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MBC 방송화면)
[뷰어스=손예지 기자] 리얼리티가 ‘과유불급’ 상황에 처했다. ‘진짜’를 강조하면서 이슈몰이가 될 ‘자극’을 추구해온 통에 연예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련의 사건들이 리얼리티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리얼리티가 방송가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지는 꽤 오래됐다. 2013년 파일럿 방송부터 좋은 반응을 얻은 MBC ‘나 혼자 산다’가 물꼬를 텄다. 당시 TV 속 화려한 모습 이면에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스타들의 모습이 시청자와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에 ‘나 혼자 산다’를 기점으로 비슷한 성격의 예능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덕분에 오늘날엔 리얼리티 요소가 쓰이지 않는 예능을 찾기 힘든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 혼자 산다’ 성공에 힘입어 MBC는 지난해 ‘전지적 참견 시점’이라는 스타와 매니저의 리얼리티로 다시 한 번 히트를 쳤다. KBS와 SBS는 각각 ‘살림하는 남자들’과 ‘동상이몽-너는 내 운명’ 등의 시즌제 예능으로 연예인 부부 리얼리티의 인기를 견인 중이다. 종편은 범람 수준이다.
그렇다고 모든 리얼리티가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리얼리티 역시 주인공과 소재만 다를 뿐 대부분 비슷한 형식을 취하면서 지루함을 안기고 있다. 연예인의 일상을 담은 VCR에 스튜디오 MC들의 코멘터리를 더하는 식으로, 차별화에 대한 고민없는 답습이 반복되자 리얼리티가 전혀 새롭지 않은 뻔한 포맷으로 전락하게 됐다.
이 대목에서 리얼리티의 아이러니도 발생했다. 대다수 프로그램이 ‘진짜’를 강조하는 한편, 이슈몰이가 될 ‘자극’을 추구하는 것이다. 제작진은 출연 소식만으로 화제를 모을 수 있는 스타 캐스팅에 목을 매고, 스타들은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할 만한 상황을 연출하는 데 신경쓴다. 이렇듯 애초 리얼리티가 표방한 ‘날 것’ 외의 요소를 가미하기 시작하니 의미가 퇴색되고 부작용이 터지는 것도 당연하다. 최근 연예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련의 사건들이 리얼리티 부작용의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MBC, TV조선 방송화면)
빅뱅 승리가 대표적인 예다. 승리가 사내이사로 일했던 서울 강남의 유명 클럽 ‘버닝썬’이 경찰 유착·마약 유통·성폭력 가담 등의 의혹을 받으면서 그 역시 경찰 조사의 대상이 됐다. 논란이 일자 승리는 SNS에 “연예인이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클럽을 알리는 역할을 담당했”을 뿐, “실질적인 클럽의 경영과 운영은 내 역할이 아니었고, 처음부터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나 혼자 산다’에서 ‘버닝썬’ CEO를 자처하며 “(클럽 운영에) 이름만 빌려주고 그러지 않는다”고 강조했던 승리와는 상반된 모습이라 대중을 실망케 했다.
그런가 하면 TV조선 리얼리티 ‘연애의 맛’에 출연해 ‘연애 숙맥’ 이미지를 얻었던 가수 출신 배우 김정훈은 임신한 연인에게 중절을 종용했다는 폭로와 함께 고소를 당해 충격을 안겼다. ‘연애의 맛’ 제작진에 따르면 사전 인터뷰에서 김정훈은 2년이 넘게 싱글로 지냈다고 했다. 제작진의 말이 사실이라면 김정훈은 ‘거짓’으로 리얼리티에 임했던 셈이다.
출연자의 진정성만 문제일까. 리얼리티 예능 제작진의 조작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종영한 Mnet 연애 리얼리티 ‘썸바디’에서도 이 같은 논란이 불거졌다. ‘썸바디’ 최종회는 출연진이 각자 마음에 둔 상대를 선택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발레리나 이주리가 아크로바터 오종학을 거절하기 위해 로이킴의 ‘우리 그만하자’를 메시지로 보내는 장면이 방송되자 일부 시청자가 쓴소리를 냈다. 사과나 작별 인사 대신 음악으로 관계를 마무리한 이주리에 대해서다. 여기에 이주리가 “그거 내가 안 보냈다. 엠넷(Mnet)에서 편집했다”는 내용의 글을 SNS에 적으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와 관련해 제작진은 명확한 입장 발표 없이, 문제가 된 장면의 클립 영상을 공식 채널에서 삭제했다.
이 밖에 해외 도시에서의 포장마차 운영기를 그린 올리브 리얼리티 ‘국경없는 포차’가 한국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만 손님으로 사전 섭외했다는 의혹에 휩싸이거나, tvN ‘둥지탈출3’의 김수정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김재욱 부부처럼 출연자가 직접 제작진의 ‘악마의 편집’을 주장하고 나서는 등의 논란도 있었다.
리얼리티가 범람하는 시대,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리얼리티는 양날의 칼이다. 대중이 몰랐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반전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논란이 터질 수 있어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또한 “예능인이 아니고서야 배우나 가수는 작품이나 앨범 홍보를 위해 예능에 출연할 때도 있는데, 리얼리티에 비해 토크쇼가 현저히 적어 출연할 만한 프로그램이 마땅찮은 것도 고민되는 지점”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현재 방영 중인 토크쇼는 MBC ‘라디오스타’ KBS2 ‘해피투게더4’ 정도가 전부다. 그마저도 ‘해피투게더4’는 뚜렷한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 개편으로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지 못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가는 여전히 새로운 리얼리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번엔 스타 CEO의 리얼한 직장 생활을 보여주겠다는 tvN ‘문제적보스’가 오는 6일 첫 방송을 내보내며, 김정훈 논란으로 불똥을 맞은 ‘연애의 맛’은 오는 5월 두 번째 시즌 방영을 확정한 상태다. 이 같은 흐름에 대해 한 방송 관계자는 “리얼리티가 일정 수준의 인기를 보장하는 장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도 “대신 앞으로 새로운 리얼리티를 만들 때 있어서는 최근의 논란들을 교훈 삼아 출연자 선정 및 사실 확인 절차를 꼼꼼히 밟는 등 철저히 기획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