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N '손 the guest' 최윤 역을 맡은 배우 김재욱(사진=매니지먼트숲)
OCN '손 the guest' 최윤 역을 맡은 배우 김재욱(사진=매니지먼트숲)

 

[뷰어스=손예지 기자] 김재욱은 다작(多作)하는 배우 중 하나다. TV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꾸준히 모습을 비추고 있다. 그러면서 작품마다 전혀 다른 캐릭터의 옷을 입는다. 이를 테면 지난해 OCN ‘보이스’에서 살벌한 연쇄살인마를 연기했던 그는 차기작인 SBS ‘사랑의 온도’에서 로맨틱한 드라마 제작사의 대표로 변신했다. 그뿐인가. 올해 상반기에는 음악극 ‘아마데우스’로 비운의 천재 모차르트를 맡아 자유분방한 매력으로 무대를 사로잡더니 최근 종영한 OCN ‘손 the guest’에서는 구마사제 최윤을 통해 유약함과 강직함을 동시에 보여줬다. 맡는 인물에 따라 극명한 온도 차이를 보여주는 한편 그 속에서 ‘배우 김재욱’만이 갖고 있는 고유의 색깔이 함께 느껴진다는 점이 그의 강점이다.

특히 ‘손 the guest’의 김재욱은 놀라웠다. 그에게는 나른한 눈빛이나 깎아지른 듯 날카로운 얼굴의 선이 풍기는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사제복의 로만칼라마저 패션 아이템처럼 보이는 소화력으로 ‘퇴폐미가 느껴지는 사제’라는 평가까지 들었다.

“기분 좋아요. 사제복이 잘 어울린다는 말도 좋았는데 사제가 가지면 안 될 매력까지 봐주셨다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죠(웃음) 물론 내가 섹시함을 발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장면을 소화한 건 아니었어요. 외로워 보이거나 비밀이 많아 보이도록 연기한 것도 있지만 결국은 카메라에 어떻게 담고 편집하느냐의 문제거든요. 촬영감독님부터 조명감독님까지 이미 작업을 해본 분들이었어요. 제작진이 최윤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연구를 많이 했고, 덕분에 내가 특별한 액팅을 하지 않아도 공간과 조명, 카메라 워크만으로 최윤을 풍성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극 중 최윤은 어릴 적 악귀에 빙의된 형 최 신부(윤종석)가 부모를 살해한 뒤 구마사제가 된 인물이다. 그렇다면 김재욱은 이 캐릭터를 어떻게 연구했을까. “최윤이 가진 매력과 특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어떤 인물과 부딪히고 또 어떤 세계관 안에 존재하는지가 더 중요했다”고 운을 뗐다. 그래서 캐릭터를 디테일하게 표현하기보다 극이 진행되면서 변화하는 최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극 초반에는 작가님이 캐릭터들의 과거 서사를 탄탄히 그려주셨고 이를 아역 친구들이 잘 소화해줘서 나도 편안히 연기할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김재욱이 고마움을 표한 사람들은 또 있다.

“‘손 the guest’는 부마자를 연기한 배우들의 힘이 컸어요. 극의 중반부까지 부마자들이 다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오히려 주연들이 한 발 빠져야 균형이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들의 힘을 받아서 박일도를 쫓아갈 수 있었고, ‘손 the guest’의 세계가 더 리얼하게 그려질 수 있었습니다. 너무너무 고마워요”

(사진=매니지먼트숲)
(사진=매니지먼트숲)

 

에피소드마다 부마자들의 몸에서 악귀를 빼내는 것은 최윤의 몫이었다. 이를 연기하는 김재욱은 여태 국내 드라마에서는 그려지지 않은 ‘구마의식’을 보다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로는 무교이나 성당을 다니며 천주교인으로서의 태도, 사제의 행동방식을 배웠다. 동네 작은 성당부터 유명한 성당까지 다니며 실제 사제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구마의식과 관련해서는 드라마 제작사에서 준비해준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는 것은 물론, 필리핀에서 활동하는 실제 구마사제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실제 구마사제를 만나고 구마의식이 생각보다 정적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요소가 많지 않다는 뜻입니다. 정신력의 싸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시청자들로 하여금 몰입하고 긴장하게 만들지 고민해야 했죠. 자칫 오버액팅이 될 수도 있고 연기가 모자라면 긴장감이 사라지잖아요. 그 사이의 균형을 잡는 데 제작진의 도움이 컸습니다. 배우의 집중력과 연기력만큼 화면에 어떻게 담느냐가 중요한데 구마의식 장면에서는 특히 모든 스태프가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 중 기억에 남는 구마 장면을 꼽아달라고 요청하자 “한 분 꼽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있었단다. 배우 전배수(김영수 역)와 촬영한 첫 구마 신이다. 구마의식을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구현해내는 일이 상상되지 않아 긴장했었다고 떠올렸다. 덕분에 촬영은 하루 종일 진행됐고, 무사히 마친 뒤 앞으로 구마 장면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감이 잡혔단다. 이 외에도 극 중 어린 영매(靈媒) 정서윤(허율)에 관한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율이와 연기한 장면 전부 너무 좋았어요. 좋은 배우의 자격을 가진 친구예요. 율이가 계속 연기를 한다면 나이들었을 때의 연기도 보고 싶을 만큼요. 극 중 서윤을 구마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였어요. 최윤이 이때 눈물을 흘릴지 아닐지 생각해 본 적 없었거든요. 그런데 율이 연기를 보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김홍선 PD님도 좋다고 해주셨어요. 연기하는 재미를 느꼈습니다. 상대 배우와의 호흡으로 내가 맡은 인물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는 순간이요”

이런 가운데 최종회에 나온 수중 구마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스스로 악귀를 받아들인 화평(김동욱)을 구마하고자 최윤이 바다에 뛰어드는 설정이었다. 물 속에서 뒤엉키며 분투하는 두 배우의 열연이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김재욱은 “화평이와 최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게 부딪히며 서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장면”이라며 “‘손 the guest’가 오직 이 장면을 위해 달렸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당시에 배우와 스태프 모두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극한에 달했을 때였어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현장에 갔어요. 그동안 내 안에 최윤의 시간이 오롯이 쌓였으니 따로 계산하거나 디자인하는 게 의미가 없었어요. 실제로 그냥 나오는대로 연기했고 NG 없이 한 번에 OK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손 the guest’의 이야기는 내내 무겁게 흘렀으나 이 때문에 현장 분위기는 밝게 띄우려고 노력했다는 김재욱이다. 특히 10년 전 MBC ‘커피프린스 1호점’을 함께한 김동욱과의 호흡에 엄지를 치켜세우며 정은채(길영 역)도 자신들의 개그를 잘 받아줬다고 했다. 이런 와중에 “배우들이 격의없이 친해진다는 게 자칫 집중을 못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는데 ‘손 the guest’는 초반부터 현장에서 다 같이 잘 어울렸다”며 스태프들의 이해심을 고마워하기도 했다. 또 “즐거운 시간들이 쌓인 덕분에 오히려 최윤에게서 벗어나는 일이 수월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진=매니지먼트숲)
(사진=매니지먼트숲)

 

“나는 특히 ‘손 the guest’의 메시지가 좋았습니다. ‘박일도(극 중 악귀의 이름)’는 악의 상징이잖아요. 악은 완전히 없애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드라마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악한 마음의 틈이 악령을 초대한다는 이론을 갖고 있는데, 이게 누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개인이 아니라 전체가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비상식적인 사건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요즘, ‘손 the guest’가 문제제기까지는 아니어도 오컬트라는 장르를 통해 관련된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평소 스릴러나 서스펜스, 오컬트 등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루는 책이나 영화를 좋아한다는 그는 ‘손 the guest’를 통해 갈증을 해소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보이스’에 이어 또 다시 장르물로 호흡을 맞춘 김홍선 PD에 대한 남다른 신뢰도 드러냈다. 

“김홍선 PD님은 최고예요. 배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죠. 배우의 특징과 성향을 파악해서 연출가로서 최대한의 것을 끌어내고자 하고, 또 배우가 편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나와 잘 맞아요. 실제로 촬영하면서 나에게 많은 권한을 주시기도 했고요. 대단한 분이죠. PD님이 다음 작품은 멜로 할테니 또 같이 하자는데, 봐야죠. ‘보이스’ 끝나고도 멜로 한다더니 ‘블랙’ 찍으셨거든요(웃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털어놓은 김홍선 PD와의 차기작 언급에 다음에는 김재욱이 또 어떤 모습으로 대중을 만날지 궁금해졌다. “미래를 계획하는 편은 아니다”라던 그는 “소속사가 걱정이 많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배우마다 자기의 길이 있다고 생각해요. 정답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여태 내가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어요. 한 두 개 빼고는? 하하. 언제로 돌아가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거예요. 그런 시간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고요.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지금의 김재욱이 만들어진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기에 받아들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