남정음’에서 훈남(남궁민)의 사촌동생 육룡으로 분하고 있다. 육룡은 훈남의 코치를 통해 모태솔로에서 바람둥이로 변하는 인물. 극 중 정문성은 코믹 요소를 제대로 살리는 안정된 연기력과 보는 이들을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귀여운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윤도산 때와는 표정과 목소리 톤부터 달라졌다. 한 톤 높아지고 애교 가득 담긴 목소리가 육룡의 철부지 같은 면을 부각시킨다. 정문성은 “육룡은 한 드라마에서 여러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매력적인 역할이다. 모태솔로부터 바람둥이까지 넓은 영역의 연기를 할 수 있어 재밌고 설렌다”며 “그 간극을 관통하는 한 가지가 필요했다. 그것을 ‘무지에 가까운 순수함’으로 정해 연기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 말대로 정문성은 아이처럼 순수하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미워할 수만은 없는 육룡이라는 캐릭터를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고 사랑스럽게 그리고 있다.
정문성은 공연계에서 제법 이름을 알린 후 브라운관까지 진출해 역할의 비중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다해왔다. 말 그대로 '열일'하는 배우다. 동시에 '궁금한 배우'이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익숙하지 않은 얼굴을 보며 정문성이라는 배우를 알고 싶어 했다. 물론 한 작품이 끝나면 쉽게 잊히기도 했다. 그 과정이 쌓이고 쌓여 정문성은 이제 작품이 끝나도 쉽게 잊을 수 없는 배우가 됐다. 매 작품 그 정도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정문성이 여전히 ‘궁금한 배우’라는 것이다. 정문성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전작이 궁금해지고, 그의 차기작을 생각하게 된다. 정문성은 곧 SBS 2부작 특집극 ‘사의 찬미’을 통해서도 시청자들을 만난다. 정문성은 차기작에서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