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 레이첼 와이즈, 올리비아 콜맨, 엠마스톤(사진=영화 스틸컷)
[뷰어스=남우정 기자]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이하 ‘더 페이버릿’)이 조용하지만 강한 힘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영화 ‘더 페이버릿’이 4일(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누적 관객수 10만 4918명을 돌파했다. 수치로는 적어보이나 개봉날 상영관 수 73개로 시작했던 ‘더 페이버릿’에겐 큰 성과다.
일단 ‘더 페이버릿’이 적은 상영관에서도 이같은 성과를 거두게 된 데에는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 부문 후보로 올랐던 ‘더 페이버릿’은 앤 여왕 역을 연기한 올리비아 콜맨이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관심으로 인해 상영관은 확 늘었다. 3일 기준으로 ‘더 페이버릿’은 120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전주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다.
오스카 효과도 있지만 입소문 역시 ‘더 페이버릿’의 흥행에 한 몫을 했다. ‘더 페이버릿’은 18세기 절대 권력을 지닌 영국의 여왕 앤(올리비아 콜맨)의 총애를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두 여자 에비게일(엠마 스톤)과 사라(레이첼 와이즈)의 이야기다. 짧은 줄거리만 본다면 단순한 여성들의 질투극을 떠올리겠지만 ‘더 페이버릿’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다.
보통 시대극의 암투하면 남성들이 떠오른다. 그간 권력싸움의 중심은 남성이었다. 여성이 궁중물에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권력자 남성을 빼앗기 위해서 싸우는 존재거나 그들 옆에 서있는 장식품 같은 역할에 불과했다. ‘더 페이버릿’은 18세기 영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이 틀을 완전히 뒤집었다. 여성이 권력의 최상위층이자 중심이 됐다. 이 설정 자체가 여성 관객들에겐 끌릴 수밖에 없는 요소다.
극 중에서 사라는 앤을 가장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지켜온 친구이나 그를 조종해 권력을 휘두른다. 그리고 하층민인 에비게일이 등장한다. 그는 신분상승을 위해서 앤 곁을 맴돌고 사라와 치열한 전쟁을 벌인다. 세 사람은 완벽한 삼각관계를 이룬다. 심리 묘사가 촘촘해서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이들이 극의 중심을 이끄는 동안 남성 캐릭터들은 ‘주변인’으로 소비된다.
부수적 캐릭터로 그려지는 것은 물론 ‘더 페이버릿’ 속 남성들은 그간의 젠더권력을 뒤집은 결과를 보여준다. 남성들이 가발에 화장을 곱게 하는 것이 필수가 됐고 “남잔 예쁘게 보여야 해”라는 말도 한다. 반면 여성은 화장을 한 남자에게 “마스카라 번졌다”라며 화장을 고치라고 지적한다. 자존심을 운운하는 귀족 남자에게 사라는 “여자도 가끔은 장난치고 싶다”라며 웃어 넘기고 에비게일은 장난을 친 남성에게 뺨을 날리며 “사내새끼가 감히 여자를 놀래키냐”라고 말한다. 흔치 않은 젠더 구조는 웃음과 동시에 통쾌함을 준다.
특히 앤, 사라, 에비게일은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욕구를 그대로 드러낸다. 다른 남성과 춤을 추는 사라를 보며 앤은 있는 그대로 투정을 부리고 질투를 표현하고 에비게일과 가까워진 앤을 보며 사라도 복잡미묘한 감정을 표현한다. 이들은 성적인 표현도 자유롭게 한다. 솔직하게 본능을 드러내고 남성과의 성적관계에서도 우위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 세 캐릭터는 도덕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그간 얼마 되지도 않는 여성 캐릭터들은 완전무결을 요구 당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더 페이버릿’은 여성에게도 인간의 다양한 면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올리비아 콜맨은 물론이고 엠마 스톤, 레이첼 와이즈는 연기에서도 팽팽한 삼각형을 그려낸다. 여배우로서는 욕심이 날 수밖에 없는 캐릭터들이다. 여우주연상은 올리비아 콜맨에게 돌아갔지만 궁중 암투극의 긴장감은 세 사람이 연기가 있었기에 끝까지 유지됐다.
이외에도 화려한 궁전 배경과 미술, 의상 등을 보는 맛이 쏠쏠하다. 시대극 덕후라면 ‘더 페이버릿’에 매료될 요소가 충분하다.
색다른 설정부터 연기, 보는 재미까지 잡은 '더 페이버릿'의 작은 열풍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