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vN) [뷰어스=손예지 기자] 배우들에겐 저마다의 이미지가 있다. 이 같은 이미지는 그가 작품에서 주로 맡아온 캐릭터, 혹은 타고난 외양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신비롭다’는 형용사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 이나영은 후자의 경우다. 원근법을 무시할 만큼 작은 얼굴과 그 안에 자리한 인형같은 이목구비, 여기에 톤이 낮은 목소리와 무던한 말투가 더해지며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 덕분이다.  이렇듯 겉으로 보이는 이나영은 어쩐지 현실과 동 떨어진,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다. 이나영이 tvN ‘로맨스는 별책부록’(연출 이정효, 극본 정현정)에서 30대 후반의 경력 단절 여성, 이른바 ‘경단녀’를 연기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놀라움을 느꼈던 이유다. MBC ‘네 멋대로 해라’(2002)의 인디 록 키보디스트 전경이나, 영화 ‘아는 여자’(2004) 속 순정파 한이연 등 자기 세계에 푹 빠져 사는 인물로 사랑받아온 이나영 아닌가. 그런 그가 소위 ‘애딸린 이혼녀’ 역할에 도전한다는 자체가 새로운 한편, 배역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로맨스는 별책부록’이 종영까지 2회만을 남겨둔 현재, 의심은 깨끗이 씻기고 이나영이라는 배우를 향한 감탄만 남았다. 인스턴트 커피를 음미하는 모습만으로 광고가 되는 이나영이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연기한 강단이는 출판사 ‘겨루’에서 커피포트를 직접 수리하는 업무지원팀 계약직 사원이다. 말이 좋아 ‘업무지원팀’이지 사실상 회사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파트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갔고 실력을 인정받아 업계에서 이름을 떨치기도 했으나, 단이는 ‘겨루’에 제출한 이력서에 이 같은 이력을 하나도 적지 못했다. 그가 ‘경단녀’이기 때문이다. 극 중 단이는 결혼 후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사업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사회인으로서의 경력이 뚝 끊긴 인물이다. 이런 이유로 이혼 후 해외 유학 중인 딸을 홀로 지원하고자 수 년 만에 구직활동에 나선 단이를 그 어떤 회사도 반기지 않았다. 거듭되는 낙방 끝에 단이는 학력과 경력을 숨긴 채 ‘겨루’에 지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합격이었다. 갈수록 취업난이 심해지는 요즘 ‘로맨스는 별책부록’은 구직자에게 ‘고학력 고스펙’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가 기혼 여성에게만 예외를 두는 아이러니한 세태를, 단이의 상황을 통해 분명히 보여줬다. (사진=tvN) 작가와 연출가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 캐릭터를 빚어냈다면, 그가 이야기 안에서 뛰어놀 수 있도록 숨을 불어 넣은 건 이나영이다. 극 중 누군가의 아내였고 또 엄마이고, 그렇기에 책임을 다하면서도 여전히 온전한 ‘나’로 살고파 하는 단이를 생생히 나타냈다. 특히 재희(이지원)가 돈 걱정에 아픈 배를 움켜쥐고 병원에도 못 갔다는 소식을 듣자 “그렇다고 병원을 안 가면 어떡해? 당장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병원 가. 재희야, 엄마 돈 있어. 너 병원비 얼마든지 있다고. 병원도 가고, 거기서 공부 더 해도 돼. 너 하고 싶은 것 다 해도 돼. 속상하게, 왜 아픈데 병원을 안 가냐”고 화내던 목소리, 회사생활이 힘에 부쳐 눈물을 흘릴 때 걸려온 재희와의 영상 통화에서 “우리 재희, 금방 아가씨 되겠네. … 재희야, 나는 네가 내가 롤 모델이라고 말해줬음 좋겠어. 그런 엄마가 되고 싶어. 너한테”라고 웃는 얼굴, 또 회사생활에 대해 묻는 은호(이종석)에게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 그동안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강단이, 나도 이름 있는 사람인데.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어. 지금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 그게 되게 신기해. 내가 내 이름으로 불린다는 느낌”이라고 말할 때의 설렘과 감동이 뒤섞인 눈빛이 익숙했다. 그 순간의 이나영은 톱스타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들을 놓치지 않고 소화하기 위해 치열히 노력하는 우리 주위의 모든 여자들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이제와 돌아보면 이나영은 항상 그 시대, 귀기울여 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청자와 관객에게 들려줘 왔다. 이를 테면 ‘네 멋대로 해라’에서 반항아적인 면모가 돋보였던 전경은 2000년대 초반 ‘비주류’를 자처하는 젊은 세대의 일면을 보여준 인물이었고, 좋아하는 남자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가갔던 ‘아는 여자’ 한이연은 주체적인 여성상에 대한 화두를 던진 캐릭터다. 또한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에서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와 누명 쓴 사형수의 이야기로 약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 일조했으며, 지난해엔 탈북 여성의 실화를 재구성한 영화 ‘뷰티풀 데이즈’에도 출연했었다.  이런 가운데 이나영은 ‘뷰티풀 데이즈’ 개봉 당시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에 관해 “관객들에게 이야기라는 걸 던질 수 있고 확신을 주고 싶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지향점이 뚜렷한 탓에 작품 사이 공백이 긴 편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나영이 택한 이야기와 인물이라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현실에 반드시 존재하지만 우리가 미처 모르고 살았던 어느 사각지대의 이야기들은, ‘비현실적’인 느낌을 타고난 이나영이 연기함으로써 한번 더 관심을 받게 된다. 앞으로도 배우 이나영의 선택을 믿고 응원하는 이유다.

[이★끌림] 이나영이 사는 세상

손예지 기자 승인 2019.03.15 09:10 | 최종 수정 2138.05.27 00:00 의견 0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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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어스=손예지 기자] 배우들에겐 저마다의 이미지가 있다. 이 같은 이미지는 그가 작품에서 주로 맡아온 캐릭터, 혹은 타고난 외양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신비롭다’는 형용사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 이나영은 후자의 경우다. 원근법을 무시할 만큼 작은 얼굴과 그 안에 자리한 인형같은 이목구비, 여기에 톤이 낮은 목소리와 무던한 말투가 더해지며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 덕분이다. 

이렇듯 겉으로 보이는 이나영은 어쩐지 현실과 동 떨어진,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다. 이나영이 tvN ‘로맨스는 별책부록’(연출 이정효, 극본 정현정)에서 30대 후반의 경력 단절 여성, 이른바 ‘경단녀’를 연기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놀라움을 느꼈던 이유다. MBC ‘네 멋대로 해라’(2002)의 인디 록 키보디스트 전경이나, 영화 ‘아는 여자’(2004) 속 순정파 한이연 등 자기 세계에 푹 빠져 사는 인물로 사랑받아온 이나영 아닌가. 그런 그가 소위 ‘애딸린 이혼녀’ 역할에 도전한다는 자체가 새로운 한편, 배역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로맨스는 별책부록’이 종영까지 2회만을 남겨둔 현재, 의심은 깨끗이 씻기고 이나영이라는 배우를 향한 감탄만 남았다.

인스턴트 커피를 음미하는 모습만으로 광고가 되는 이나영이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연기한 강단이는 출판사 ‘겨루’에서 커피포트를 직접 수리하는 업무지원팀 계약직 사원이다. 말이 좋아 ‘업무지원팀’이지 사실상 회사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파트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갔고 실력을 인정받아 업계에서 이름을 떨치기도 했으나, 단이는 ‘겨루’에 제출한 이력서에 이 같은 이력을 하나도 적지 못했다. 그가 ‘경단녀’이기 때문이다. 극 중 단이는 결혼 후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사업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사회인으로서의 경력이 뚝 끊긴 인물이다. 이런 이유로 이혼 후 해외 유학 중인 딸을 홀로 지원하고자 수 년 만에 구직활동에 나선 단이를 그 어떤 회사도 반기지 않았다. 거듭되는 낙방 끝에 단이는 학력과 경력을 숨긴 채 ‘겨루’에 지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합격이었다. 갈수록 취업난이 심해지는 요즘 ‘로맨스는 별책부록’은 구직자에게 ‘고학력 고스펙’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가 기혼 여성에게만 예외를 두는 아이러니한 세태를, 단이의 상황을 통해 분명히 보여줬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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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연출가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 캐릭터를 빚어냈다면, 그가 이야기 안에서 뛰어놀 수 있도록 숨을 불어 넣은 건 이나영이다. 극 중 누군가의 아내였고 또 엄마이고, 그렇기에 책임을 다하면서도 여전히 온전한 ‘나’로 살고파 하는 단이를 생생히 나타냈다. 특히 재희(이지원)가 돈 걱정에 아픈 배를 움켜쥐고 병원에도 못 갔다는 소식을 듣자 “그렇다고 병원을 안 가면 어떡해? 당장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병원 가. 재희야, 엄마 돈 있어. 너 병원비 얼마든지 있다고. 병원도 가고, 거기서 공부 더 해도 돼. 너 하고 싶은 것 다 해도 돼. 속상하게, 왜 아픈데 병원을 안 가냐”고 화내던 목소리, 회사생활이 힘에 부쳐 눈물을 흘릴 때 걸려온 재희와의 영상 통화에서 “우리 재희, 금방 아가씨 되겠네. … 재희야, 나는 네가 내가 롤 모델이라고 말해줬음 좋겠어. 그런 엄마가 되고 싶어. 너한테”라고 웃는 얼굴, 또 회사생활에 대해 묻는 은호(이종석)에게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 그동안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강단이, 나도 이름 있는 사람인데.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어. 지금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 그게 되게 신기해. 내가 내 이름으로 불린다는 느낌”이라고 말할 때의 설렘과 감동이 뒤섞인 눈빛이 익숙했다. 그 순간의 이나영은 톱스타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들을 놓치지 않고 소화하기 위해 치열히 노력하는 우리 주위의 모든 여자들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이제와 돌아보면 이나영은 항상 그 시대, 귀기울여 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청자와 관객에게 들려줘 왔다. 이를 테면 ‘네 멋대로 해라’에서 반항아적인 면모가 돋보였던 전경은 2000년대 초반 ‘비주류’를 자처하는 젊은 세대의 일면을 보여준 인물이었고, 좋아하는 남자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가갔던 ‘아는 여자’ 한이연은 주체적인 여성상에 대한 화두를 던진 캐릭터다. 또한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에서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와 누명 쓴 사형수의 이야기로 약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 일조했으며, 지난해엔 탈북 여성의 실화를 재구성한 영화 ‘뷰티풀 데이즈’에도 출연했었다. 

이런 가운데 이나영은 ‘뷰티풀 데이즈’ 개봉 당시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에 관해 “관객들에게 이야기라는 걸 던질 수 있고 확신을 주고 싶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지향점이 뚜렷한 탓에 작품 사이 공백이 긴 편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나영이 택한 이야기와 인물이라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현실에 반드시 존재하지만 우리가 미처 모르고 살았던 어느 사각지대의 이야기들은, ‘비현실적’인 느낌을 타고난 이나영이 연기함으로써 한번 더 관심을 받게 된다. 앞으로도 배우 이나영의 선택을 믿고 응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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