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희토류 광산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 경고등이 커지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전기차, 재생에너지, 전력망 확충 등 산업 전반에서 구리·알루미늄·니켈·리튬 같은 핵심광물의 수요가 구조적으로 급증하고 있어서다. 가격이 단기 조정을 겪어도 ‘공급 부족→가격 급등’이라는 대세 흐름은 더욱 견고해지는 모양새다.
■ AI 전력 수요 폭발…구리 가격 ‘시한폭탄’
한국은 이러한 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높은 자원수입 의존도·전력 인프라 병목,·미·중 공급망 규제라는 3중 구조적 제약이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올해 글로벌 구리시장은 그야말로 널뛰기 장세였다. 구리 가격은 7월 장중 파운드당 5.959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15% 가까이 떨어졌다. 마켓워치는 최근 구리 시장을 ‘폭발적 가격 변동을 위한 시한폭탄’이라 표현했다. 핵심 배경에는 AI가 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은 미국 전체 소비전력의 4.4%(2023년)에서 2028년 최대 12%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전력망·변전 설비 확충과 AI 서버 수요가 맞물리면서 구리 수요는 향후 10년간 매년 100만 톤씩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카고에 건설한 198MW 규모 데이터센터에만 2177톤의 구리가 투입됐다.
■ 리튬 가격 반등…ESS·AI 수요가 배터리 소재 다시 끌어올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흔들리던 배터리 소재 시장도 다시 들썩이고 있다. 에너지저장장치(ESS)와 AI 데이터센터의 ‘전력충전용 배터리’ 수요가 폭증하면서 탄산리튬 가격이 지난 6월 대비 1.5배 이상 반등했다.
중국 간평리튬은 “2025년 글로벌 리튬 수요가 30% 이상 증가할 경우 kg당 가격이 150~200위안까지 다시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호주·칠레·짐바브웨 등 주요 공급국의 생산 차질도 가격 랠리에 힘을 싣고 있다.
■ “자원 빈국이면서 제조 강국”…세계 원자재 변동에 취약한 ‘한국’
한국은 반도체·배터리·조선·철강 등 제조 대국이지만 핵심광물의 90% 이상을 수입하는 자원 빈국이다. 특히 리튬(81.1%), 코발트(77.3%), 흑연(97.5%), 희토류(80%) 등은 대부분 중국에 의존한다.
정부는 2030년까지 대중 의존도를 50%대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공급망 다변화는 여전히 제자리다. 실제로 일부 광물은 수입의 100%가 중국에 집중된 품목도 있다. 한국 기업들의 조달 구조는 광산 지분 확보 → 중국 정·제련 → 한국 반입으로 묶여 있어 광산이 확보되더라도 중국 정·제련이 막히면 전방 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국 중후장대 산업이 맞닥뜨린 위기는 더 이상 경기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구조적 변화다. 에너지·환경 규제, 공급망 재편, 지정학 리스크가 겹치며 기존의 성장공식은 힘을 잃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비용절감이 아니라 사업의 방향을 다시 그리는 수준의 전환 전략이다. 변화는 느리지만, 방향을 정하는 결정은 늦출 수 없다. 한국 제조업이 이번 변곡점을 넘어설 수 있을지 그 답은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