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성일 별세, 엄앵란 '고인 유언 직접 못 들었다' | 신성일 별세, 엄앵란이 한 말은 (사진=JTBC 뉴스화면)   [뷰어스=나하나 기자] 배우 엄앵란이 먼저 세상을 떠난 배우자 고(故) 신성일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 엄앵란은 지난 4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서 취재진을 만나 이 같이 밝히며 유언 역시 딸에게서 전해 들었다고 고백했다. 엄앵란은 "딸이 '마지막으로 할 말 없냐'고 하니 (신성일이) '재산없다'고 했단다. 딸이 '어머니(엄앵란)에게는 할 말 없냐'고 물으니 '참 수고했고 고맙고 미안하다고 전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엄앵란은 또 "신성일은 사회적이고 일밖에 모르는 남자라고 생각한다"며 "남편은 뼛속까지 영화인이었다. 까무러치는 때까지 영화 생각뿐이어서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버텨서 오늘날까지 많은 작품들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고 떠올렸다. 4일 오전 폐암으로 별세한 배우 신성일(81) 씨의 빈소가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신성일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아왔다. 영화 '맨발의 청춘'으로 유명한 신성일은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 후 영화를 중심으로 다수의 히트작에 출연, 국민배우로 등극했다. 그는 신성일의 대표작으로 '맨발의 청춘'을 꼽으며 "그 영화로 상도 받고 흥행도 했다. 영화 제작자로서도 위치도 확 올라갔다. 역할도 참 잘 소화했다"고 말했다. 엄앵란은 신성일을 사랑한 관객들에게도 인사를 전했다. 그는 "처음에는 TV에 사망이라고 나왔고 또 오보라고 나왔다. 그걸 확인하려고 제주도에서 전화가 왔고, 누군가는 울면서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팬들의 연락을 받고 나니 많은 힘을 받았고, 우리의 가정사나 사생활 부분은 완전히 포기할 수 있었다"며 "이런 사람들 때문이라도 내가 흉한 모습 보이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엄앵란은 신성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물음에 "저승에 가서 못 살게 구는 여자 만나지 말고 순두부 같은 여자 만나서 재미있게 살길 바란다. 구름타고 놀러다니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성일은 4일 오전 2시 25분께 전남대병원에서 향년 81세 일기로 별세했다. 폐암 투병 중이던 그는 전날인 3일부터 병세가 위독해졌으며, 아들 강석현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장례는 영화인장(3일장)으로 거행된다. 장례위원회는 지상학 회장과 배우 안성기가 공동 위원장을 맡았다. 4일 81세의 일기로 타계한 배우 신성일은 마지막까지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천생 영화인'이었다. 그는 무려 507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고, 팔순이 넘어서도 영화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생전에 영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준비 중이었다. '소확행'(가제)은 유명한 사진작가 가족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신성일이 직접 기획과 주연을 맡고 안성기, 박중훈 등이 합류할 예정이었다. 감독은 '별들의 고향'(1974) 등을 연출한 이장호 감독에게 맡겼다.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인 이장호 감독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성일이 형님이 저더러 연출을 맡아달라고 해서 제가 오케이 했다"면서 "본인이 몸이 많이 쇠약해져 있으니 몸을 예전처럼 만들고 싶다고 했고, 컨디션이 회복되면 내년 봄부터 촬영에 들어가자고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감독은 "어젯밤 일본에서 별세 소식을 듣고 술을 한잔하는데,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더라"라며 내일 빈소를 찾기 위해 귀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소확행'을 계속 제작할지는 제작사 등과 논의를 해봐야 안다고 이 감독은 덧붙였다. '소확행'은 평소 "따뜻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던 신성일의 바람에서 추진됐다. 신성일은 지난해 자신의 회고전이 열린 부산영화제에서 취재진과 만나 "작품에 대한 욕심은 항상 있다. 한데 요즘 한국 영화는 너무 막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을 죽이고, 분노를 치밀어오르게 하고, 사회고발을 해도 잔인하게 복수를 한다. 만날 때리고 욕하고 싸우다 보니 너무 살벌해서 영화가 본질을 벗어난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따뜻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소확행'(당시 제목은 '행복')이라는 작품을 준비 중임을 밝혔다. 신성일은 차기작으로 김홍신 작가의 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영화화하는 방안도 구상했다. 원로배우 신영균(90·신영균예술문화재단 명예회장)은 "고인은 여든살이 돼서도 영화를 하려고 애를 썼고, 몇달 전에는 '형님, 저와 영화 만듭시다'라며 제안하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신성일 별세' 엄앵란, 마지막 못 지켰다

나하나 기자 승인 2018.11.05 09:43 | 최종 수정 2137.09.09 00:00 의견 0

| 신성일 별세, 엄앵란 '고인 유언 직접 못 들었다'
| 신성일 별세, 엄앵란이 한 말은

(사진=JTBC 뉴스화면)
(사진=JTBC 뉴스화면)

 

[뷰어스=나하나 기자] 배우 엄앵란이 먼저 세상을 떠난 배우자 고(故) 신성일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

엄앵란은 지난 4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서 취재진을 만나 이 같이 밝히며 유언 역시 딸에게서 전해 들었다고 고백했다.

엄앵란은 "딸이 '마지막으로 할 말 없냐'고 하니 (신성일이) '재산없다'고 했단다. 딸이 '어머니(엄앵란)에게는 할 말 없냐'고 물으니 '참 수고했고 고맙고 미안하다고 전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엄앵란은 또 "신성일은 사회적이고 일밖에 모르는 남자라고 생각한다"며 "남편은 뼛속까지 영화인이었다. 까무러치는 때까지 영화 생각뿐이어서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버텨서 오늘날까지 많은 작품들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고 떠올렸다.

4일 오전 폐암으로 별세한 배우 신성일(81) 씨의 빈소가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신성일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아왔다. 영화 '맨발의 청춘'으로 유명한 신성일은 1960년 영화 '로맨스 빠빠'로 데뷔 후 영화를 중심으로 다수의 히트작에 출연, 국민배우로 등극했다.

그는 신성일의 대표작으로 '맨발의 청춘'을 꼽으며 "그 영화로 상도 받고 흥행도 했다. 영화 제작자로서도 위치도 확 올라갔다. 역할도 참 잘 소화했다"고 말했다.

엄앵란은 신성일을 사랑한 관객들에게도 인사를 전했다. 그는 "처음에는 TV에 사망이라고 나왔고 또 오보라고 나왔다. 그걸 확인하려고 제주도에서 전화가 왔고, 누군가는 울면서 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팬들의 연락을 받고 나니 많은 힘을 받았고, 우리의 가정사나 사생활 부분은 완전히 포기할 수 있었다"며 "이런 사람들 때문이라도 내가 흉한 모습 보이지 말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엄앵란은 신성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물음에 "저승에 가서 못 살게 구는 여자 만나지 말고 순두부 같은 여자 만나서 재미있게 살길 바란다. 구름타고 놀러다니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성일은 4일 오전 2시 25분께 전남대병원에서 향년 81세 일기로 별세했다. 폐암 투병 중이던 그는 전날인 3일부터 병세가 위독해졌으며, 아들 강석현 등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장례는 영화인장(3일장)으로 거행된다. 장례위원회는 지상학 회장과 배우 안성기가 공동 위원장을 맡았다.

4일 81세의 일기로 타계한 배우 신성일은 마지막까지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천생 영화인'이었다.

그는 무려 507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고, 팔순이 넘어서도 영화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생전에 영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준비 중이었다.

'소확행'(가제)은 유명한 사진작가 가족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신성일이 직접 기획과 주연을 맡고 안성기, 박중훈 등이 합류할 예정이었다. 감독은 '별들의 고향'(1974) 등을 연출한 이장호 감독에게 맡겼다.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인 이장호 감독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성일이 형님이 저더러 연출을 맡아달라고 해서 제가 오케이 했다"면서 "본인이 몸이 많이 쇠약해져 있으니 몸을 예전처럼 만들고 싶다고 했고, 컨디션이 회복되면 내년 봄부터 촬영에 들어가자고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감독은 "어젯밤 일본에서 별세 소식을 듣고 술을 한잔하는데,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더라"라며 내일 빈소를 찾기 위해 귀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소확행'을 계속 제작할지는 제작사 등과 논의를 해봐야 안다고 이 감독은 덧붙였다.

'소확행'은 평소 "따뜻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던 신성일의 바람에서 추진됐다.

신성일은 지난해 자신의 회고전이 열린 부산영화제에서 취재진과 만나 "작품에 대한 욕심은 항상 있다. 한데 요즘 한국 영화는 너무 막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을 죽이고, 분노를 치밀어오르게 하고, 사회고발을 해도 잔인하게 복수를 한다. 만날 때리고 욕하고 싸우다 보니 너무 살벌해서 영화가 본질을 벗어난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따뜻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소확행'(당시 제목은 '행복')이라는 작품을 준비 중임을 밝혔다.

신성일은 차기작으로 김홍신 작가의 소설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영화화하는 방안도 구상했다. 원로배우 신영균(90·신영균예술문화재단 명예회장)은 "고인은 여든살이 돼서도 영화를 하려고 애를 썼고, 몇달 전에는 '형님, 저와 영화 만듭시다'라며 제안하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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