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JTBC 제공)
[뷰어스=이소희 기자] 배우 손호준이 놀라운 이중생활을 펼치고 있다. 그는 제주도에 내려갔을 때는 멋진 카페 사장님이더니, 트레이닝복만 입으면 그렇게 한심할 수 없는 백수로 변한다. 이런 손호준의 틈은 상황에 따라 실감나게 녹아들며 나오는 정반대의 매력이 채운다.
손호준은 최근 tvN ‘커피프렌즈’를 통해 제주도에 위치한 한 카페의 사장으로 거듭났다. 그는 프로그램의 단초가 된 기부 프로젝트를 통해 커피트럭 등을 운영해온 바 있지만 정식으로 가게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다. 여기에서 손호준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그 어렵다는 제빵을 척척 해내고, 섬세함이 요구되는 핸드드립 커피를 정성껏 내린다. 손님이 몰려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롭게 상황을 대처해 나가는 모습도 있다.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는 180도 다르다. 극 중 손호준은 변변한 능력도 없지만 허세만 가득한 인물 김영수를 연기한다. 김영수는 돈이 되는 별사탕을 받기 위해 온갖 콘텐츠를 가리지 않고 시청자들이 하라는 대로 움직인다. 인기를 위해 할머니가 되어버린 동생을 방송에 앞세우는 기막힌 기획도 서슴지 않는다.
(사진=tvN 화면 캡처)
김영수의 등장은 처음부터 강렬했다. 그는 동생 김혜자(한지민, 김혜자)에게 회 접시에 놓인 장식용 풀이 식용이라고 속이고 기뻐하는가 하면, 집 안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다가 연기에 질식해 병원에 실려 간다. 심지어 그는 기절하면서도 한 손에는 상추쌈을 쥐고 “고기 안타게 뒤집어”라고 당부하기까지 한다. 여기서 고개를 떨어뜨리며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이 포인트다. 이 눈물 줄기는 이후에도 소심하고 찌질한 김영수의 시그니처가 돼 폭소를 자아낸다.
김영수는 부모님 몰래 라면을 먹으려고 조심조심 봉지를 뜯고, 씹는 소리를 안 나게 하려고 라면을 물에 담가 불리는 치밀함까지 보인다. 뽑기를 하기 위해 쭈그려 앉을 때에는 팬티가 보이든 말든 다른 이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또 꽃등심을 위해서라면 자존심도 버리는 당당함도 중요하다.
손호준은 맹한 모습과 달리 자신의 멋에 도취되어 사는 모습이 웃음의 근간이 되는 김영수의 포인트를 잘 짚어냈다. 진지한 표정 속 녹아나는 코믹함, 목소리를 조여 약간은 옹졸하게 보이게 만드는 말투, 단순한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대사처리 등은 오로지 손호준의 것이다. 그 덕분에 시청자들은 김영수를 연기하는 손호준을 볼 때마다 몰입해 웃음이 빵빵 터지면서도 ‘만약 내가 엄마였으면 벌써 등짝 때렸다’ 싶은 생각을 수십 번 하게 된다.
(사진=JTBC 제공)
이런 손호준의 백수 연기는 중요하다. ‘눈이 부시게’는 25세 청춘이 한순간에 늙어버리며 겪는 일들을 담은 가슴 저릿한 이야기. 인생을 다루는 드라마인 만큼 눈물을 쏙 뺀다. 하지만 그 안에는 배우들만이 낼 수 있는 각각의 유머가 녹아있는데, 이 코믹한 톤의 중심을 잡는 역할이 바로 김영수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김영수는 웃음의 큰 축을 담당하면서도 할머니가 된 혜자를 가장 거리낌 없이 대하며 묘한 애틋함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손호준 특유의 차분한 눈빛은 김영수가 얄밉긴 해도 마냥 밉지만은 않은 모습에 시너지를 불어 넣는다. 예를 들어 영수가 혜자로부터 ‘정신 차리라’는 말을 듣고 막노동판에 가 짠함을 자아내다가도 도리어 허리를 다쳐 부모님의 부축을 받고 들어왔을 때, “역시 김영수답다”며 웃음을 터뜨릴 수 있던 것도 다양한 온도를 한꺼번에 담아낼 줄 아는 손호준의 능력 덕분이다.
백수 연기에도 급이 있다.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었는지, 성향 자체가 게으른 건지 등 상황에 따라 백수의 유형이 분류되는데, 백수를 연기하는 데 있어 설정보다 중요한 것은 그 상황으로부터 오는 디테일을 어떻게 살리느냐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손호준은 카페 사장이기 전에 그 누구에도 비할 수 없는 ‘초특급 백수’다. 이정도면 백수 캐릭터와 손호준은 물아일체와 같은 경지에 오른 관계가 아닐까 싶다. 찌질한 연기를 잘 소화한다는 게 자칫 욕인지 칭찬인지 헷갈릴 수 있지만 이는 명백한 호평임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