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출석했다. 왼쪽은 법정 출석하는 최 회장, 오른쪽은 재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는 노 관장. 2024.4.16(사진=연합뉴스)

“대통령으로서 노태우의 가장 큰 과오라고 한다면 무엇보다 친인척 관리에 소홀했던 점이다. 가까운 친인척도 아니고 동서, 사돈, 친구 등이 물의를 일으켰다. 특히 사돈을 재벌로 얻은 것은 치명적 실수가 아닐까 싶다. 물론 민주사회에서 결혼은 자유이고 대통령의 가족이라고 그러한 자유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임기 중에는 하지 말았어야 할 행위다. 재벌이 현직 대통령과 기어이 혼맥을 맺으려는 이유야 너무 뻔하지 않은가. 그런 결혼으로 인해 노태우는 사돈네 재벌이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하는 데 도움을 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다음 대통령 후보(김영삼)에게 노태우가 약점을 잡히는 일이 되기도 하였다. 결국 그래서 노태우는 김영삼의 무리한 요구를 다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부패는 부패를 낳는 법이다.”

여야 모두의 킹메이커였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회고록 성격으로 집필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2022)’에 담긴 구절입니다. 아시다시피 현직 대통령과 기어이 혼맥을 맺은 재벌은 SK그룹입니다. 당사자는 지금도 ‘세기의 소송’으로 시끌벅적한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최태원 회장은 노 대통령의 장녀인 노소영 씨와 대통령 임기 중인 1988년 청와대 영빈관에서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노태우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이었고, 온갖 반발을 무릅쓰고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 매각 조치를 단행한 장본인이어서 당시를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권력 핵심의 위치에 있었기에 회고록 속 ‘약점’과 ‘부패’라는 표현에 담긴 신뢰도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SK그룹의 시초는 일제 강점기 세워진 선경직물공장입니다. 수원 부호의 장남이던 고 최종건 창업주가 6.25 전쟁이 끝날 무렵인 1953년 적산(敵産)을 불하받은 데서 시작됐습니다. 최 창업주는 이후 20년 동안 공 들여 회사를 키웠지만 47세에 폐암을 이기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해 슬하에 3남(윤원-신원-창원) 4녀를 두고도 회사 경영은 동생인 최종현이 이어가게 됩니다. 최종현 2대 회장은 25년 동안 발군의 능력을 발휘해 회사를 재계 5위권에 올려놓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폐암을 이기지 못하고 2남(태원-재원) 1녀의 자녀를 남긴 채 1998년 세상을 떠납니다. 세간의 이목은 자연스레 차기 회장에 쏠렸습니다. 후보자인 1~2대 회장의 자녀들 중 연장자(당시 48세)인 고 최윤원(전 SK케미칼 회장)이 자신보다 10살 어린 사촌 태원을 추대하면서 SK그룹에 30대 회장 시대가 열립니다.

1960년생인 최태원 3대 회장은 1992년 선경 경영기획실 부장으로 그룹에 첫발을 내딛습니다. 대통령의 사위이자 회장 아들 신분을 발판 삼아 4년 만에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합니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아버지의 때 이른 사망으로 그룹 회장에 추대됩니다. 수원 부호 가문의 가부장적 가족경영 문화에서 나이 어린 최태원 회장이 사촌형 최윤원 회장으로부터 통 큰 양보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다년간 이어진 아버지 최종현 회장의 경영수업과 6공화국 최고통치자와의 혼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 재계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게다가 1998년은 전대미문의 ‘외환위기’로 나라가 초토화된 시기여서 기업인에게 정·관계 인맥이 매우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SK그룹은 30대의 열정적인 CEO를 중심으로 위기를 잘 극복합니다. 하지만 2003년, 세상 두려울 것 없어 보였던 최태원 회장 앞에 큰 시련이 닥칩니다. 분식회계로 총수가 구속된 틈을 타 외국계 헤지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적대적 M&A를 시도한 이른바 ‘소버린 사태’가 터진 겁니다. 우여곡절 끝에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지만 그룹의 지배구조는 큰 변화를 맞습니다.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지키려다 보니 우호 지분 확보가 절실했고, 그 과정에서 사외이사 중심의 투명경영을 약속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2007년에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합니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은 아직도 풀지 못한 ‘지배구조 선진화’ 숙제를 20여년 전에 일찌감치 해결하는 역량을 발휘한 겁니다.

하지만 지주회사 전환 이후 SK그룹은 새로운 문제에 봉착합니다. SK(지주회사)-SK텔레콤(자회사)-SK하이닉스(손자회사)를 주축으로 하는 지배구조에서 SK텔레콤의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SK하이닉스를 키우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가 과거 SK텔레콤의 역할을 하는 데에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나 자회사는 30% 이상(비상장 50%)의 지분으로 자회사를 보유할 수 있지만 손자회사가 증손자회사를 거느리려면 반드시 지분 100%를 확보해야 합니다. 이는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그룹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데에 상당한 애로가 발생함을 의미합니다.

이 난관을 뚫을 수 있는 돌파구 중 하나가 바로 CVC(기업형 벤처캐피탈)입니다. 손자회사가 금융회사인 CVC를 통해 외부자금까지 끌어들여 유망 벤처기업에 투자한 뒤 지배권을 행사하면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지분율 규제를 피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이 활성화되면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지주회사 체제의 핵심 기능이 무의미해질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우려 때문에 5년 전 지주회사의 CVC 허용 법 개정 당시 △차입규모 자기자본의 200% 제한 △펀드 조성시 외부자금 40% 제한 △총수 일가와 금융계열사 출자 금지 △해외투자 규모 총자산 20% 제한 등의 안전장치를 달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 중 이렇게 안전장치까지 주렁주렁 달아 법을 개정해서 혜택을 볼 수 있는 기업은 SK그룹 외에 찾기 어렵습니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은 아직 지주회사 체제조차 갖추지 못했고, 지주회사로 전환한 LG그룹과 롯데그룹 등은 CVC 설립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때문에 시민단체에선 2020년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CVC 법 개정을 두고 ‘SK그룹 맞춤형 서비스’라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겉으로는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동반성장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SK그룹의 무제한 피라미드를 허용하는 ‘재벌 특혜 입법’이라고 본 것입니다. 더욱이 SK그룹은 당시 최태원 회장의 사생활 문제로 지배구조 리스크를 안고 있어 의심의 시선은 더 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태원 회장은 2015년 12월 모 신문사에 혼외자의 존재를 알리며 결혼생활 파탄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혼외자가 이미 2010년 태어났고 최 회장 스스로 2007년부터 혼인관계가 파탄됐다고 밝혔으므로 지주회사 전환 무렵부터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부인인 노소영 관장이 절반의 재산분할을 요구할 경우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말 못할 속앓이 와중에도 최 회장은 2012년 그룹 내 반발을 무릅쓰고 SK하이닉스 인수라는 승부수를 던집니다. 조 단위의 천문학적 투자를 필요로 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최 회장은 늘 자금 걱정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리스크도 염두에 둬야 하는 처지. 이런 압박감과 초조함은 2013년 ‘선물투자를 위한 회사 자금 횡령’ 사건으로 이어져 법정 구속되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2015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에는 혼외자의 존재를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스스로 공개하는 정공법을 택합니다. 이는 우려했던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으로 이어졌습니다. 노 관장은 최태원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17.5%의 42.29%(약 1조3000억원) 지급을 요구했습니다. 2심 판결대로 1조3808억원의 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면 SK그룹의 지배구조는 한치 앞을 모르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을 공산이 큽니다.

이상에서 보듯 SK하이닉스가 ‘돈 먹는 하마’였던 10년 전 SK그룹은 재산분할에 따른 잠재적 지배구조 리스크까지 더해져 탈출구가 간절히 필요한 상황이었고, 이런 간절함이 CVC 입법 로비로 이어졌다는 것이 재계와 관가 안팎의 분석입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재계의 금산분리 완화 요구와 관련해 “너무 한쪽 측면에서 일종의 민원성 논의가 주를 이루는 것 같아서 상당히 불만”이라고 표현한 것에서도 이런 맥락을 읽을 수 있습니다.

SK하이닉스가 어느 정도 본궤도에 오른 2021년, 최 회장은 그룹 경영을 형제들에게 분담한 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추대를 수락합니다. 규제 완화를 위한 입법, 재산분할 승소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그룹 회장 명함에 재계 수장 타이틀까지 더해지는 게 유리할 것이라는 셈법이 작용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여파로 해체된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대신해 대한상의는 재계의 목소리를 충실히 대변합니다. 그 목소리에는 SK그룹의 탈출구인 △지주회사의 자회사 최소 지분율 규제 폐지 △지주회사의 금융회사 보유 허용 △지주회사의 CVC 보유 규제 철폐 등도 담겼습니다.

150조원 국민성장펀드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는 이재명 정부는 ‘SK하이닉스 맞춤 특혜’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재계의 규제 완화 요구를 전격 수용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직물회사에서 출발해 카멜레온처럼 정유화학·이동통신, 반도체·바이오 회사로 변신한 SK그룹은 규제 완화를 발판 삼아 다시 한번 AI 기반 첨단 기술회사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6월 발표한 지주회사 현황 중 SK그룹 관련 부분이다. 사촌 형제들과의 공동경영 체제를 감안하더라도 자회사 수만 88개, 손자회사 수는 132개에 달해 다른 45개 지주회사의 규모를 압도한다. 그룹의 캐시카우로 떠오른 SK하이닉스는 SK텔레콤을 쪼개 만든 에스케이스퀘어(중간지주회사)의 자회사로, 그룹 전체로 보면 손자회사다. 총수 입장에서는 SK하이닉스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자회사로 끌어올리는 등의 지배력 강화 조치가 필요한 상태다.(자료=공정위)


‘생산적 금융’을 빼놓고 이재명 정부의 금융정책을 논하기 어렵습니다.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해서는 AI 등 미래전략산업 육성이 필요하고, 미래전략산업을 육성하려면 ‘생산적 금융’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여기까지는 크게 논쟁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생산적 금융’을 위해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하고, 국민성장펀드의 성공을 위해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상당한 논쟁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왜 그러한지 가급적 편견 없이 몇몇 쟁점을 도마 위에 올려 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