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국여성민우회, 혜영) [뷰어스=문다영 기자] 낙태죄가 위헌으로 결정됐다. 1953년 제정된 지 66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이 안에서 나온 소수의견은 현실성이 떨어져 불쾌감을 지울 수 없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를 두고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을 내렸다.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뒤늦은 판단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낙태죄 위헌 결정에 반대하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위헌에 이르긴 했지만 헌법재판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현행 형법상 낙태죄가 실질적으로 태아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는 이유, 여성 자기 결정권 침해 등을 이유로 위헌 의견을 낸 이들이 있었고 소수의견을 낸 두 명은 ‘낙태의 선택’을 자기 결정권으로 보지 않았다. 자유와 책임 의무를 규정한 헌법을 들어 “성관계라는 원인을 선택한 이상 그 결과인 임신·출산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위와 같은 헌법 정신에도 맞는다”고도 의견을 냈다. 이 소수 의견에 대해 짚어봐야겠다. 이 의견이 보도되면서 위헌결정이 잘못된 것이라는 둥, 사회가 미쳐 돌아간다는 둥 비난이 거세진 탓이다. 기자 이름을 보고 여성이라서라는 편견은 부디 거둬주길 바란다.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소수의견을 낸 법 전문가들에게 법으로 묻고 싶어서다. 이들이 언급한 자유와 책임 의무에 앞서 한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낙태죄에서는 이 평등이 지켜지지 못했다. (사진=YTN 방송화면) 재판관 중 한 사람은 “성관계라는 원인을 선택한 이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1차적으로 누구에게 책임 소재가 지워지는가를 확인했냐고 반문하고 싶을 정도다. 지금까지의 낙태죄는 여성, 그리고 의사·조산사 등 의료인을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다. 함께 행위를 하고 원인을 제공한 남녀 중 남성은 처벌대상이 되지 않았다.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한 모자보건법의 경우는 수술 시 남성의 동의를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성관계는 함께 했는데 예상치 못한 생명이 잉태된 것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여성의 몫이었던 셈이다. 어쩔 수 없이 낙태한 경우는 남성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자기 결정에 따라 사회 경제적 이유로 낙태한 이들은 혼자서 죄를 짊어져야 했다.  낙태죄 위헌 결정을 반대한 법 전문가와 적지 않은 여론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낙태’를 전제하지 않았던 것이냐고도 묻고 싶다. 소수 재판관은 “결국 임신한 여성 편의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이라며 일반적 생명경시 풍조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편의라니. 물론 일말의 가책도 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낙태 전후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자신 앞에 놓인 수많은 상황에 고민을 거듭하고 낙태 후에는 한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신체적 고통보다도 처참한 정신적 고통이 더 크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평생 이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또한 이들이 말하는 ‘사회 경제적’이라는 이유는 단순히 이기심으로 생명을 버린다는 것이 아니다. 책임 질 수 없는 상황 역시 특정지어선 안 된다. 개개인의 생활환경, 관계, 처지 등 숱한 이유들이 그들을 수술대 위에 눕게 했다.  더불어 낙태를 악용하는 남성들마저 있는 현실은 낙태죄가 과연 누굴 위한 법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여성민우회에 따르면 낙태 신고를 빌미로 여성에게 만남을 요구하거나 돈을 종용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았다. 철저하게 여성에게만 죄를 지우는 행위가 66년 간 이어져 온 셈이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혜영) 두 명의 재판관은 “태아가 모체 일부라고 하더라도 임신한 여성에게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소멸시킬 권리, 즉 낙태할 권리가 자기결정권의 내용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주장을 내놨다. ‘모체의 일부’, 태아는 여성의 몸에 잉태하고 자라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진정 태아를 생명으로 생각한다면 ‘일부’라는 표현법부터가 틀렸다. 또한 낙태를 결정한 대부분의 상식적 사람들 중 누구도 자신의 몸 일부라는 생각을 전제로, 그렇기에 떼어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발언이야말로 여성을 생각없고 양심없는 생물로 몰아가는 비상식적 행위나 다름없다.   두 재판관이 여성을 비하하기 위해, 혹은 낙태행위를 여성의 죄라고만 봐서 이같은 발언을 한 것은 아닐 터다. 생명의 존재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과정에서 나온 발언들일 것이다. 하지만 태아의 생명만큼 그들의 부모가 될 뻔한 이들의 삶과 인생의 가치도 중요하다. 생명은 모두 평등하다는 헌법 앞에 어느 생명의 가치를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생명의 중요성은 낙태죄라는 낡은 법을 지키는 것보다 법망을 촘촘히 새로 구성하는 것으로 지켜나가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위헌결정과 함께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결정가능기간’을 언급했다. 이는 임신 22주 내외로, 22주를 넘긴 태아는 산모 몸 바깥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산부인과 학계 판단을 근거로 결정했다. 이를 비롯한 더 촘촘하고 세밀한 법적 장치들이 마련될 때 비로소 편의에 따라 생명을 지우는 이들의 ‘죄’를 막을 수 있다.

[문다영의 세태공감] 낙태죄 위헌 속 ‘소수의견’ 그들의 반대를 반대한다

문다영 기자 승인 2019.04.12 10:58 | 최종 수정 2138.07.22 00:00 의견 0
(사진=한국여성민우회, 혜영)
(사진=한국여성민우회, 혜영)

[뷰어스=문다영 기자] 낙태죄가 위헌으로 결정됐다. 1953년 제정된 지 66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이 안에서 나온 소수의견은 현실성이 떨어져 불쾌감을 지울 수 없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낙태죄를 두고 헌법불합치라는 결정을 내렸다.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뒤늦은 판단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낙태죄 위헌 결정에 반대하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위헌에 이르긴 했지만 헌법재판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현행 형법상 낙태죄가 실질적으로 태아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는 이유, 여성 자기 결정권 침해 등을 이유로 위헌 의견을 낸 이들이 있었고 소수의견을 낸 두 명은 ‘낙태의 선택’을 자기 결정권으로 보지 않았다. 자유와 책임 의무를 규정한 헌법을 들어 “성관계라는 원인을 선택한 이상 그 결과인 임신·출산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위와 같은 헌법 정신에도 맞는다”고도 의견을 냈다.

이 소수 의견에 대해 짚어봐야겠다. 이 의견이 보도되면서 위헌결정이 잘못된 것이라는 둥, 사회가 미쳐 돌아간다는 둥 비난이 거세진 탓이다. 기자 이름을 보고 여성이라서라는 편견은 부디 거둬주길 바란다.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소수의견을 낸 법 전문가들에게 법으로 묻고 싶어서다. 이들이 언급한 자유와 책임 의무에 앞서 한국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낙태죄에서는 이 평등이 지켜지지 못했다.

(사진=YTN 방송화면)
(사진=YTN 방송화면)

재판관 중 한 사람은 “성관계라는 원인을 선택한 이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1차적으로 누구에게 책임 소재가 지워지는가를 확인했냐고 반문하고 싶을 정도다. 지금까지의 낙태죄는 여성, 그리고 의사·조산사 등 의료인을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다. 함께 행위를 하고 원인을 제공한 남녀 중 남성은 처벌대상이 되지 않았다.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한 모자보건법의 경우는 수술 시 남성의 동의를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성관계는 함께 했는데 예상치 못한 생명이 잉태된 것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여성의 몫이었던 셈이다. 어쩔 수 없이 낙태한 경우는 남성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자기 결정에 따라 사회 경제적 이유로 낙태한 이들은 혼자서 죄를 짊어져야 했다. 

낙태죄 위헌 결정을 반대한 법 전문가와 적지 않은 여론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낙태’를 전제하지 않았던 것이냐고도 묻고 싶다. 소수 재판관은 “결국 임신한 여성 편의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이라며 일반적 생명경시 풍조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편의라니. 물론 일말의 가책도 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낙태 전후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자신 앞에 놓인 수많은 상황에 고민을 거듭하고 낙태 후에는 한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신체적 고통보다도 처참한 정신적 고통이 더 크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평생 이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또한 이들이 말하는 ‘사회 경제적’이라는 이유는 단순히 이기심으로 생명을 버린다는 것이 아니다. 책임 질 수 없는 상황 역시 특정지어선 안 된다. 개개인의 생활환경, 관계, 처지 등 숱한 이유들이 그들을 수술대 위에 눕게 했다. 

더불어 낙태를 악용하는 남성들마저 있는 현실은 낙태죄가 과연 누굴 위한 법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여성민우회에 따르면 낙태 신고를 빌미로 여성에게 만남을 요구하거나 돈을 종용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았다. 철저하게 여성에게만 죄를 지우는 행위가 66년 간 이어져 온 셈이다. 

(사진=여성민우회, 혜영)
(사진=한국여성민우회, 혜영)

두 명의 재판관은 “태아가 모체 일부라고 하더라도 임신한 여성에게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소멸시킬 권리, 즉 낙태할 권리가 자기결정권의 내용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주장을 내놨다. ‘모체의 일부’, 태아는 여성의 몸에 잉태하고 자라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진정 태아를 생명으로 생각한다면 ‘일부’라는 표현법부터가 틀렸다. 또한 낙태를 결정한 대부분의 상식적 사람들 중 누구도 자신의 몸 일부라는 생각을 전제로, 그렇기에 떼어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발언이야말로 여성을 생각없고 양심없는 생물로 몰아가는 비상식적 행위나 다름없다.
 
두 재판관이 여성을 비하하기 위해, 혹은 낙태행위를 여성의 죄라고만 봐서 이같은 발언을 한 것은 아닐 터다. 생명의 존재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과정에서 나온 발언들일 것이다. 하지만 태아의 생명만큼 그들의 부모가 될 뻔한 이들의 삶과 인생의 가치도 중요하다. 생명은 모두 평등하다는 헌법 앞에 어느 생명의 가치를 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생명의 중요성은 낙태죄라는 낡은 법을 지키는 것보다 법망을 촘촘히 새로 구성하는 것으로 지켜나가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위헌결정과 함께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결정가능기간’을 언급했다. 이는 임신 22주 내외로, 22주를 넘긴 태아는 산모 몸 바깥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산부인과 학계 판단을 근거로 결정했다. 이를 비롯한 더 촘촘하고 세밀한 법적 장치들이 마련될 때 비로소 편의에 따라 생명을 지우는 이들의 ‘죄’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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