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두산아트센터
극장 안에 들어갈 때 마주하는 차단기가 경계심을 자극한다. 활짝 웃으며 “입주를 환영합니다”라고 말하는 배우의 미소가 작위적이다. 마치 아파트에 입주민이 된 듯 기분이 묘하다.
‘두산인문극장 2019;아파트’의 마지막 작품 ‘포스트 아파트’는 다원 예술 공연이다. 두산인문극장은 오늘날 한국을 상징하는 보통의 건축물 ‘아파트’에 대해 여러 각도로 되짚었고, 그 중 ‘포스트 아파트’는 아파트에 대한 의견과 경험, 이상과 가능성을 다양한 형태로 무대에 올렸다.
극장에 들어서면 전시회를 보러 온 전시회장인지, 연극을 즐기는 극장에 온 것인지 헷갈리지만, 사실 객석과 무대의 경계도 따질 수 없는, 시선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대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90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극의 진행은 숨 가쁘다. 아파트에 대한 추억을 끄집어낼 정도로 상징적인 무대부터 시작해, 아파트를 추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최초의 아파트와 세월에 따라 변해온 아파트의 모습 등, 강연이 펼쳐진다.
사진=두산아트센터
이쪽 무대에서는 노란 한복을 입은 배우가 “동티가 무언지 아는가”라고 주위를 끄는데 이내 뒤에서 나타난 배우는 아파트를 상징하는 듯한 블록을 혼자 조용히 쌓고 있다. 베란다에서 나타난 청소부 직원은 고독사에 대해 늘어놓고, 그 뒤쪽 무대에는 보험사 직원이 고독사 보험을 설명한다. 귀가 솔깃하면서도 섬뜩하고, 그러면서 흥미롭다.
잠시 눈을 감고 귀로만 느끼는 시간도 주어진다. 배우의 움직임을 따라 두 눈을 안대 속에 감추면, 느끼지 못한 것도 다시 느끼게 된다. 마치 잠시 잊고 있었던 감각이 깨어나는 듯, 커다란 울림 속에 몸 전체가 요동치는 듯하다.
네모난 평상 위에서 배우들의 퍼포먼스도 펼쳐진다.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아웅다웅 사는 우리네 모습 같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하고, 층간소음으로 목소리가 커지기도 한다. 그러다 이내 배우들은 같은 동작으로 몸을 마주하고, 입을 맞추기도 한다. 가만히 누워 바닥에 귀를 기울인다.
사진=두산아트센터
다 함께 노래를 부르며 흥겨운 시간도 펼쳐진다. 배우들은 ‘부엌 위에 부엌이 있고 문을 닫으면 우리 집’이라고 신나게 노래 부르며 관객들을 향해 함께 부르자고 권유한다.
그리고 “아파트 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파트에 대한 경험과 기억은 무엇인가요? 바라는 아파트의 모습은?”이라고 질문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포스트 아파트’는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 이미 투자와 투기의 대상이 되어버린 아파트, 누구에게는 당연히 있는 삶의 터전이지만 누구에는 죽을 때까지 누릴 수 없는 꿈인 아파트, 즉 아파트의 상징적 의미를 다양한 시선에서 되짚는다. 시대에 따라 달라진 아파트라는 공간과 우리의 마음속에 지닌 아파트가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여러 감각을 건드리며 다시 고민하고 깨우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포스트 아파트’는 7월 6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된다.